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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잡상'에 해당하는 글(1) |
2009/07/04 경험 또는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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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_나비가 장자가 되다
내가 처음 들어왔을 무렵에 정문 앞에는 지하도가 있었다. 건널목 대신, 그곳을 통해 건너야 했는데, 항상 중간쯤에 건들거리며 서있는 걸인 하나가 있었다. 사람들은 '100원만' 달라고 구걸하는 그를 원만이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누군가 천원을 주었더니 900원을 거슬러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왔다.
그런 기억이 문득 떠오른 건 정문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지금은 지하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지하도가 있던 자리는 메워지고, 그 위로 횡단보도가 생겼다. 몇 년 전이었던가, 지하도의 폐쇄가 결정되고, 철거작업이 시작되었다. 원만이 아저씨는 어디론가 가버렸는데, 벤치에 앉아 썩어가는 다리를 점검하고 있는 걸 봤다는 이야기를 지나치듯 들었다. 지하도는 결국 메워지고, 그 위로 보도가 생겼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하도 처럼, 원만이 아저씨도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곳에 있었던 그것을 모른다. 정말 그곳에 지하도란 것이 있었는지, 원만이 아저씨란 괴이한 걸인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2_중국행 슬로보트
최근에 대학생활 동안 했던 가장 중요했던 한 가지 일을 꼽으라면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리학을 공부한 것? 물론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에 왔고(아니었다면 대학따위는 가지 않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 때의 나라면 정말로..), 상당한 지적 만족감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엄청난 시간 동안 물리학 공부를 했어도 별로 기억나는 일은 없다. 물리학 외에 여러 가지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하나만 꼽으라면 배삯 10만원을 빼고 단돈 180만원을 들고 중국행 보트에 올랐던 3개월 동안의 여행이 아니었을까. 그다지 여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택시 타는 걸 거부하고 장거리를 걷는 등 오기를 부리며 같이 다니던 어른들께 폐를 좀 끼치긴 했지만, 중국대륙을 횡단해서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넘어서 아시아 대륙을 가로질렀던 여정이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그것을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별 생각 없이 여행자금을 모아야겠다고 회사생활을 했던 것까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떠날 때가 다가오자 계획한 비용만큼 모으지도 못했고, 귀국을 위한 항공권도 사지 않은채 달랑 중국행 보트에 오른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렇지만 계획을 세웠으면 실행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이를 악물고 떠났다. 일단 떠나니까 어떻게든 일은 진행되었다.
중국행 보트에서의 첫날이 아직 기억난다. 15 킬로그램짜리 배낭을 메고 홀로 중국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톈진에 도착하면, 어떻게 해서든 홀로 베이징에 가야하고, 그곳에서 빈방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숙소를 찾아가야 한다. 아마 경비가 좀더 풍족했다면 덜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배에서 내려 50인가 60위안을 주면 베이징행 직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0.5위안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서 14위안짜리 완행 기차를 탔다.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기차 바닥에 버려 쌓여있는 수북한 껍질들, 소리지르는 차장 아줌마, 벤치처럼 이어져 있는 의자에 세 명씩 끼어 앉아가야 하는 불편함, 더러운 화장실...
처음엔 그런 것들이 힘들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그러나 나는 도전했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대체로 즐거웠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반드시 떠났을 것이다.
3_투명인간
학교나 회사에서 청소를 하고, 일이 끝나면 흔적도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분들이 있다. 나는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그 분들이 어디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런 존재가 있었는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투명인간처럼.
그러다 군에 가니 나 같은 병사들이 그런 일들을 해야 했다. 업무는 업무 대로 보고, 일이병 때는 퇴근(?)하면 하루종일 청소만 했던 것 같다. 사무실, 화장실, 내무반, ... 매주 주말에는 항상 대청소와 침구류 일광소독 등이 있었다. 아무 생각이 없이 미치도록 청소만 했는데, 그 덕에 항상 주변은 깨끗했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를 다하느라 용돈도 안 되는 급여를 받던 병사들의 존재는, 사실 간부 - 직업군인이란 사람들에게는 사고 안 치게 통제 해야만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그저 병사들은 묵묵히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전역을 하고 학교에 돌아오니 병사들 대신 아주머니들이 화장실 청소 같은 걸 하고 계셨다. 비정규직에다 한달에 100만원도 못 버실텐데, 왠지 그런 모습이 내 군생활과 겹쳐 불편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여전히 그 분들 보면 어찌해야 될 지 모르겠다. 그 분들은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고 계신 것이고, 내가 대신 할 수도 없다. 그저 언제나 감사하기, 그 뿐인지도...
경험을 통해 무엇인가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최근에 읽은 'Leaving Microsoft to Change the World'에 나오는 네팔은 내게 친숙하지만, 노벨 평화상을 받은 그라민 은행의 총재 무하마드 유누스의 자서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에 나오는 방글라데시의 모습은 어딘지 상상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
4_경험, 추억, 소유
우리가 추억하는 것들은 소유에 대한 것보다는 경험에 대한 것이다. 물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얽힌 경험을 추억한다. 이탈리아의 한 식당에서 하우스와인을 곁들인 파스타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나, 인도에서 무한정 리필해주는 맛있는 탈리를 먹는 것이나 즐거움의 크기는 큰 차이가 없었다. 비용은 10배 이상 차이가 났지만. 그런 게 아닐까. 비싼 물건 같은 건 부럽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물건이 아니라 시간, 소유가 아니라 경험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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