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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죽음은 없겠지만, 응급실에서 마주한 죽음들 중에서 유독 아이들의 죽음은 마음에 오래 남곤 한다. 파견 갔던 지방병원에서 마주했던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유치원생 또래 아이의 육신은 마음 속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팔다리와 목에 박혀있는 기관내튜브는 그동안의 삶이 평탄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죽어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설사 짐작이 가더라도 그저 그 순간을 눈을 질끈 감고 지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엔 어떤 흔적이 남았다.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가 급박하게 소리지르며 뛰어들어오는 아버지에 의해 침대로 옮겨졌다. 아버지가 잠깐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 피투성이가 된 머리에 의식불명, 맥박도 잡히지 않는 상태. 양손으로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참아내야 했다. 하던대로 침착하게 2분 간격으로 심장마사지 교대를 하고, 양 다리에서 혈관을 잡아 수액을 연결하고, 기관삽관을 시행하여 앰부백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에피네프린을 주사했다. 하지만 아이는 살아나지 못했다. 회복되기에는 너무나 큰 외상을 입은 탓이다.
피범벅이 된 아이의 몸을 알코올솜으로 닦아내면서 입 안에 강렬한 쓴 맛이 느껴졌다. 시트로 아이의 몸을 덮어놓았다가, 죽음을 기록하기 위해 심전도를 찍었다. 심전도에서 나타난 평평한 그래프는 아이의 심장이 완전히 멈춰버렸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혈색이 돌던 아이의 몸과 얼굴에도 짙은 잿빛의 죽음이 드리워져 있었다. 울적한 날이었다. 강렬한 갈증이 엄습했다. 맥주 한 캔을 한번도 쉬지 않고 들이마시고야 말 것 같은 그런 갈증.
우리들의 마음에도 또하나의 자국이 남아버렸다. 남겨진 아버지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이의 시신은 시트에 덮혀있는 채로 여전히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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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고 창문을 내려 방금 감은 머리를 말리다가 문득 학부 때 교수님 한 분이 자신의 학부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이 생각났다. 매일 아침 일어나 머리를 감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왼쪽에 앉느냐 오른쪽에 앉느냐에 따라 그 날의 가르마 방향이 정해졌다는 이야기. 어쩌면 단지 머리 말리는 이야기였을 뿐인데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의외로 인상깊었던 것 같다. 입자이론에 대한 동경을 간직하고 있던 시절에 엘리트코스를 밟아 물리학자의 삶을 살고 계신 분의 학부 시절 이야기라서 그랬을까. 교수님은 그렇게 만들어진 왼쪽 혹은 오른쪽 가르마를 가지고 학교에 도착해 그날 강의가 있는 강의실을 돌면서 제일 앞자리에 교과서를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런 대학생활을 보내고 하버드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셨다.
이젠 그런 동경하는 마음 같은 것들도 많이 사라졌고, 특별히 그런 마음을 느낄 일도 없지만, 어쩌면 내가 동경 받는 그런 위치에 올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때가 지난 식사를 뱃속에 집어넣는 생활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버스에서 머리를 말리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학생 때 했던 연구가 어느새 출판이 되었고, 수련 받을 과목도 어느 정도 정해졌다. 반은 넘게 했지만 아직도 상당히 남은 수련의 생활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 뿐이지만, 당직실에 모여 동기들과 치킨을 먹을까 족발을 먹을까 고민하는 이야기가 왼쪽 혹은 오른쪽 가르마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에 잠시 미소를 짓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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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잉'하는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119 구급차가 도착한다. 접이식 스트레처카에 환자를 싣고 응급실 안으로 들이닥친다. 무슨무슨 환자라고 외치고는 빈 베드에 환자를 옮긴다. 그리고 초진, 검사, 처치가 이어진다.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하고, 열두 시간은 오프다. 먹고 씻는 시간을 제외하면 자고 일하는 생활의 반복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나 자신이 어떻게 향상되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그저 순간순간을 참아내며 살아가면 그뿐일까. 이 시기를 거치고 나면 나는 무언가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을까. 그런 것들을 잘 모를 때가 많고, 누구에게 어떻게 조언을 구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다. 지루함을 참아내면 정말 더 좋은 순간이 오는 것인지, 그리고 무언가를 더 성취한 것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하루하루의 일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식으로 더 큰 성취의 일부가 되는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일상에 의미부여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일상에 의미를 느끼고 열심히 살아가야 할 터인데, 그저 견디고만 있는 자신이 안쓰러워 한 조각의 글을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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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다시 들어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일을 시작한 첫날의 생경함이 벌써 희미해지려한다. 국가고시에서 다루지 않았고, 실습에서도 해보지 못한 술기들을 하나씩 익혀가면서 어느새 내 역할을 해내기 시작했다. 첫 턴을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곳에서 시작해서 그나마 차분하게 업무를 하나 둘씩 익히며 병원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면허의 무거운 책임감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환자 이송을 갈 때 구급차에 탄 의사가 나뿐일 때,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온전히 내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도와줄 사람도, 내가 못하면 대신 해 줄 사람도 없다는 그 막막함. 그럴 때 학생 때와는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첫 턴이 다 끝나가고, 모른척 두 번째, 세 번째 턴으로 넘어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든다. 순간순간 느끼는 것은 쉽게 증발해버리고, 그저 일상에 몸을 맡기는 자신만이 남은 것 같다.
마지막까지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항상 좋은 사람이어서만은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힘들 때 나오는 내 모습들을 어쩌면 조심스럽게 지켜보고만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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