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도 몰랐는데 벌써 가을이 끝나가려 하고 있다. 내 기억은 아직 여름에 남아 있는데. 그 뜨거웠던 여름, 전역을 하고, 5시간이지만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트럭 때문에 애를 먹었고, 한강물에 열심히 빠져가면서 윈드서핑을 익혔다. 그리곤 곧 첫 회사생활. 주로 파견 나가서 일하는 컨설팅 업계 특성상, 컨설팅 업계의 생리와 고객사인 대기업의 생리를 둘다 체험해볼 수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자료조사를 하는 법, 논리적 사고, 도안 구성법, 그래프 종류 선택하는 법, 트렌드와 경쟁구도를 파악하는 법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들을 좀더 갈고 닦을 시간이 부족했지만. 그리고 별 어려움 없이 사설 경제연구소 중 최고라고 꼽히는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글쎄, 좋은 곳이었지만, 그다지 흥미가 있지는 않았고, 일도 신나거나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뭐, 나쁘지는 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만. 이력서에 눈에 띄는 한 줄 기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다른 기업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 정도를 얻은 게 아닐까. 그래서, 지금 내게 무엇이 남았는가. 돈은 그다지 충분히 벌지 못했다. 여행자금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계속 추가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느라 아둥바둥 했지만, 그게 오히려 더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다. 일단 떠나서, 자금이 떨어지면 조금 일찍 귀가하면 된다. 적어도 내겐 돌아올 곳이 있으니까. 편하게 생각해야지. 돈 때문에 생각할 여유도, 여행을 충분히 준비할 시간도 빼앗기고 있는 것 같다.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으면 여행도 생각할 수 없는 거겠지만. 그리고 파트타임이 아닌 풀타임 직장생활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직장이란 것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더라. 세상엔 알아갈 수록 그리 대단하지 않아지는 것만 널린 걸까. 어쨌든 나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Resume와 Cover letter를 작성해 보았고, 수차례 인터뷰를 받아보았다. 그리고 실제로 일을 해보았다. 경험이란 것은 귀중하다. 지금 있는 곳에서의 일도 이제 이틀만이 남았을 뿐이다. 다음 주에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추가 수입을 얻는 것을 포기하고, 좀더 여행준비에 집중해야겠다. 처음에 세 달을 가겠다고 마음 먹은 것 때문일까. 그 기간을 채우기 위해 자금을 더 마련하려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애초에 여행을 가려고 했던 열망을 잃어버리고 있는 느낌이다. 다시 한번, On the Road를 보며, 다른 이들의 여행을 보며, 나는 왜 여행을 가려고 했고, 왜 지금이 '떠나야만 하는 때'인가 생각해 보아야겠다. 사람들에게 '대단하다', '멋있다' 따위의 말을 듣고 싶어서 장기간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살면서 때론 떠나야만 하는 때가 온다'. 지금이 그 때라면, 나는 왜 떠나야 하고, 떠나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 건지 다시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