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또래의 같은 병을 가지고 있는 비슷한 사람이라도 어떤 가족을 만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예후를 가지게 된다. 국적을 선택하지 못하고, 인종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떤 가족을 만나느냐도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있는 것이다.
혹자는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하여 운명을 개척해 나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 '때'라는 것이 마치 우리가 어린 아이였을 때처럼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의 운명은 오롯이 주변의 '보호자'의 판단에 내던져지게 되고, 그 결정에 따라 앞으로의 운명이 결정되어버린다.
예전에는 '귀신이 들렸다'고 치부해버렸던 정신 질환들이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왔는데, 어떤 사람들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고 적절히 회복하여 적절히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또다른 사람들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여 적절히 회복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격리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것이 '보호자'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사연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
모든 문화는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고, 다른 사람의 믿음은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한다는 사상은, 때론 한번쯤 곱씹어보야만 할 명제다. 소중하게 얻은 치료의 기회가 보호자의 '믿음'이란 것에 의해 날아가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은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하는지. 그런 상황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면, 이것은 사회적 살인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어버린다.
사연 없는 죽음은 없겠지만, 응급실에서 마주한 죽음들 중에서 유독 아이들의 죽음은 마음에 오래 남곤 한다. 파견 갔던 지방병원에서 마주했던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유치원생 또래 아이의 육신은 마음 속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팔다리와 목에 박혀있는 기관내튜브는 그동안의 삶이 평탄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죽어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설사 짐작이 가더라도 그저 그 순간을 눈을 질끈 감고 지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엔 어떤 흔적이 남았다.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가 급박하게 소리지르며 뛰어들어오는 아버지에 의해 침대로 옮겨졌다. 아버지가 잠깐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 피투성이가 된 머리에 의식불명, 맥박도 잡히지 않는 상태. 양손으로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참아내야 했다. 하던대로 침착하게 2분 간격으로 심장마사지 교대를 하고, 양 다리에서 혈관을 잡아 수액을 연결하고, 기관삽관을 시행하여 앰부백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에피네프린을 주사했다. 하지만 아이는 살아나지 못했다. 회복되기에는 너무나 큰 외상을 입은 탓이다.
피범벅이 된 아이의 몸을 알코올솜으로 닦아내면서 입 안에 강렬한 쓴 맛이 느껴졌다. 시트로 아이의 몸을 덮어놓았다가, 죽음을 기록하기 위해 심전도를 찍었다. 심전도에서 나타난 평평한 그래프는 아이의 심장이 완전히 멈춰버렸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혈색이 돌던 아이의 몸과 얼굴에도 짙은 잿빛의 죽음이 드리워져 있었다. 울적한 날이었다. 강렬한 갈증이 엄습했다. 맥주 한 캔을 한번도 쉬지 않고 들이마시고야 말 것 같은 그런 갈증.
우리들의 마음에도 또하나의 자국이 남아버렸다. 남겨진 아버지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이의 시신은 시트에 덮혀있는 채로 여전히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택시를 타고 창문을 내려 방금 감은 머리를 말리다가 문득 학부 때 교수님 한 분이 자신의 학부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이 생각났다. 매일 아침 일어나 머리를 감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왼쪽에 앉느냐 오른쪽에 앉느냐에 따라 그 날의 가르마 방향이 정해졌다는 이야기. 어쩌면 단지 머리 말리는 이야기였을 뿐인데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의외로 인상깊었던 것 같다. 입자이론에 대한 동경을 간직하고 있던 시절에 엘리트코스를 밟아 물리학자의 삶을 살고 계신 분의 학부 시절 이야기라서 그랬을까. 교수님은 그렇게 만들어진 왼쪽 혹은 오른쪽 가르마를 가지고 학교에 도착해 그날 강의가 있는 강의실을 돌면서 제일 앞자리에 교과서를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런 대학생활을 보내고 하버드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셨다.
이젠 그런 동경하는 마음 같은 것들도 많이 사라졌고, 특별히 그런 마음을 느낄 일도 없지만, 어쩌면 내가 동경 받는 그런 위치에 올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때가 지난 식사를 뱃속에 집어넣는 생활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버스에서 머리를 말리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학생 때 했던 연구가 어느새 출판이 되었고, 수련 받을 과목도 어느 정도 정해졌다. 반은 넘게 했지만 아직도 상당히 남은 수련의 생활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 뿐이지만, 당직실에 모여 동기들과 치킨을 먹을까 족발을 먹을까 고민하는 이야기가 왼쪽 혹은 오른쪽 가르마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에 잠시 미소를 짓게 된다.
'위이잉'하는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119 구급차가 도착한다. 접이식 스트레처카에 환자를 싣고 응급실 안으로 들이닥친다. 무슨무슨 환자라고 외치고는 빈 베드에 환자를 옮긴다. 그리고 초진, 검사, 처치가 이어진다.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하고, 열두 시간은 오프다. 먹고 씻는 시간을 제외하면 자고 일하는 생활의 반복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나 자신이 어떻게 향상되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그저 순간순간을 참아내며 살아가면 그뿐일까. 이 시기를 거치고 나면 나는 무언가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을까. 그런 것들을 잘 모를 때가 많고, 누구에게 어떻게 조언을 구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다. 지루함을 참아내면 정말 더 좋은 순간이 오는 것인지, 그리고 무언가를 더 성취한 것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하루하루의 일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식으로 더 큰 성취의 일부가 되는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일상에 의미부여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일상에 의미를 느끼고 열심히 살아가야 할 터인데, 그저 견디고만 있는 자신이 안쓰러워 한 조각의 글을 남긴다.
병원에 다시 들어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일을 시작한 첫날의 생경함이 벌써 희미해지려한다. 국가고시에서 다루지 않았고, 실습에서도 해보지 못한 술기들을 하나씩 익혀가면서 어느새 내 역할을 해내기 시작했다. 첫 턴을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곳에서 시작해서 그나마 차분하게 업무를 하나 둘씩 익히며 병원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면허의 무거운 책임감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환자 이송을 갈 때 구급차에 탄 의사가 나뿐일 때,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온전히 내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도와줄 사람도, 내가 못하면 대신 해 줄 사람도 없다는 그 막막함. 그럴 때 학생 때와는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첫 턴이 다 끝나가고, 모른척 두 번째, 세 번째 턴으로 넘어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든다. 순간순간 느끼는 것은 쉽게 증발해버리고, 그저 일상에 몸을 맡기는 자신만이 남은 것 같다.
마지막까지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항상 좋은 사람이어서만은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힘들 때 나오는 내 모습들을 어쩌면 조심스럽게 지켜보고만 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다시 꺼내서 남극 풍경을 감상한다. 티벳에서 만나 네팔까지 함께 여행했던 정사장님이 남극에 왔다며 이메일로 보내주신 사진들을 본 후로 나도 남극에 가고 싶었다. 그러다 읽게된 이 책에서 남극의 풍경을 조금 더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남극 세종기지에 파견 갈 의사 선발 공고에 지원한 것은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살아가던 정신없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보고자 하는 저자의 일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게된 남극에서 보낸 1년은 저자의 마음 속에 많은 것들을 새겨놓지 않았나 싶다. 가끔 갑갑할 때면 예전에 배낭 메고 몇 달 씩 돌아다녔을 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는 것처럼, 저자도 남극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인상 깊은 구절:
- 서울에서는 한 순간도 멈춰서는 안 될 거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멈춰 있지 않았으니까. 잠시라도 멈췄다가는 곧 뒤쳐져서 도태될 거 같았으니까. 그래서 폭풍우 때문에 한발자국 내딛기 힘들 때조차 앞으로 나가려고 아득바득 헤맸었다. 조금만 더 가면 목표지점에 도달할 거 같았지만, 아무리 가도 목표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었을 뿐이다. // 남극에서는 삶이 훨씬 단순해진다. 폭풍이 몰아칠 때는 쉬어야 한다. 다른 옵션은 없다. 단, 항상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것. 날씨가 개면 언제든지 다시 뛰어나갈 수 있도록. (p.85)
오랜만에 재미있게 그의 여행 이야기를 읽었다. 그것은 분명히 그의 여행 이야기가 내 여행에서의 추억들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에 느꼈던 두려움, 길 위에서 느꼈던 행복들,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 현지인 친구들과 사귀고, 집에 초대 받아서 같이 음식과 맥주를 마시던 기억들이 있다. 어쩌면 그 시절, 적절한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 시도해 보았기에 지금의 즐거운 추억이 있는 것이리라. 이제는 여행을 가면 좋은 호텔에서 묵고, 좋은 음식을 먹고, 부유한 관광객으로 지내다 돌아올 뿐이다. 보통 사람들과 우연히 만나 그들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그들이 취미로 다니는 탁구 클럽에서 같이 탁구를 치다가 맥주로 땀을 식히는 일 같은 건 더이상 벌어지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무엇이든 때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쩌면 하고 싶다는 그 마음을 놓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 '때'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배낭여행에 대한 즐거운 추억만큼이나 내게 여전히 뜨거운 것이 있다면 과학에 대한 열정이다. 요즘의 연구실 생활은 그런 과학에 대한 열정을 일깨우는 데다, 이전에 했던 경영 컨설팅 회사 인턴 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확실한 의미를 느끼고 있고, 결과물이 어떤 기여를 하게 되는지도 명확하게 알고 있고, 업무량은 매일 야근을 하던 때만큼이나 과중해 계속해서 주말 출근을 이어가고 있다.
할 수 있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거지. 일단 배낭을 메고 떠났던 것처럼, 한 자리에 앉아 몇 시간씩 양자역학 한 문제를 풀기 위해 매달렸던 것처럼, 매일 야근과 자주 있었던 주말 출근에도 나름대로 즐겁게 열심히 일했던 것처럼. 그런 경험들이 내 안에 남아 있다가 지금처럼 타올라야 할 때 연료를 공급해준다.
최근에 motivation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의 motivation은 대개 어디에서 나올까?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가장 흔한 것으로 위험을 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오는 motivation이 있다. 둘째, 어떤 것에 대해 강렬한 애정을 느끼는 데서 오는 motivation이다. 첫째를 negative motivation, 둘째를 positive motivation이라고 하자. 먼저, negative motivation을 살펴보자. 주변에서 굉장히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부릴 때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숙제 안 하면 혼난다', '공부 안 하면 시험에서 떨어진다', '제 시간에 안 나오면 상사한테 엄청나게 깨진다' 같은 것들로, 교육과정에서부터 사회생활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동기 부여 방법이다. 일을 제대로 못하면 회사에서 짤린다거나, 경계근무 서다가 몰래 자면 영창 간다는 것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공포에 기반한 동기 유발 방법으로, 일을 시행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억지로 하게 된다. 어쨌든 행동을 하게 만드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창의적이거나 혁신적 일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고, 장기적으로 최고 레벨의 성취수준을 달성하기에는 부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기적 성과를 내기에는 괜찮은 방법일 수 있고, 대부분의 사회에서 이러한 방식의 조종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다음으로, positive motivation은 그야말로 내적인 동기에서 유발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기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감정적인 선호에 의한 것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게 되고, 가치와 비전을 보기 때문에 열의를 가지게 되는 경우다. 정해진 기준이 아니라, 항상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므로 외부에서 설정한 성취 기준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영감을 받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면 최고 레벨의 성취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겪는 대부분의 동기 부여 방식은 negative motivation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사회적 압력이나 처벌 등이 그 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내적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그래서 positive motivation이 소중한 것이 아닐까.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참 소중한 것이다. 마음 속 횃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연료를 공급해 줄 것.
하버드에서 페이스북이 탄생한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은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상당부분 잠식하고 있다. 처음엔 그곳에 무언가를 읽고, 쓰고, 소통을 했으나 그곳에서 연결된 사람들의 범위가 어느 이상으로 커진 이후로는 그러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무언가를 계속 읽지만, 개인적인 삶의 단편이나 흘러다니는 정보, 공적인 의견 발표 같은 것들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고, 글을 쓰지 않다보니 자신에 대해서건 미래에 대해서건 점점 생각이 짧아질 뿐이다. 어찌보면 매일매일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어느 순간 부터 매일의 일과를 처리하고, 남는 시간에는 그저 흘러 지나가는 시시껄렁한 것들만 입력하고 있으니 삶에 대해 반추할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살다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무언가 기록하고 소통하고 싶지만, 사람들이 이런 공간에 쏟는 시간은 상당히 잠식된 상태다.
그렇다면 내가 과거에 기록했던 것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기록들이 벌써 수 년 째 쌓여있다. 당시에 고민의 결과로 남긴 글들을 읽어보면, 그 때의 고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때 발견한 해결책이 현재에도 적용되곤 한다. 인간이란 그처럼 상황이 달라질 뿐 매번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매번 어딘가를 졸업하고, 어떤 과정을 끝낼 때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적성에 대해 고민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될 지 생각하는 일이 반복된다.
과거에 고민했던 흔적들을 찾아보며, 내가 왜 지금 여기에서 의학에 몸담게 되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도 식지 않은 Science에 대한 열정. 천재가 아니어도 반복되는 작업을 통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순수학문 밖의 응용 분야. 그리고 한국에 머물러 있겠다는 현실적 요청. 그리고보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여러 요구조건과 제약조건 사이에서 도출된 결론이었다.
세월이 갈 수록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나 자신의 흥미와 열정을 물론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겠지만,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정보를 수집할 시간은 줄어들고, 심지어는 생각할 시간조차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어떤 선택을 하건, 미약한 인간이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제한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쏟아부을 것을 정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