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또래의 같은 병을 가지고 있는 비슷한 사람이라도 어떤 가족을 만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예후를 가지게 된다. 국적을 선택하지 못하고, 인종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떤 가족을 만나느냐도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있는 것이다.
혹자는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하여 운명을 개척해 나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 '때'라는 것이 마치 우리가 어린 아이였을 때처럼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의 운명은 오롯이 주변의 '보호자'의 판단에 내던져지게 되고, 그 결정에 따라 앞으로의 운명이 결정되어버린다.
예전에는 '귀신이 들렸다'고 치부해버렸던 정신 질환들이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왔는데, 어떤 사람들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고 적절히 회복하여 적절히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또다른 사람들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여 적절히 회복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격리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것이 '보호자'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사연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
모든 문화는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고, 다른 사람의 믿음은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한다는 사상은, 때론 한번쯤 곱씹어보야만 할 명제다. 소중하게 얻은 치료의 기회가 보호자의 '믿음'이란 것에 의해 날아가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은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하는지. 그런 상황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면, 이것은 사회적 살인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