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다시 꺼내서 남극 풍경을 감상한다. 티벳에서 만나 네팔까지 함께 여행했던 정사장님이 남극에 왔다며 이메일로 보내주신 사진들을 본 후로 나도 남극에 가고 싶었다. 그러다 읽게된 이 책에서 남극의 풍경을 조금 더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남극 세종기지에 파견 갈 의사 선발 공고에 지원한 것은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살아가던 정신없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보고자 하는 저자의 일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게된 남극에서 보낸 1년은 저자의 마음 속에 많은 것들을 새겨놓지 않았나 싶다. 가끔 갑갑할 때면 예전에 배낭 메고 몇 달 씩 돌아다녔을 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는 것처럼, 저자도 남극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인상 깊은 구절:
- 서울에서는 한 순간도 멈춰서는 안 될 거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멈춰 있지 않았으니까. 잠시라도 멈췄다가는 곧 뒤쳐져서 도태될 거 같았으니까. 그래서 폭풍우 때문에 한발자국 내딛기 힘들 때조차 앞으로 나가려고 아득바득 헤맸었다. 조금만 더 가면 목표지점에 도달할 거 같았지만, 아무리 가도 목표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었을 뿐이다. // 남극에서는 삶이 훨씬 단순해진다. 폭풍이 몰아칠 때는 쉬어야 한다. 다른 옵션은 없다. 단, 항상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것. 날씨가 개면 언제든지 다시 뛰어나갈 수 있도록. (p.85)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인생이었지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성적 고민이나 진로 고민 등을 하는 것을 보아 왔다. 중고등학생 때는 성적에 대한 고민, 외모에 대한 고민, 대학 진학에 대한 고민 같은 게 끊이지 않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진로 고민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대학원을 가야하나 취업을 해야하나? 어떤 분야로 취업을 해야하나? 전문직이 좋을까? 돈보다는 꿈을 쫓아야 할까? ... 그런 고민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하고, 내키는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대체 왜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결국, 그런 고민들이 '사회에서 높게 평가하는(혹은, 그렇다고 생각되는) 가치'와 '자신이 높게 평가하는 가치'의 충돌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가? 무엇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기를, 또 소유하기를 갈망하는가.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지위에 대한 불안' 문제를, 정의에서 시작하여 원인을 다섯 가지(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로 정리한 후,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섯 가지 해법(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을 제시한다.
우리의 불안은 대개 사회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오는데, 보통은 이 책을 통해 '사회에서 요구하는 조건'이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해 왔으며,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사회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산물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면,'자신이 높이 평가하는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회'를 선택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지위에 대한 불안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만큼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잘 파악하게 해주어서, 우리 자신이 어떤 가치체계를 가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가치체계는 충분히 변화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다만, 불안감을 어느 정도 해소한 후에는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내용을 좀 더 고민해서 써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내 경우에도 그렇고, 해법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게 된 후에는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현실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하나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정말이지, (만화 캐릭터이긴 하지만) 아리마 소우이치로, 미야자와 유키노를 비롯해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책을 추천해준 ㅅ군에게 감사를 전한다.
*인상 깊은 구절:
- 불편은 모욕을 동반하지만 않으면 오랜 기간이라도 불평 없이 견딜 수 있다. 병사나 탐험가들이 그런 예다. 그들은 사회의 극빈층이 겪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궁핍을 기꺼이 견디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버텨낸다. (p.17)
-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애정은 성취와 관련을 맺기 시작한다. 예의를 지킨다든가, 학교나 다른 곳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다든가, 계급이나 명성을 얻는 일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훌륭한 행동으로 남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근저에 깔린 감정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부엌 바닥에 집짓기 블록을 늘어놓기만 해도, 부드럽고 통통한 몸을 뒤치며 믿음이 담긴 눈으로 말똥말똥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를 끌어안아주었던 그 관대하고 무차별적인 사랑을 다시 붙잡고 싶기 때문이다. (pp.30-31)
-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p.35)
- 질투심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커다란 불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근접상태다. 일반 병사는 상사나 상병에게 느끼는 것과 비교하면 장군에게는 질투심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뛰어난 작가 역시 평범한 삼류작가보다는 자신에게 좀 더 접근한 작가들로부터 질투를 더 받는다. 불균형이 심하면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며, 그 결과 우리에게서 먼 것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지 않게 되거나 그런 비교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데이비드 흄, <인성론(A Treatise on Human Nature)>를 인용, p.59)
- "칭찬을 받으면 더 나아지는가?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진더냐? 금, 상아, 작은 꽃 한 송이는 어떤가?" 마르쿠스는 칭찬을 받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모욕을 당했다고 괴로워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파악하라고 권한다. (p.158)
- 우리는 어떤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p.267)
- 우리는 어떤 직업이 주는 매력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직업에 포함된 많은 것이 편집되고 오직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눈에 보이는 것이다. /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p.269)
- 그러나 울프는 쉽게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녀는 전형적인 정치적 전술을 구사하여, "도서관에 입장이 허용되지 않다니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묻는 대신 "나를 들여보내지 않다니 도서관 문지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물었다. 관념이나 제도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때는 고통의 책임을 아무에게도 묻지 못하거나 고통을 겪은 당사자에게 묻게 된다. 그러나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아니라 관념이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게 된다. 수치감에 싸여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여자라는 것일까/피부색이 검다는 것일까/돈이 없다는 것일까]?" 하고 묻는 대신 "나를 비난하다니 다른 사람들이 틀렸거나, 부당하거나, 비논리적인 것이 아닐까?" 하고 묻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무죄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질문이 아니라, 자연주의적인 관점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제도, 관념, 법은 어리석과 편파적이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pp.281-282)
- 연구를 해보면 지위와 관련된 근대의 이상 역시 자연스럽지도 않고 신이 주신 것처럼 보이지도 않게 된다. 그것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생산과 정치 조직의 변화에서 생겨난 것이며, 그 이후 유럽과 북미로 퍼져나갔다. 신문과 텔레비전에 주입되어 있는 물질주의, 기업가 정신, 능력주의에 대한 열망은 체제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그리고 다수는 이 체제에 의해 생계를 유지한다. (p.288)
- Wanderlust[여행을 좋아하는 마음] (p.311)
- 사람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든 가장 힘 센 인간과 커다란 자연―큰 사막, 높은 산, 빙하와 대양―사이의 차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주 큰 자연을 보면 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우스울 정도로 작아 보이는 것이다. 광대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사회적 위계 내에서 우리가 하찮다는 느낌은 모든 인간이 우주 안에서 하찮다는 느낌 안에 포섭되면서 마음에 위로를 얻게 된다. (p.321)
- 다른 사람들이 이해 불가능하지도 않고 혐오스럽지도 않다는 생각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회적인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더 커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이 모욕적이고, 천받하고, 초라하고, 추하다고 생각할수록, 그 삶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욕망도 강해진다. 공동체가 부패할수록, 개인적 성취의 유혹도 강해진다. (pp.330-331)
- 모든 인간이 귀중하다는 인식을 회복할 수 있을 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그런 인식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과 태도를 조성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어둡게 보지 않는다. 그럴 때 단단한 벽 뒤에 고립된 채 혼자 의기양양하게 살아가고 싶은 욕구는 약화될 것이며, 이것은 심리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된다. (pp.333-334)
-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p.384)
푸르니에의 유려하고 기품 있는 첼로 연주에 귀를 기울이면서, 청년은 어렸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매일 근처의 강에 가서 물고기나 미꾸라지를 잡던 시절의 일을. 그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냥 살아가면 되었다. 살아 있는 날까지, 나는 어떤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자연히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렇지 않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점점 나는 아무 존재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그것 참 이상한 얘기로군. 인간이란 살기 위해 태어나는 것 아닌가? 그렇잖아? 그런데도 살아가면 갈수록 나는 알맹이를 잃어간다, 그저 텅 빈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게다가 앞으로 살아가면 갈수록 나는 더욱더 텅 비고 무가치한 인간이 되어갈지도 모른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런 사고의 흐름을 어디에선가 바꿔놓을 수는 없을까?
제자 한 사람이 숭산 큰스님께 여쭈었다. "공(空)을 어떻게 깨닫습니까? 때로는 공함을 느끼는데요, 뭐랄까, 모든 게 무의미한 듯한 그런 느낌 말이에요. 하지만 그 느낌이 부처님께서 설하셨던 그런 종류의 공함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잘못 알고 있습니까?" 큰스님께서 답하셨다. "네가 말하는 공함은 진정한 공함이 아니야. 일종의 공허감이야. 공허감은 느낌이나 조건에 대한 집착이 바탕이 돼. 그런 느낌이나 조건이 변하면 그 공함이 없어지지?" "네, 그렇습니다." 제자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공이 아니야. 진정한 공은 우주의 본질에 대한 직관이며 변하는 법이 없어.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착만을 따라가. 그러니 실망하는 상황이 일어나면 전부가 무의미하고 공허하게 느껴지지." (후략)
pp.151-152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中
II.
마음을 일상에서 찰나 찰나 어떻게 지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이것을 올바르게 한다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삶은 마음으로 지은 업에 의해 많은 부분 결정된다. 그러나 수행을 하면 마음이 텅 빈 허공과 같이 되고 찰나 찰나 삶을 바꾸게 된다. 이것이 수행을 하는 까닭이다.
- Philip W. Anderson, Nobel Laureate in Physics 1977
17세기에 뉴튼이 운동법칙과 중력이론을 발표하고, 19세기에 맥스웰이 전자기학 법칙을 모두 발견하면서 이제 자연의 기본 법칙은 모두 발견되었다고 할 때가 있었다. 이 세계에 있는 모든 물체의 위치, 운동량, 질량 등을 모두 알고 있다면 원칙적으로는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예측할 수 있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푸앙카레가 초기 조건이 미세하게 다른 어떤 조건 하에서는 세 물체가 중력을 미치며 움직이는 시스템이 계속 멀어지거나 주기운동을 하지 않고 주기적이지 않은 이상한 상태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는 곧 잊혀졌고, 1960년대에 로렌쯔가 기상 모델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다가 다시 발견되었다. 로렌쯔가 시뮬레이션을 다시 해보려고 하다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중간에 나온 값을 집어넣었다. 컴퓨터는 소수점 아래 6자리로 계산하고 있었는데, 보여지기 위해 출력되는 값은 소수점 아래 3자리였다. 로렌쯔는 소수점 3자리까지 이루어진 숫자를 소수점 아래 6자리 숫자 대신에 입력한 것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예를 들어 단지 0.506127 대신에 0.506을 넣어 0.000127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숫자를 무시했을 뿐인데, 결과로 나온 수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것을 흔히 '나비효과'라고 한다. 북경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는 정도로 작은 요동이 북미에서 태풍을 발생시킨다는 비유이다.
이후 초기조건에 민감한 시스템들이 많이 연구가 되었다. 이를 카오스 이론이라고 한다. 카오스 계는 고전적인 방정식에 의해 지배됨에도 불구하고 초기조건에 민감하기 때문에 초기조건을 무한대의 정밀도로 잴 수 있지 않는 한 장기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후 카오스 이론은 파국이론(Catastrophe Theory), 사이버네틱스 이론(Cybernetics Theory) 등을 거치며 구성요소가 매우 많고 그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복잡계 이론(Complexity Theory)으로 발전되어 왔다.
세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복잡계(Complex System)로 취급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경제를 살펴보자. 한국 경제라는 시스템은 자영업자, 노동자, 자본가, 공무원 등의 엄청나게 많은 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 하면서 경제활동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많은 요소들이 상호작용 하게되면 작은 단위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를 복잡계를 특징지워주는 요소인 '창발(Emergence)' 현상이라고 한다.
이 책은 <복잡계 개론>이라는 제목 처럼, 복잡계에 대한 최신 연구들을 전 분야에 걸쳐 개략적으로 다루고 있다. 복잡계로 취급될 수 있는 대상이 경제학, 사회학, 경영학, 물리학, 컴퓨터학, 문학 등 수많은 분야에 걸쳐있기 때문에 다루는 대상도 다양하다.
지은이 윤영수 연구원과 채승병 박사는 현재 삼성경제연구소 복잡계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데, 둘다 이공계 출신인 까닭에 수리적 분석과 컴퓨터를 이용한 분석 방법을 큰 어려움 없이 쓰고 계신 것 같다. 책에서는 정성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었지만, 정량적 내용과 수학적 정의들은 부록에서 다루고 있다.
현직 경제연구소 연구자들이라 많은 예들이 주식시장, 기업 경쟁구도, 기업 내부 구성원 등 경제/경영 분야에서 나왔지만 수학, 물리학, 지구과학, 사회학, 컴퓨터학 등 다른 분야의 연구결과들도 충실히 소개하며 균형을 잡고 있다.
책 내용 중, 인터넷에서의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연구를 소개한 것이 있는데, 이게 작년 상반기에 연구실에서 했던 내용이어서, 추후 기회가 되면 내가 다시 돌려본 시뮬레이션 결과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나는 체 게바라를 잘 모른다. 그는 이미 20세기 혁명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으나,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이란 티셔츠에 새겨진 그의 붉은 빛 얼굴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체 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티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의학을 전공했다. 졸업을 앞두고, 그는 '즉흥적'으로 여행을 결정하고, 친구 그라나도와 함께 남아메리카 대륙을 통과해 북아메리카로 향한다. 그는 이후 여러 번 남아메리카 대륙 여행을 더 한 후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된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의 여행을 통해 체 게바라는 남아메리카 민중들의 고통을 목도하였으며, 이는 그가 의사의 길을 그만두고 혁명가로 다시 태어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 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학위를 받은 나는 라틴아메리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 아이티와 도미니크 공화국을 제외한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나라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방문했습니다. / 초기에는 학생 신분이었지만 나중에는 의사 신분으로 여행했습니다. 나는 점차 가난, 기아, 질병 그리고 가진 게 변변치 않아 아이를 치료할 수 없는 사람들과 밀접히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나는 유명한 연구자가 되거나 의학 발전에 어떤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들을 돕는 것이었지요."
- 체 게바라, <의과대학생들에게 한 연설>에서, 1960년 8월 20일
체 게바라는 과테말라 혁명에 참가했으며,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게릴라 투쟁을 통해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다. 이후, 쿠바 혁명정부의 2인자로 정부 요직을 역임하다, '나는 정치가가 아니라 혁명가이다. 쿠바에서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났다'는 편지를 남기고 사라진 후, 콩고 혁명, 볼리비아 혁명 등을 지원하다 결국 볼리비아 반군추격대에 생포되어 총살 당하고 만다. 그의 유언은 '지금의 실패는 결코 혁명의 종말이 아니다' 였다고 한다.
이 책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체 게바라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라틴 아메리카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출발해서, 모터사이클이 곧 고장나버려 도보와 히치하이킹 등으로 진정한 무전여행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면에서도 재미있게 읽히지만, 그런 와중에 이 위대한 혁명가의 정신적 변화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은 체 게바라의 차녀 알레이다 게바라가 썼는데, 그는 여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솔직히 말해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청년 시절의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이런 감정을 여러분과도 함께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글을 통해 청년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모험을 열망하며 장차 수행할 위대한 일에 대한 꿈을 안고 아르헨티나를 떠난 체 게바라, 그는 세상의 현실을 깨닫고 한 인간으로서의 성숙과 더불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질도 함께 키워나갔다."
다른 누구보다도, 딸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에 체 게바라는 무척 행복해하지 않을까.
*인상 깊은 구절:
- 우리는 상상가는 대로 머나먼 나라에 가보기도 하고, 열대성 바다를 항해하기도 하고, 아시아 전역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갑자기 마치 공상에서처럼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 "북아메리카에 가보면 어떨까?" / "북아메리카에? 어떻게?" / "포데로사를 타고!" /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이는 그 순간에 세운 기본 원칙, 즉 즉흥성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결정이었다. (pp.22-23)
- 보트에서 나는 들었네 / 그녀의 맨발이 물 튀기는 소리를 / 우리의 얼굴에서 / 굶주린 황혼을 보았네 / 그녀와 거리 사이를 오가는 / 내 마음, 내가 알지 못하는 / 그 길이 그녀의 눈에서 / 나를 벗어나게 하고 /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갈 힘을 만드네 / 그녀는 거기 있었네, 비와 유리창 뒤에서 울며 / 슬픔과 눈물로 흐려진 채 / 그녀는 거기 있었네, 소리칠 수도 없었네 / 기다려 줘요! 내가 / 당신과 함께 걸어갈게요. - 오테로 실바의 시 (pp.27-28)
-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소명이 영원히 세계 곳곳을 방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항상 호기심을 갖고,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세상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그리고 항상 어떤 곳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적어도 사물의 근저에 무엇이 있는지 깨달을 만큼 오래 머무르지 않는…. 우리는 표면적인 것만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p.95)
- 음울한 무기력과 불안한 피로감이 밀려들었다.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지만, '아무리 나쁜 일이 일어난다 해도 먼저 주눅들 필요는 없지' 라는 생각은 굳게 지켰다. (p.224)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던가. 그때의 나는 '삶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 질문들에 천착하고 있었다. 당시 활동하던 PC통신 동호회에서 그런 의문들을 토론하며 나름대로의 지식을 쌓아나갔다. 그 때 읽었던 책이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이다. 그는 인도의 성자로, 깨달음을 얻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그 책은 문답 형식으로 진리를 전해주고 있었다. 우리 집안은 대체로 불교에 귀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불교를 접한 나에게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은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인식하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다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물음, '그런데 이렇게 묻고 있는 나는 대체 누구인가'가 결국 불교의 수행방법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양사상은 이처럼 서로 통하고 있는지 모른다. 가르침에 의존하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아나가는 방법은 과학에 푹 빠져있던 나의 합리적 사고에 잘 맞았다. 누구도 무엇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진리는 네 안에 있으니 그것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난 것 같다.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책은 1999년에 출판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아마 그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을 쓴 현각스님은 미국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한 후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했다. 현각스님은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며 진리를 찾았지만 '하느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신다면서 왜 어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팔이나 다리가 없을까'와 같은 의문들에 대해 누구로부터도 납득할 만한 답변을 듣지 못해 답답함을 느낀다. 진리에 대한 열망이 그를 명문대에서의 학문의 길로 인도했지만, 결국 그가 답을 찾은 것은 한국이란 나라에서 온 스님으로부터였다.
이 책은 그의 출가 전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도 대단하다 말하는 예일과 하버드에서 학위를 했지만, 상아탑에서 진리를 찾지 못하고 결국 구도의 길로 들어선 한 벽안의 스님의 인생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힘으로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거기에 예일이나 하버드 학위 같은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끊임없이 진리에 대해,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닫는 한 인간의 삶의 여정이다.
그와 같은 진리에 대한 열망과 철학적 사유들이 나를 물리학으로 인도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진리를 찾고 싶어 물리학을 공부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때론 진리가 여기에 있구나, 하고 느낄 때도 있었다. 어디까지 가면 거기에 닿을 수 있을까? 박사학위를 하고, 긴 박사후 과정을 거쳐 전문 연구자가 되어도 어쩌면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인가? 물리학에서 나는 독특한 유물론적 세계관 배웠고, 가정과 선입견, 편견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를 익혔다. 그런 나에게, 불교식의 '끊임없는 질문에 의한 수행법'은 쉽게 다가왔고, 과학과 진리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물리학에서의 진리탐구란 결국 자연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우리가 보고 있는 자연의 이면에는 어떤 법칙이 숨겨져 있는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이 다루어야 하는 영역이 인간의 인지 한계를 벗어나 극미, 혹은 극대의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양자역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다룬다. 우리는 전자를 본 적이 없다. 전자라는 개념을 가정했을 때, 그에 따른 효과만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재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와 같은 인식론적 문제가 나타난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와 같은 개념들을 인식하고, 추상화하고, 생각하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파란 눈의 이 스님에게서 내 모습의 일부를 본다. 지금은 이 책이 절판되어 아쉬울 뿐이다. 현각스님은 자신의 스승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엮은 책 <선의 나침반(The Compass of Zen)>을 영어판에서 한글로 번역해서 한국에서 출판하기 위해 기초 작업으로 이 책 <만행>을 썼다고 하니까, 관심있는 분은 <선의 나침반>을 대신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결국 현각스님이 출가한 이유를 담고 있는 책이니까.
*인상 깊은 구절: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1>
- 교수님들은 한결같이 진리를 설파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수업시간마다 정의, 올바른 삶, 자비, 봉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면 그들의 고민이란 누가 다음 총장이 될 것인지, 교과목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 하는 것들이 전부였다. 그들이 진리를 설파하는 그 순간에도 바로 학교 담 너머 이웃들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생활로 고통받고 있었지만 교수님들은 주말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멋진 차를 타고 도시를 서둘러 벗어났다. 정부 관료들은 또 어떤 사람들인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등 하나같이 내로라 하는 대학을 나왔으며 전직 교수이기도 했던 그들이 펴는 정책이란 또 무엇인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더 힘겹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 나는 그런 교수나 정부 관료들의 삶이 비도덕적이라거나 나쁘다고 하는 가치판단을 넘어 결국 내가 교실에서 그들에게 배우는 지식이란 것이 뭔가 완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시달렸다. /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철학을 공부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노벨상도 타고 훌륭한 학자도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우리에게 안정된 직업을 가져다줄 수는 있어도 진정한 삶은 가져다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pp.95-96)
- 보고 먹고 즐길 거리가 많은 뉴욕의 한복판에서 하버드, 프린스턴, 버클리 등 명문대학을 나온 돈 많은 수재들과 함께 거의 매일 밤을 이렇게 놀고 마시지만 삶이란 그런 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내 친구들의 삶이란 무엇인가. 사회와 그들의 가족들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키우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 그들은 사회의 최상층부 진입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삶은 무엇인가. 오늘은 술집, 내일은 당구장, 카페, 디스코텍,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배우자,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직장…… 온통 그것들뿐이었다. 아무도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속으로는 수행자의 삶을 꿈꾼다고 하면서도 나를 꼬드기는 세상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갔다. /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결국 그런 삶은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삶 아닌가. 평생 쳇바퀴를 돌 듯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동물원 우리란 무엇인가? 내가 만든 것 아닌가. 그래 놓고 빠져나올 수 없다고?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갇힌 삶을 즐기기 때문이 아닐까. / 나는 택시에서 내려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걸으면서도 계속 이런 생각을 했다. / '이런 삶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게 뭐지? 모든 사람들이 마치 꿈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 뉴욕 시의 마천루 같은 꿈. 하지만 그건 꿈 아닌가. 꿈꾸는 사람은 결코 서로를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어.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자기들만의 꿈을 갖고 그 세계에 갇혀 있는 것 아닌가. 어떤 사람은 변호사의 꿈, 어떤 사람은 은행원의 꿈, 어떤 사람은 좋은 여자친구를 갖고 싶다는 꿈, 어떤 사람은 훌륭한 아버지의 꿈, 그러면 내 꿈은? 종교를 갖지 않는 철학자가 되겠다는 꿈? 더이상 책은 필요없어. 뭔가 행동이 필요해.' (pp.140-141)
- 무위란 물론 '행위가 없음'(non-action)이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무위도식하거나 빈둥거린다는 뜻이 아니다. 무위란 보통 인간 사이에서 발견되는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계산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위, 자기 중심적인 행위, 부산하게 설치는 행위, 억지로 하는 행위,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 일체 부자연스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 자발적이어서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구태여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행동. 그래서 행동이라 이름할 수도 없는 행동, 그런 행동이 바로 '무위의 위'(無爲之爲) 즉 '함이 없는 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행동방식, 이런 마음가짐, 이런 초월적 자유를 가진 자유인이 하는 일은 참된 일이기 때문에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만큼 자유인인가? (p.159)
- 내가 싫다, 좋다는 가치 판단을 놓아버리면 나는 그들과 조화를 이루어 잘 살아갈 수 있지만 내 견해, 내 상황에 집착하면 내 주변의 조건과 상황은 금세 나빠졌다.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수행하고 어디서나 마주치는 그들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나의 삶은 금세 최악의 상황으로 바뀌었다. / 자기 견해와 상황을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는 우리 몫이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를 버리지 않으면 스트레스와 고통이 나타났다. 스님은 스님대로 신도는 신도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각자의 상황을 고집하면 싸움이 일어났다. / 그리하여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미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자기가 처한 모든 생각과 견해를 버린다면 세계 평화가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우리는 심지어 그 작은 공간에서 세계 평화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테스트 한다고 농담했을 정도였다. / 만약 내 조건과 상황 견해를 버리면 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내 마음이 평화로워지면 젠센터가 평화로워진다. 그리고 그걸 안 이상 이미 세계 평화는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p.175)
- "그럼, 내가 먼저 묻겠어요. 당신은 하버드 대학원에 다니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이니 어떤 질문이든 대답할 수 있겠지요. 우선 아주 쉬운 질문 하나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불성(佛性)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중국의 조주선사에게 한 제자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조주선사께서는 '없다'라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제가 묻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왼쪽 팔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시계에는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 나는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당혹스러웠다. 할말을 잃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에 오갔지만 무슨 말을 던져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졌다. / 그러자 잠시 후 그는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 "당신은 하버드에 다니는 수재인데 대답을 못하는군요. 아이들도 답할 수 있는 질문인데 말이에요. 당신 머릿속엔 쓸데없는 지식으로 가득 차 있군요. 하하하." / 그의 방을 물러나와 다시 선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참선수행을 계속했다. 그때는 1월 한겨울이었는데도 내 몸에선 식은땀이 흘렀고 심장은 쿵쿵거렸다. 내가 그렇게 왜소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런 간단한 질문에 대답을 못하다니……. (p.179)
- 정치나 종교 그 자체로는 이 세상을 도울 수 없습니다. 지식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노력하면 뭔가 겉모습을 약간 변형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합니다. (p.184)
- 옛날 학자들은 말과 행동이 하나였습니다. 요즘 학자들은 진리와 정의, 평화, 도덕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있고 이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정치가들, 종교인들, 사회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모두 평화를 얘기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평화를 하겠다는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면 그것이 진정으로 이 세계를 돕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잘 이해가 안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났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을 붙잡고 '오직 모를 뿐……' 하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수행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생각이 끊어지고 집착이 사라집니다. 생각 이전의 본성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됩니다. 그것이 조화이고 평화입니다. (pp.188-189)
-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다. 눈을 감기 바로 직전, 죽는 순간에 아무리 1천 개의 박사 학위가 있어도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p.214)
- "탱큐, 탱큐.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 자신 안에 이미 수백만 달러가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모를 뿐입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p.237)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2>
- 교수님은 나에게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그의 얼굴에는 얼핏 지난 생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게 엿보였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한 것이다. 저토록 모든 사람들로부터 추앙받는 노교수가, 이제 모든 것을 이뤄냈으리라는 충족감에 가득 차 있어야 할 나이에 아직도 뭔가 아쉬움에 한쪽 가슴이 뻥 뚫린 듯한 허전함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 앞에서 마음이 아팠다. (p.17-18)
- 첫 주 동안 나는 거의 매일 눈물을 흘렸다. 쉼없이 절을 하면서도 참선하고 앉아 있으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밤에는 어둠 속에서 뒤척였다. 아침이면 베개가 마치 물에 젖은 듯했던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너무 고통스러워 다 때려치우자 결심하기도 했다. / '그래 지금 그만둬도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1주일 정도 했으니 할 만큼 한 거야. 이제 나는 보통사람들처럼 살면 돼. 여자친구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이고 안정된 직장을 찾아 일하면서 주말이나 휴가 때 젠센터에서 틈틈이 수행을 하면 될 거야. 부모님들은 돌아온 아들을 보며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를 반겨하실까. 그들은 나를 여전히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고 나는 그들 어깨에 지워 드린 큰 짐을 내려놓게 하는 효자 노릇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이 모든 의심과 고통 속에서도 수행을 멈추지는 않았다. 거의 2주가 흐르자 내 마음이 서서히 맑아지고 잡생각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아침안개가 햇살에 걷히는 것처럼 모든 의심과 고통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 앞에 펼쳐진 길이 보다 명확하게 보였다. / '그래 출가를 하자.' / 용맹정진을 마치고 보스턴으로 돌아와 나는 여자친구를 만났다. 그리고는 내 결심을 이야기했다. 물론 그녀는 너무나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그녀는 내가 기도를 하는 동안 결국은 자기 곁으로 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는데 내가 스님이 되겠다는 결심을 더 굳히고 오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 나는 그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 액크 교수에게 보고서를 내야 했기 때문에 수행을 끝낸 뒤 바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 나의 미래를 얘기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내가 결국엔 스님이 되는 것으로 결론 지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녀와 이것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실상 출가에 대해 다른 사람하고 얘기해봐야 나를 더 약하게 하고 서로에게 실망만 더 안겨다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일에 더욱 집중했고 적절한 시기가 되면 적절한 인연이 나에게 다가올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pp.26-27)
- 저 얼굴과 몸에서 풍겨나오는 분위기는 하버드나 예일에서 만난 그 어떤 천재적인 철학자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학자들의 얼굴은 노소를 막론하고 찡그려져 있었으며 어두웠다. 그들은 하루종일 우리에게 진리와 빛을 가르쳤지만 정작 그들은 지옥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큰스님의 가르침은 말이 아니라 저 얼굴, 저 눈, 저 분위기로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p.29)
- 나는 여자친구 얘기를 했다. 그녀는 큰스님도 잘 아는 제자였다. 나는 큰스님께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출가를 할 수 있을지 여쭈었다. / 그러자 큰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 상태에선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저 수행만 열심히 하십시오.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회가 올 겁니다. 서로 많은 말을 해봐야 도움이 안 됩니다. 마음이 맑아지면 어떤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알겠지요?" / 나는 평온해진 마음으로 대답했다. / "예, 알겠습니다, 큰스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 방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미소를 머금고 계시던 큰스님은 강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말씀하셨다. / "스님이 되는 길은 좀더 빠른 길을 간다는 겁니다.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빨리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 역시 깨달을 수 있지요. 하지만 어렵습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수행을 하면서도 마음속은 엄청나게 싸움을 해야 합니다. 아내나 남편을 갖고 아이들을 갖게 되면 아무래도 돈도 벌어야 하고 신경 쓸 일이 많아지지요. 그리고 가족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되고요. 하지만 당신은 이제 빠른 길로 들어섰습니다.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하하하하." (p.31)
- "스님이 되는 것에 단 1퍼센트라도 주저함이 있으면 안 됩니다. 이 1퍼센트가 나중에 당신을 죽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이 1퍼센트는 나머지 99퍼센트보다 강합니다. 1퍼센트는 점점 자라 당신의 마음을 완전히 주무를 것입니다. 그러면 포기를 하고 다시 돌아갈 겁니다. 99퍼센트가 명확해져 완전히 100퍼센트가 될 때 나를 다시 찾아오세요. 오케이?" (pp.36-38)
- 인간의 길 / 빈손으로 왔다가 / 빈손으로 가는 게 / 인생이다. / 태어났을 때,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 죽을 때, 어디로 가는가? / 삶은 구름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 그러나 본래 구름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 삶과 죽음, 우리 인생의 오고 감 / 모두 이와 같다. / 그러나 언제나 변하지 않는 맑은 게 하나 있다. /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순수하고 맑은 게 있다. / 그렇다면 맑고 깨끗한 것이 무엇인가? (숭산 큰스님 말씀, p.60)
- 스님이 되기 전 내 삶은 항상 무언가를 좇는 삶이었다. 명예를 좇고, 지위를 좇고, 욕망을 좇고, 사랑을 좇고, 돈을 좇고, 직장상사를 좇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생각을 좇고, 친구들의 뜻을 좇고, 기회를 좇고…… 끝없이 좇고 좇고 또 좇는 삶이었다. /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니 잠을 자면서 꿈을 꿀 때조차 말이다. /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다. 머리가 좋고 재능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더 이런 상황에 내몰리기 쉽다. 그게 세상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다를 게 없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잠자리에서조차 무언가를 얻으려고 아등바등하지만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설사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순간이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p.73)
- 하버드와 예일에서 공부할 때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님들로부터 배웠다. 나를 비롯한 내 친구들의 꿈이란 바로 그런 교수님들처럼 사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사회를 움직이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 그러나 정작 그들의 삶이란 피곤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스물 네 시간 온통 일, 일, 일, 일에 휩싸였고 항상 무언가를 좇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내놓을까봐 두려워했고 그들의 질투 때문에 괴로워했다. 혹 실수라도 할까봐 두려워했으며 자기 잘못이 드러나면 자존심의 상처 때문에 견딜 수 없어했다. (p.73)
- 대부분 사람들에게 마음과 행동은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내가 처한 현실과 내가 원하는 마음은 분리되어 있다. 그것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 종종 우리는 이 순간을 살지 않고 과거나 미래에 산다. 지금 이 순간을 잊어버리고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흥분과 기대로 산다. 밥을 먹으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생각은 길들지 않은 야생마처럼 이쪽 저쪽으로 돌아다닌다. 단 한순간도 만족하는 법이 없다. / 스님의 삶이란 매순간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삶이다. 바로 이순간 있는 그대로 완벽한 삶이다. 진정한 자유인의 삶이다. / 나는 집도 없고 옷도 없고 의료보험도 없고 차도 없다. 하지만 행복하다. 매일매일 자유롭고 하루하루 새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내 뺨을 스치는 바람, 귓가에 들려오는 새소리, 코에 닿는 향냄새, 혀로 느끼는 차의 맛, 바로 이 순간의 삶이 진리인 삶이다. (p.74-75)
- "연구를 열심히 해서 과학 발전에 기여하는 삶도 값진 것 아니었겠느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마티유는 이렇게 대답했다. / "운이 좋게도 저는 이 세상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사람들과 교류했습니다. 위대한 음악가들도 사귀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만나면서 '저것이 내가 열망하는 것인가?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은가?'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비록 그런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발휘하는 천재성을 빼면 가장 소박한 인간적인 완성, 예를 들자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든가, 선량함 혹은 진실함이 동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러다 인도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티벳의 위대한 스승 칸규르 린포체를 만났습니다. 단 3주일 동안 그를 만났을 뿐인데 저에겐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은 그저 선량함이 흐르는 70세의 노인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서 저는 소위 '명상'이라는 것을 하는 듯한, 다시 말해 그분의 면전에서 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바로 그분의 인격, 그분의 존재 자체였습니다. 그분에게서 나오는 깊이, 힘, 고요함이 제 정신을 열었던 것입니다." (p.142)
-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아놀드 토인비 경은 죽기 2,3년 전에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기자들로부터 이런 질문이 나왔다. / "미래 역사가들이 만약 20세기 역사를 쓴다면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었다고 쓸 것 같습니까?" / 그들은 토인비의 입에서 제2차 세계대전, 원자폭탄 발명, 히틀러의 등장, 공산주의의 확산, 비행기의 발명, 정보통신의 비약적인 발전 등이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 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답이 튀어나왔다. / "가장 중요한 사건은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 서양에 전파된 것이지요." / 그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토인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pp.144-145)
- "가장 하찮고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 바로 나에게 하는 행동이다." /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p.176)
-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 장 프랑수와 르벨은 "과학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우리들 각자의 '마음'에 닿는 이야기는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pp.179-180)
- 우리의 인식 체계는 컴퓨터와 같습니다. 컴퓨터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식 또한 '무언가'가 조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과학이라는 학문 체계를 세웠습니다. 그 '무언가'가 우리의 인식을 조종하고 과학을 조종하는 것입니다. / 바로 이 '무언가'를 찾는 것이 선(禪)입니다. (p.183)
- 선이란 특별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말, 생각, 행동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활하면서 가만히 보면 마음과 몸이 따로 놉니다. 먹을 때, 잘 때, 걸을 때 우리 몸은 먹고 자고 걸을지 몰라도 마음은 끊임없이 따로 움직입니다. 참선수행을 하면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하나가 됩니다. 그때 여러분은 이미 세계 평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났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을 붙잡고 '오직 모를 뿐……' 하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수행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생각이 끊어지고 집착이 사라집니다. 생각 이전의 본성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됩니다. 그것이 조화이고 평화입니다. (pp. 196-197)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인생을 정리해야 한다면 어떤 말을 할까?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 자신의 삶이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삶의 원동력이 되곤 한다. 죽음이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랜디 포시는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컴퓨터공학 교수였다. 그러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는 카네기멜론대학에서 '마지막 강의'라는 이름으로 강의를 하기로 한다. 아직 어린 그의 세 아이들에게 닿을 수 있는 '타임캡슐'로서. (참고로 그는 2008년 7월 25일 작고했다)
그의 강의 주제는 '어린 시절 꿈을 이루기'였다. 무중력상태에 있어보기, NFL 선수 되기, <세계백과사전>에 내가 쓴 항목 등재하기, 커크 선장(스타트렉) 되기, 봉제 동물인형 따기, 디즈니의 이매지니어 되기 등이었다. 그리고 이 꿈들을 어떻게 이루었고, 또는 실패했지만 어떤 경험을 얻었는지 차분하게 들려준다. 때론 유치하기도 하고, 때론 어이없기도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남은 인생을 즐기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닿을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얼마 전 포스팅 했던 <동양기행>의 후지와라 신야는 '역시 인간이 제일 재미있다'고 썼다. 나 역시 랜디의 인생이 재미있었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 내 인생을 더 잘 살아나가고 싶었다. 물론, 뒷이야기를 더 알기 위해서는 책을 읽으면 되지만, 동영상으로 기록된 그의 '마지막 강의'를 보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싶다.
*인상 깊은 구절:
- "네가 잘못하고 있는데도 더 이상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널 포기했다는 뜻이야." (p.60)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이 물건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비록 신성한 보물 같은 나의 새 컨버터블이라 할지라도, 그냥 물건일 뿐이다. (p.103)
- "……장벽은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려고 존재합니다. 장벽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 있는 것이지요." (p.108)
- 어쩌면 좀 괴팍스러운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휴지통이나 손수레에 흠집이 생겼다고 새것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휴지통이나 손수레를 가지고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구별하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재이와 나에게 우리의 흠집난 차는 이후 결혼생활에 하나의 명제가 되었다. 모든 걸 다 고칠 필요는 없다. (p.123)
- 시간 관리: 시간은 명쾌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마치 돈처럼. / 계획은 늘 바뀔 수 있지만, 단 분명할 때만 바꿔라. / 스스로에게 물어라. 옳은 일에 시간을 쓰고 있는가? / 체계적인 파일 시스템을 만들어라. / 전화를 사용하기 전 다시 생각해봐라. / 위임해라. / 제대로 쉬어라. (pp.148-152)
- 시간은 당신이 가진 전부다.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152)
-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 스스로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게 지도하는 것이다. 체력단련을 위해 헬스클럽을 다니는 일의 좋은 점은 공을 들이면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도 그래야 한다. 교수의 책임은, 거울을 보았을 때 자라나는 근육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학생들도 자신의 내면이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p.155)
- "나는 자네 머리가 좋다는 것을 알지. 하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다 똑똑한 사람들이야. 머리 좋은 것이 다가 아니야. 내가 우리 팀에 원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을 도와가며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이야." (p.162)
- 불평하는 것은 전략이 될 수 없다. 우리 모두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불평하는 데 쓰는 아주 약간의 시간도 목표를 달성하는 데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좋을 게 없지 않은가. (p.190)
-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 중 상당 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염려하는 데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만약 누구도 다른 사람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걱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이나 우리의 일에 33퍼센트는 더 능률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p.192)
- 그룹 안에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팁: 정중하게 사람들을 대해라. / 공통점을 찾아라. / 최적의 만남 조건을 만들어라. / 모두가 이야기하게 해라. / 문 앞에서 나를 버려라. / 서로를 칭찬해라. / 대안을 내놓으려면 질문 형식으로 해라. (pp.194-195)
-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장점을 가졌지요. 기다려줘요. 그러면 드러날 겁니다." (p.198)
-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결국 깨달은 사실인데요. 여자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을 판단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오직 그들이 하는 행동만 집중해서 보면 되지요." (p.198)
-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이 옳다. (p.200)
- 새로 시작하는 회사들은 종종 창업했다 실패한 경험을 지는 사람을 최고경영자로 영입하기를 선호한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미래에 다가올 실패를 피하는 방법을 안다. 성공가도만 달린 사람은 뜻하지 않은 모든 위험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 경험이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은 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pp.203-204)
- 우리 인생에는 때때로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법이고, 그럴 경우 정중한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이 나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p.207)
- 직장 밖에서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되고 난 후 성공적으로 오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부부들을 만나면 꼭 그 비결을 묻고는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열심히 노력했지요." (p.213)
- 적절한 사과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1)내가 한 일은 잘못됐어. (2)너에게 상처를 준 점 미안하게 생각해. (3)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pp.221-222)
- 그 어떤 직업도 우리보다 하찮은 것은 없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우편물을 분리할 수 없다면(혹은 하지 않을 것이라면), 당신이 다른 일을 잘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p.231)
-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질문하라. 그저 묻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기대하는 것보다 자주 당신이 듣게 될 대답은, "물론이죠."가 될 것이다. (p.245)
무심코 펼쳐든 신문에서 이 글귀를 마주했을 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신문에 실리는 북 섹션 기사가 일종의 마케팅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 마케팅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 꺼림칙 할 때가 있어서 주의하곤 한다. 때론 양서보다는 마케팅만이 요란한 책을 허무하게 구입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그런 마케팅의 요소가 엿보였다. '제 23회 마이니치 예술상 수상작'이라고 홍보하고 있었는데, 그 상을 수상한 해가 1982년이다. 이 책 역시 그 때 일본에서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이 무슨 까닭으로 지금에 와서야 한국에 번역되어 출판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인도방랑>, <티베트방랑>을 소개하고 있었지만, 그런 책 역시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는 여행의 길 위에서 마주친 수많은 일본인 배낭여행자들을 떠올렸다. 엄청나게 많은 일본인들이 배낭 하나를 메고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어로 적힌 일본 가이드북을 보며 세계를 누비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토양에서 그런 여행자들이 나오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저자인 후지와라 신야는 1944년 후쿠오카 출신으로, 20대부터 10여 년 간 인도, 티벳, 중동 등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여행을 떠날 때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데, 이후로는 사진가로 활동해왔다고 한다. 그런 약력을 보고 있자니 문득 티벳에서 만난 '핫산'이라는 일본 아저씨가 떠올랐다. 특이하게도 이슬람교도였고, 죽은 그의 부인도 이슬람교도였는데,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라싸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가는 길에, 시가체부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공동으로 렌트한 지프에 합승했었다. 티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일본에서 출판한다고 하던데, 어쩐지 일본의 저력은 오히려 이런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후지와라는 1980년대에 약 400일간 유럽이 시작되는 곳이자 아시아의 서쪽 끝인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시작하여 시리아, 이란, 파키스탄, 인도, 버마, 태국, 중국, 한국을 거쳐 아시아의 동쪽 끝인 모국 일본으로 돌아간다. 말하자면, 아시아의 스펙트럼을 장기간의 여행으로 연속적으로 경험한 것이다.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아시아의 황량한 서쪽에서, 힌두문화의 인도를 거쳐 물과 식물이 풍부한 불교적인 아시아의 동쪽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느낀 것이다. 그리고 고국에 돌아가 일본이라는 정체성을 고민한다. 그렇다. 여행이라는 것은 다른 이의 삶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아닌가.
사진가의 책 답게 올컬러의 사진이 많이 실려있다. 책도 코팅지가 반양장으로 묶여있어, 물리적인 질에 있어서는 우수하다. 그 안에서 후지와라의 프레임 속에 잡힌 1980년대의 아시아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런 책을 읽고 그 많은 일본 친구들이 세계를 향해 떠났던 것일까. 책의 마지막에는 '여행의 빙점'이란 짧은 글이 실려있다. 그 글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삶의 온도가 빙점 이하로 내려갔을 때, 그렇게 동양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인상 깊은 구절:
<동양기행 1>
- 동양인들의 삶은 개인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의 삶은 길가에 버려져 있다. 집집마다 대문이 열려 있다. 개인적이어야 할 공간이 사람들 면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8년 전 캘커타를 방문했을 때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어느 가정집을 지나가다가 출산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다. / 웃음이 터질 것만 같다. 나는 그래서 동양을 사랑한다. 몇 년 전부터 나와 똑같은 혈액이 물결치는 동양의 자태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분명하게 바라보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좋아하는 부분만 선택하는 게 아니라 모든 장면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볼 것. 선악과 아름다움과 추함이 뒤섞여 있는 그 거리에 세계가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pp.49-52)
- 언젠가 한번은 수첩에 연필로 적어둔 장거리버스 시간표의 3이라는 글자가 양의 목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한 방울 선지피 때문에 더럽혀졌다고 중얼거리며, 그 위의 5라는 글자를 선택한 적이 있었다. 길흉의 조짐을 들먹이며 마음 졸이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레 펼쳐지는 형편에 몸을 맡긴 채 예측하지 못한 우연을 통해 무엇이 나타날 것인가 하고 기대감을 품는, 여행 중에나 맛볼 수 있는 일종의 장난이다. (p.167)
- 이스파르타가 여기인가요? 그것은 순전히 즉흥적으로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애시당초 이스파르타로 가야 할 이유 따윈 없었다. / 그러나 이 즉흥적인 거짓말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말이란 언제든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 나의 경우처럼 어제 했던 말이 오늘 돌아오는 날도 있다. 1주일 후, 한 달 후 돌아올 때도 있다. / 10년 전에 무심코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혀진 그 말이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면 10년 후의 나를 결정해주는 경우도 있다. (p.170)
-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태도를 결정해버리면 나중에 후회할 일만 생긴다. (p.254)
- 다가오는 거리……멀어져가는 거리 / 거리는 / 사람은 / 여행은 / 두 번 다시 되돌이킬 수 없다. (p.285)
<동양기행 2>
- "쌀이지요." / 라고 남자는 대답했다. 나흘째가 되던 날 오후 3시쯤, 야외 노점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전쟁 중 일본군에게 일본어를 약간 익혔다는 60세 전후로 보이는 중국계 버마인이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이 남자에게 버마 사람들은 보기에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 않은데 도대체 뭘 먹고 사는가, 라고 물어보았다. / '쌀'이라는 대답이 생소하게 들리지 않았다. 민가라돈 공항에서 본 그 엄청나게 드넓은 수전의 풍경을 상기했기 때문이다. / "그런 이곳에선 농부들만이 열심히 일하고 있겠군요."라고 말하자 "농부들도 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하고 남자는 대답한다. "논두렁에 서서 이렇게 뒷짐만 지고 있지요." 남자는 몸짓까지 해보였다. / "논만 바라보는 겁니다. 비가 오든, 날이 개든 벼는 멋대로 잘 자라니까요." / "하지만 모내기도 해야 하고, 수확이나 탈곡은 사람이 해야 하잖아요?" / "그때가 되면 동인도의 아쌈이나, 나가랜드 주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와요. 힘든 일은 그 사람들이 다 해줘요." / "그렇다면 버마의 농부들은 평생토록 뒷짐을 지고 논만 바라본다는 말이군요?" / "뭐 그런 셈이죠." (p.85)
- 예전에 표고 4,000미터의 티베트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두 번 다시 저 푸르디 푸르른 하늘을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상에 내려온 뒤에도 그때의 확신은 변하지 않았다. 어느 지역을 여행하든 하늘이 탁하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p.174)
- 이 여행에서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나는 단지 '길을 걷는 자'였으며, 그 길에서 마주친 것들을 '보고하는 자'에 지나지 않았다. (p.261)
- 그리고 한국. / 이곳에서 다시금 미소가 부활한다. 그러나 버마, 태국 같은 불교적 점화미소는 아니다. 유교적인 박애의 미소다. / 그 미소는 때때로 격한 슬픔과 분노를 드러낸다. '너무나 인간적인' 한국인들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고도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판단에 따르면 공업제품을 대량생산하는 방법이 이 나라의 국민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 무엇보다도 이들에겐 자기제어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의 다정한 마음이다. / 판소리를 듣고 그렇게 확신했다. 한국을 여행하면서 썼듯이 판소리는 감미로움을 뛰어넘는 격정적인 인간의 슬픔과 뜨거운 분노였다. (pp.281-282)
- 인공환경에서의 인간은 인간사회에 봉사하는 일종의 종속물이다. 그것은 인공환경의 목적이기도 하다. 자연환경에서의 인간은 그 사회의 자의적 목적에 종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사회 모두 자연환경에 종속되곤 한다. / 자연적 환경에서는 인간과 사회가 각각의 자아로서 대립한다. 즉, 서로에게 '상대'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 상대성에 의해 인간과 사회가 제어되고, 생존의 모럴리티는 체계적인 양식을 갖추게 된다. 다시 말해 주어진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과정에서 자의식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 같은 자의식이 종교가 된다. 종교적 양식이 상반되는 이슬람권에서도, 힌두권에서도 동일한 질서가 성립된다. / 그러나 인공적 환경에서는 이 같은 질서가 성립되지 않는다. 인간의 생존에 대한 상대성이 결핍되어 있다. 종교, 즉 모럴리티를 탄생시킬 기반이 없고, 욕망을 제어할 장치가 없다. 나의 자아가 무엇인지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없다. (pp.286-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