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 지하에 있는 해부학 실습실 앞에 다다르자 포르말린 냄새가 풍겼다. 클라스메이트들과 학기가 끝나면 버릴 낡은 옷으로 갈아입고 수술복을 착용했다. 실습실에 들어가자 스텐인리스 스틸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검은 것으로 싸여 있는 카데바가 있었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착용하고 카데바 주위에 둘러앉았다.
시신을 기증해주신 분에 대한 감사의 의식을 한 후, 실습이 시작되었다. 덮개를 걷어내고, 비닐을 벗겨내자 카데바가 보였다. 그 때까지의 나는 어떤 하나의 비인격적 개체를 만지며 해부해서 공부한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했고, 그래도 그런 생각으로 어느 정도는 담담한 느낌으로 실습에 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등의 피부를 벗겨내고, 피부 아래의 노란 지방조직이 드러날 수록, '카데바의 철저한 비인격화'와 실습실 곳곳에 붙어 있는 '시신을 기증한 분에 대한 감사함' 같은 글귀에서 인식되는 '인격으로서의 카데바'의 개념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숨쉬고 있었을 카데바가 인격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자리 잡을 수록 담담하게 실습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살아있는 인간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인체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고, 실제 조직을 살아있는 사람에서 보거나 만져볼 수 없으니 카데바를 통한 실습이 필수적인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시신에 대한 존중'과 '해부학 실습을 담담하게 잘 할 수 있는 것'은 양립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 같다. 카데바를 철저하게 비인격적 존재로 생각해야만 날카로운 메스를 들고 카데바의 피부와 근육을 열어가며 구조를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메스꺼움을 느끼면서도 날 선 메스로 카데바의 피부를 무사히 벗겨냈지만, 한 학기 동안 계속해서 함께할 카데바를 어떤 존재로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심해졌다.
인간 지방조직의 냄새와 방부액이 섞인 역한 냄새를 맡아가며 앞으로 해야할 수많은 해부학 실습들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걱정이 된다. 카데바를 인간이 아니라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나을텐데,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ET를 해부한다고 하면 기분이 좀 나을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어떻게 해부학을 연구했을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