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비셰프는 이러한 방법을 완벽에 가깝게 달성했지만, 그 방법론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류비셰프는 많은 것에 흥미가 있었으며, 또한 자신의 시간통계 방법을 사용하여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해냈다. 요컨대, 그는 자신의 방법을 사용하여 더욱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 그는 매일 8시간 이상을 자고 운동과 산책을 즐겼다. 또한 한 해 평균 60여회의 공연 및 전시를 관람했다고 한다. 그가 가장 역점을 두었던 학문적인 면에 있어서도 전공인 곤충분류학, 해부학을 비롯하여 진화론, 수리 생물학, 유전학, 분산분석 등에 많은 저서를 썼다. 과학 외에도 철학, 역사, 문학과 윤리학 등에도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많은 원고를 남겼다. 또한 류비셰프는 생전에 70권의 학술 서적과 총 1만 2500여장의 논문 및 연구자료를 썼다. 어찌보면 다방면에 능통했던 르네상스인이나 프랑스의 백과전서파가 떠오른다.
나 역시 하고 싶은 일은 많았고, 거기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시도한 방법이 우선순위를 두고, 상위에 있는 것부터 실행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일에 있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조언을 구하기가 용이하다. 하지만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마땅한 역할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할 수 있을까? 류비셰프는 이 고민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간통계 방법을 개발했다. 마치 가계부를 쓰는 것처럼 자신이 사용한 시간을 꼼꼼하게 기록한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적나라하게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어떤 일을 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유용했다. 류비셰프는 이 방법을 26세 때 시작하여 평생을 계속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이용하면서 풍요롭게 살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삭막한 방법'의 '매혹적인 결과물'에 반해 버렸다.
덧> 책에서 류비셰프의 시간통계 방법을 조금만 더 상세히 다루어 주었다면 좋았겠다.
인상 깊은 구절:
- 류비셰프는 마치 자신이 지상에 있을 시간을 미리 계산하고 있었던 것처럼 '때가 되었다. 이제 절대로 미루지 말고 즉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p.92)
- 류비셰프와 그 동료들이 가졌던 문화적 깊이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인들 혹은 프랑스의 백과전서파와 비견될 만하다. 당시 학자는 곧 사상가였다. 학자는 자기 학문과 전체 문화 사이의 조화를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과학과 철학이 함께 진보하였다. 오늘날 이런 협력관계는 파괴되었다. 물론 현대의 학자들도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한다고 여긴다. 무의식적으로나마 협소한 지식이 위험하다고 느끼며 균형을 되찾기 위해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인 '앎'을 동원한다. 이들에게는 문화도 '앎'의 대상이다. 새로운 조류를 '뒤따르며' 책을 읽고 그림을 감상하고 음악을 듣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는 셈이지만 정작 내면적인 자기화 과정이 없다. 예술의 도덕적, 영적 측면을 파악해내지 못하며 깊은 성찰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문화적으로 깨인 사람이 되며 정보로 무장하지만' 그저 그뿐, 이것이 문화적 차원으로 전환되지 못한다. (pp.112-113)
- 만인이 믿고 따르는 상식도, 모두가 인정하는 권위도 그에게는 절대적이지 못했다. 이론의 권위는 대중적 인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허무주의자라고 불렀다. '어떠한 권위에도 기울지 않고 제아무리 인정받는 원칙이라도 신념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라는 투르게네프의 정의에 따른 허무주의자였다. 여기에 한가지만 덧붙이자면 류비셰프의 허무주의는 창조적 허무주의였다. 그의 목적은 타도가 아니라 대안 제시였고 논박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었다. 그의 머릿속 깊숙한 곳은 늘 활화산 같은 상태였다. 그는 아무도 진리를 보지 못하는 곳에서 진리를 찾았고 누구나 진리임을 확신하는 것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자연의 본질, 진화의 원칙, 인생의 합목적성 등 이미 오래 전부터 아무도 의혹을 품지 않는 부분에서 그는 거침없이 질문을 던졌다. (p.115)
- 옛말에 '의사가 단지 의사이기만 하면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없다'라고 했다. 아마 학자도 학자이기만 하면 훌륭한 학자가 될 수 없나 보다. 상상력과 감동이 사라지면 창조력도 상실되게 마련이다. 창조력을 유지하자면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자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구태의연한 대상에만 매달리게 된다. (p.143)
- 그는 늘 "현실과 타협하는 자는 미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p.154)
- 류비셰프는 '끝이 좋기를 바란다면 마음이 끌리는 일을 택하라'고 하는 우화 작가 크릴로프의 말에 따라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p.160)
- <류비셰프의 편지 中>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학자, 그것도 짧은 시간 동안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 학자는 학자로서 아무런 가망도 없습니다.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다면 학문의 길을 아예 포기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p.163)
- 시간 통계 방법 외에도 류비셰프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생활 원칙을 지켰다.
1. 의무적인 일은 맡지 않는다.
2. 시간에 쫓기는 일은 맡지 않는다.
3. 피로를 느끼면 바로 일을 중단하고 휴식한다.
4. 열 시간 정도 충분히 잠을 잔다.
5. 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적당히 섞어 한다.
이런 원칙은 류비셰프의 개인적 특성과 주변 상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아무한테나 권할 수는 없다. 류비셰프는 자신의 업무 능력을 정확히 진단해 가장 적합한 생활 원칙을 수립하였다. 그는 시간 부족을 한탄한 적이 거의 없었다. (p.165)
- <류비셰프의 글 中>
순수 학문에 헌신하기만 하면 된다고 확신하며 상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시대의 요구에 뻔뻔스레 눈을 감아버리는 학자들이 있다. 진정 순수하고 이론적인 학문과 시간 낭비에 불과한 무익한 학문을 혼동하는 이들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면서(말로만 그렇게 떠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상은 순수학문도, 실용학문도 아닌 편협한 실무에 매달리는 학자들도 있다. 티미랴제프가 쓴 걸작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1822-1895)를 보면 이런 학자들은 몸 둘 바를 모르게 되리라. (p.180)
- 데모크리토스는 "인간의 정신적 가치는 행동이 아닌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였다. (p.193)
- 그의 시간은 성취를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남을 뒤쫓고 1등이 되고 기대를 뛰어넘고 인정을 받고 하는 일들에서 초연했다. 그는 도구가 아닌, 창조의 가능성으로서의 시간을 사랑하고 아꼈다. 그는 시간을 경건히 대했으며 아무렇게나 쓸 수 없는 자원으로 여겼다. 시간은 물리학적 개념도, 문자판을 따라 도는 바늘의 회적도 아닌 도덕적 대상이었다. 낭비한 시간은 과학 연구에서, 혹은 마땅히 그 시간을 할애받았어야 할 이들에게서 빼앗고 훔쳐낸 시간이었다. 그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이라 굳게 믿었고 그런 시간을 남을 모욕하거나 경쟁하기 위해 혹은 자만심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윤리적으로 접근해야 할 존재였다. 인간은 자기 일생에서 과연 어떤 일에 시간을 쓸 권리가 있으며 어떤 일에 그럴 권리가 없는가? 류비셰프는 스스로 시간 사용이라는 윤리적 행동을 위한 윤리적 원칙을 만들었다. / 유능하고 조직적인 이들은 스스로를 시간의 주인이라 믿는다. 시간 숭배의 경향은 커져만가고 그 자체가 업무 능력이나 삶의 수완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시계 바늘이 우리를 재촉하고 우리는 혹시라도 뒤쳐질까 앞으로 달려간다. 제대로 경주에 참여하고 있어야, 남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어야만 안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유를 헌납해가며 시간을 숭배하고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시간을 인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시간에 맞추는 꼴이다. 시간은 금방이라도 우리를 앞설 듯 사정없이 달린다. 시간의 신은 무서운 얼굴로 우리가 해낸 일들을 확인한다. 논문을 얼마나 발표했는지, 제대로 과정을 마쳤는지, 결과물을 얻고 앞으로 전진해나갔는지 등등……. 하지만 류비셰프는 전혀 달랐다. 그는 시간에 아등바등 매달리지도, 시간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 류비셰프의 시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작가는 즐거운 해방감을 느꼈다. 그의 시간은 밝은 빛과 평화로움에 가득 차 있다. 하루하루의 시간은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을 위해 흘러갔다. 마치 나뭇잎이 표면 전체로 햇빛을 빨아들이듯이 말이다. / 류비셰프의 시간통계 방법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마치 확대경을 통해 시간을 바라보는 듯했다. 단 1분의 시간이라 해도 전체 흐름의 하잘 것 없는 일부로 단조롭게 흘러가는 일이 없었다. 그 1분은 충분히 계획되어 최대한으로 사용되었고 그리하여 한 단위의 응결된 시간으로 변모하였다. 그 1분 동안 이루어진 생각의 흐름이 눈앞에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pp.20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