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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 revisited


2006/10/06 01:46 | Thoughts/Book

독서 감상문 같은 걸 적는 것도 꽤 오랜만인 것 같다. 그동안 진득하게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 핑계일까. 전역 전에는 대체로 토플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전역 후에는 운전에, 윈드서핑에, 인턴 자리 이력서 쓰고, 인터뷰 받고 하느라 바빴으니까. 그게 끝나고는 주중에는 늘상 컨설팅 일에 묶여 있었고, 주말의 남는 시간에는 사람들을 만나왔으니 독서가 쉽지 않았다. 어쨌든, 전역하고부터 틈틈이 읽어왔던 '태엽 감는 새'를 드디어 다 읽었달까.

'태엽 감는 새'는 하루키 작품 중 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으로, 다른 작품은 대체로 여러 번 읽었지만, 이 작품은 4권이라는 분량의 압박 때문에 여러 번 읽어보지 못한 책. 한번쯤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꺼내들었는데. 네 권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1권. 작은 삶 큰 의미
2권. 욕망의 뿌리
3권. 나는 누구인가
4권. 사람은 누구나 태엽 감는 새

'태엽 감는 새'는 단란했던 부부의 생활에서 출발하여, 고양이가 사라지고, 아내가 가출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양이는 대체 왜 사라졌고, 어디로 간 것일까. 아내는 왜 가출했고, 어디로 간 걸까. 그러한 인과관계들이 점점 알 수 없게 되어버리고, 모든 일들, 모든 의식 속의 일들이 얽혀버리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하루키 작품이라면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를 꼽는다. 하지만, '상실의 시대'는 소설로서는 조금 레벨이 떨어진달까. 하루키의 소설가적 진가를 알려면 적어도 '해변의 카프카', 나아가 '태엽 감는 새'를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엽 감는 새'는 적지 않은 분량에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현재, 자신과 타인이 촘촘하게 얽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관련 없어 보이는 작은 것들의 관계가 서서히 드러난다. 그런 거대한 구성 앞에서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이만한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래서 나는 '태엽 감는 새'를 읽어보지 않고 하루키의 소설을 평가 절하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사회적 지위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금세 사라지거나 공허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세상에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하루키의 소설이 '허무하고 진한 상실감 때문에 싫다'고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태엽 감는 새'의 사라진 아내를 찾으려는 오카다 도루의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는 그다지 그런 말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는 법이니까.

수년간 함께 자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살아온 아내에 대해 과연 자신은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하고 오카다 도루는 자문한다. 과연 타인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함께 살면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것들을 깨닫고 나면, 잠시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전에, '나는 누구인가'. 그것조차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우리는 과연 어디에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건지 모르게 된다.

소설의 시작에서 주인공 오카다 도루는 로시니의 <도둑 까치> 서곡을 휘파람으로 불며 스파게티를 삶는다. <도둑 까치>는 후에 결정적인 길잡이 역할을 하는 호텔의 보이가 휘파람으로 부는 곡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보이의 정체는 결국 그 자신이 아니었을까. 누가 누구를 인도 하는 건지, 잘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무수한 상징들과, 무수한 관계들이 얽혀서 만들어내는 한 편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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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oonsix at 2006/10/08 11:37  r x
요즘 들어 하루키 책 나도 다시 보고 있는데 :D
Commented by 아즈 at 2006/10/08 22:12  r x
그나저나 나는 요새 감수성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뭐든 감흥이 별로 없을까.
Commented by ibo at 2006/10/09 23:53  r x
군대 생활에 이은 직장 생활의 영향인가요 'ㅁ'? 흠흠 '상실의 시대'랑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및 몇몇 단편 빼곤 말곤 제대로 읽은 작품이 없는 나는 찔립니다.. 허무함, 상실감 땜에 싫다고 한 건 아니었지만 =ㅅ=;; 4권이라니 마음 단단히 다잡고 읽어야겠군요
Commented by 아즈 at 2006/10/10 22:46  r x
음, 글쎄. 감수성이 다 타버린 걸까.
하루키의 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고, 몇몇 작품들은 두 가지 성향이 겹쳐서 나타나는 중간적인 색깔을 띠고 있지. 첫번째 그룹이 네가 읽은 <상실의 시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필두로한 연애소설 비슷한 거고. 두번째 그룹은 좀 미스터리적인 느낌이 나는 소설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댄스 댄스 댄스> 등.
<해변의 카프카>나 <태엽 감는 새>는 두 번째 부류의 성격이 강하지만 약간은 연애소설적 요소도 가지고 있지.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플롯에 치중하는 느낌이야. 또, 그 구성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고.
미스터리 부류의 소설을 한두 개 정도 읽어보면 '하루키라는 작가가 이런 면도 있었나' 싶을텐데. 일단 혹시라도 관심이 생긴다면 '태엽 감는 새'가 1순위고, 조금 부담된다면 '해변의 카프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Commented by 진석 at 2007/06/25 01:47  r x
태엽감는새.. 이번에 7월에 제대하는 친구 집이 경기도 포천인데..
그 친구 사는 계곡에 3일 정도 휴가(?ㅋㅋ) 받아 놀러갈 때 읽으려고 맘 먹고 있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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