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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3월 1일, 그러니까 1년 4개월 전에 나는 3개월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발을 디뎠다. 오랜만에 '내국인' 트랙에서 모국어로 입국수속을 하려니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밤 11시에 집에 겨우 도착해서는, 다음날 1교시 수업에 출석해야 했지만.
여행에서 막 돌아온 그 때, 나는 내 인생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축복받은 것임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지 않아도 되고, 깊은 상처를 방치하지 않아도 되었다. 깨끗하게 씻고, 배불리 먹고,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할 지 결정하지 못했으나, 무엇을 하더라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인생 선택의 자유'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도의 하층 카스트로 태어나 평생 뱃사공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티벳에서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나 라마가 되어야 하는 운명인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일제의 만행을 잊어버리고, 민주화의 가치를 망각해가는 것 처럼, 그런 자각들도 쉽게 잊혀져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경험과 느낌은 내 안에 있지만, 빛이 바랜 그림처럼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았다. 크게 보면 내가 물리학자가 되든, 컨설턴트가 되든, 경제학으로 옮기든, 여행가가 되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내가 '무엇을' '왜' 하려고 하는지는 명확하게 알고 싶고, 그 때문에 지금 지난한 고민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난 주에, 다시 부석사에 가서 예불을 하고, 백팔 배를 올리면서 읽었던 반야심경은 내게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반야심경(한글)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다섯 가지 쌓임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지느니라.
사리불이여,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또한 그러하니라.
사리불이여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닿음과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아주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과거 현제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아무 것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노니
주문은 곧 이러하니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세 번) 서군이 이미 6년 전에 이런 현명한 말을 내게 했던 적이 있다. "내가 날 위해서 산다는 말은.. 만약 내가 지금까지 해온것 말고 다른것을 해서 더 만족감을 느낄수 있다면, 지금까지 해온것을 포기하고 다른것을 할 생각이 있단 얘기다. 근데 널 보면 니가 만족감을 느낄수 없는 상태가 되더라도 계속해서 물리만을 고집할꺼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어떤 삶이 바람직한지는 사람마다 다를테니 뭐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 '물리'라는 테두리안에 너무 속박당하진 말라는 얘기다. 뭐.. 너무 심각하게 듣진 말고" 아마 나는, '나, 그리고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떤 원리에 의해 운행되는가' 하는 어찌보면 종교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과학이 발전한 이래, 종교적인 의문들이 과학에 의해 해결되기 시작하면서, 진리를 찾는 확실하고 믿을만한 방법은 과학뿐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그래서 힘들어도 그만둘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겐 즐거움보다도 진리에의 열망이 더 강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물리학자들에겐 즐거움이 우세인지, 아니면 진리에의 열망이 우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도 괜찮은 성과가 아닐까.
반야심경에서,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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