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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봄날씨와 함께 시작된 새학기도 어느덧 일주일이 흘러갔다. 지난 방학 때 내가 한 일이라곤 지루한 토플시험 준비와 양자역학 공부, 그리고 이론물리캠프 정도였다. 개강 직전까지도 토플을 보느라 분주하게 지내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개강이 되어버렸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도 분주하게 지내는 것일까. 나는 정말 공부가 하고 싶은 걸까? 공부를 상당히 많이 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공부만 하는 것에는 꽤나 익숙해지지 않는다. 뭔가 답답하달까. 지금까지의 나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부 외의 여러 가지를 하는 방법을 써왔는데, 최근에는 공부만 하고 있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수해야 할 학점도 별로 남지 않았고, 이번 학기까지 열심히 들으면 별 문제없이 졸업에 가까워진다. 이번 학기엔 물리와 영어 과목만 넣었는데, 쉽지 않을 느낌. 그냥 휴학해버릴까 싶은 마음도 있고, 그래도 이번에 이수해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
대학에 온 후, 해야 되기 때문에 공부를 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가끔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극복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모르겠다.
공부를 하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어떤 위치까지 다다르기 위해서 해야할 것들이 너무 분명해서, 그것만을 따라가다보면 지친다. 마치 내 앞에 1만 개의 계단이 있고, 나는 지금 3천 번째 계단에 서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느낌이다. 지금껏 해온 것도 꽤 많지만, 앞으로 해야할 것이 더 많다. 계단 오르는 것에 꽤 재미를 붙이고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앞으로 남은 계단들을 보니 어쩐지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다.
사람들은 누구나 철학이나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산다고 생각했다. 내가 읽어온 많은 책들에도 그렇게 쓰여있었고, 내가 만나본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항상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게 있어서 물리학 공부에 대한 동기는 물리학 그 자체보다는 그 배경에 있는 철학적 의미에 더 기반을 두고 있다. 자연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이치를 음미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동안 물리학 공부의 기술적인 면을 많이 배웠고, 많은 문제를 풀어왔고, 물리학의 세계관을 조금이나마 맛보았다.
나는 물리도 그다지 잘 하지 못하는 학생이었고, 특히 수학 문제 풀이에 있어서는 별로 재능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는 노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더 잘 살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아카데미아에서는 낮은 수준에서 기여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신감이 별로 생기지 않는 것 같다. 꽤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엄청나게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꽤 잘해왔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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