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을 차려보니 2월이 되어 있었다. 세월의 흐름은 참 무섭구나 싶었다. 나의 감각은 아직도 작년 여름부터 가을학기를 지나 지금까지 지나온 고민의 자취를 기억하고 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하고 인생은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인생의 낭비'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인가. 어떤 의미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작년엔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졸업할 때가 다 되어서까지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한다는 것이 한심하다는 말도 들었다. 솔직히 그런 순수분야에서 박사하고, 7년씩 포닥하면서 세계를 오갔던 분 앞에서는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인정했다. 나는 한심하다고. 하지만 학문이 어떻든 간에 내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건가, 싶은 회의도 없지 않았다. 또한 인생 나 혼자 살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이유가 어쨌든 간에, 결론적으로 나는 대학에 왔을 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어떤 지향점 하나를 제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생에서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무엇을 할까, 하는 것은 그런 관점에서 정할 수 있었다.
새해 인사 등을 하며 이런 저런 말들을 들었던 것 같다. 물리학을 그리도 사랑하던 사람이 전공을 바꾸겠다니, 부터 시작해서 너와 별로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은데 어쨌든 뭐 현실적인 선택 같다는 말까지. 뭐라고 이야기해도 또한 변명의 여지 같은 건 없다. 내 삶의 방식이 변했고, 이제부터 만들어갈 미래는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방향일 거라고 말하는 수밖엔 없다.
내가 걱정되는 것은 좀 다른 거다. 내가 예전에 물리학을 논할 때 가졌던 그 반짝이는 눈, 열정을 계속 가져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또 내 삶에 중독될 수 있을까. 그런 열정이 타인을 감동시키고, 나에게 호감을 가지게 만들고,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건 그런 모습을 잃지 않고 싶다.
내가 올 한 해 하고자 하는 일이 의외일 뿐 아니라 타협으로 보일 수도 있다.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힘들다. 말보다 행동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되든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낭비란 효율을 따질 때 쓰는 말이다. 인생은 행복과 만족으로 평가할 수 있지, 목표의 달성 같은 '낭비'를 따질 수 있는 주제로 평가할 수는 없다. 내 인생, 한번 신명나게 놀다 가보자.
잘 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후회한다. 열심히 해보자.
이 자리를 빌어 올해부터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짝 내 딛은 분들 모두 축하합니다. 기업으로 간 사람은 교육에 바쁠테고, 이공계 대학원 간 사람들은 벌써 랩에서 연구하느라 여념이 없겠고. 3월부터 학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때까지 후회없이 노시고. 마지막으로 3월에 이젠 학생이 아니라 꿈꾸던 것 처럼 선생님으로 학교로 돌아가게 된 이보시게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말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