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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Identity


2010/08/22 00:41 | Life/Life in 2010
작년에 진로를 이쪽으로 정하고 준비를 했을 때부터, '의사가 될 사람'이라는 말이 정말로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거부감 마저 느껴졌다.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하고, 그 이후엔 별 고민없이 물리학을 전공으로 삼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란 자아상은 확고했다. 군대에 가서도 나는 군인이 아니라 물리학도였고, 회사에서 일할 때도 어설프게 경영대 출신 흉내내는 이공계생이 아니라 물리학을 공부하는 게 자랑스러웠던 물리학도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부터 '의사가 될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것에 적응하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불과 지난 학기가 끝날 무렵까지만 해도 나의 자아상은 의학도라기 보다는 물리학도였고, 그것으로 엄청난 암기량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합리화했다. 어려운 것은 전혀 없다고, 다만 암기할 양이 많아서 힘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교통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학교 주변 지하철역으로 들어갔을 때, 문득 작년에 학교 면접을 보기 위해 이곳에 내려서,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약도를 프린트한 종이를 들고서 두리번 거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불과 1년 전에, 처음 와보는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학교를 찾아 갔었다. 그 때에도 물론 나는 이 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할 지 잘 몰랐다. 의사가 되려고 한다는 사실도 실감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우스운 이야기다. 지원을 위해 작성한 자기소개서에는 왜 내가 이곳에 오고자 하고,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는 적혀 있지만, 졸업 후 계획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기술되어 있다. 의사가 되고자 하는 확신에 차있던 다른 많은 지원자들을 제치고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합격자 통보를 받은 시점에도 나는 절실하게 의사를 꿈꾸지 않았고, 대신에 전략펌에 레주메를 보내고, 비즈니스 케이스를 풀고, 인터뷰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어제, 지금은 익숙해져 버린 이곳의 지하철역에서 작년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그 때의 생경함을 떠올리고 나자, 이제는 내가 진정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의학도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라는 그릇에 '의학'이란 물이 가득차 드디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고 할까. 학부 때 물리학을 공부했던 것은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의학을 충실히 공부해서 나중에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충실하게 치료하는 의사가 될 의학도인 것이다.

내가 지금 공부하는 것들은 그 때 꼭 필요한 것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며칠 전 수업 시간에 '이것은 잘 모르지만 다른 것, 예를 들어 양자역학은 좀 안다'고 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자, 이제부터 정말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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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볼 at 2010/12/03 15:01  r x
"양자역학은 좀 안다"라고 할 수 있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한테 책 한 권 추천해 주세영
Replied by 아즈 at 2010/12/04 02:26 x
입문을 위해서는...
Introduction to Quantum Mechanics 2/E /David Griffiths

한글이 좋다면 좀 technical하지만
양자역학 /송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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