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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십일월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2008년을 토플 준비와 함께 맞이했던 것 같다. 당시에 세웠던 올해 목표 중 하나가 토플 고득점이기까지 했다. 그 즈음의 나는 대강 마음의 결정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니, 돌이켜 보면 작년 여름에 업무 외적으로는 무척 즐겁게 보냈지만, 그 '업무'라는 것이 내 일생을 걸고 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을 무렵부터 나는 학문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정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놀고 먹고 취미로 공부하는 학생의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아직은 책을 읽고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고,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즐겁다. 물론, 이 이상 공부를 해서 그걸로 먹고 살겠다고 하면, 지금처럼 '틀려도 어쩔 수 없지' 같은 나태한 생각으로는 살아남기 힘들겠지. 무엇을 하든 업으로 삼게 되면 작은 흠도 없게끔 철저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에서 재미와 흥미라는 녀석도 달아나는 경우도 많겠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해맑은' 학부생이고, 문제를 풀어도 내 이름을 걸고 결과를 내놓는다기 보다는 '틀리면 말고' 식의 안이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학문의 길을 가겠다는 것은 그러한 보호막 안에 숨어서 그냥저냥 먹고 살며 취미로 공부하는, 안빈낙도적인 인생을 꿈꾸는 유아적 발상인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정체성이, 이 분야 공부를 계속해서 교수가 되든지 하는 그런 상인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운명같은 느낌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 외에는 어떤 세부분야에 뛰어들어 그 공부를 꼭 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 것을 보면, 나는 굳이 이 학문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걱정이 덜 되는 다른 학문 분야에 뛰어들어 공부를 계속 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의 학과로 대학에 왔을 때, 나는 내가 당연히 대학원을 마치고 (일정기간은) 공부를 계속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운명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러한 상은 나의 학부생활 내내, 내 생활에서의 판단기준이 되어주었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다른 일들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학업을 우선순위로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공부는 계속 하고 싶지만(설사 그것이 보호막 안에서 안빈낙도 하겠다는 유아적 발상일지라도), 무언가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드는 것이다. 애초에 생각했던대로, 쭉 계속하자니 목숨걸고 그 공부를 할 동기가 부족하고, 분야를 바꾸자니 무언가 운명에서 벗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꺼림칙한 것이다.
인생에서 많은 것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때론 하나를 얻기 위해서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그리고 바로 지금 그런 상황이 와버렸다. 맙소사.
2_일과
나의 본업은 아직 학생이다. 물론, 수업을 굉장히 적게 듣고 있으므로 반백수라고도 할 수 있었다. 수업 조금 듣고, 공부 조금 하고, 최근에는 등산(이 단어가 팬시하지 않다면 트레킹이라고 해두자)을 많이 다니고 있다. 아무래도 산 바로 밑에 살고 있는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컴퓨터를 이용해서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그 핑계로 내 작업용 컴퓨터를 장만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이런 불황에 일할 거리를 세 가지나 더 구해서, 공부까지 합해 무려 네 가지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아는 집이라 거절하지 못하고 맡게 된 아이 가르치는 (귀찮은) 일이지만, 나머지 둘은 완벽하게 정보화 시대에 어울리는 재택근무 일이다. 일은 주로 컴퓨터로 보고서를 쓰거나, 내가 그럭저럭 잘 알고 있는 주제에 대해 글을 집필하는 것이다. 시간의 제약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만큼 일해서 어쨌건 납기만 맞춰주면 되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보면, 내 기억으론 미국에서 9시에 출근해서 5시(혹은 6시)에 퇴근하는 사람이 1/3도 안 된다고 나온다. 즉, 이미 많은 사람들이 '표준적'인 시간이 아닌 24시간 중 아무 때나 수요가 있거나 혹은 자기가 원할 때 일한다는 거다. 또, 토플러는 네트워크의 발달로 공간적 거리가 줄어든다고 썼다. 역시,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우리나라 회사가 아니라 저 멀리 영국 옆에 있는 아일랜드 회사를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덕분에 이 고환율 시대에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데, 요새 게을러져서 그런지 몰라도 무언가 전부 열심히 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아무래도 앞으로 뭐하고 살지 결정하고 행동하는 게 더 중요해서 그런가, 마음도 좀 붕 떠있는 것 같고, 시기가 시기인 만큼 다른 사람이 '앞으로 뭐 할 거에요'라고 묻는 경우도 많은데, 그럴 때 대답하기도 좀 곤란하고 그렇다.
어쨌든 지금의 이런 시기도 결국 '지나가는 것'이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는 마치 '오바마의 방황하던 10대'처럼 간단히 언급되고 넘어갈 것이다. 대개 실패나 어려움, 방황은 잘 기억되지 않고, 오직 빛나는 순간만이 눈에 띄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할 고난과 역경, 시련, 고민, 노력의 시간들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이야 어떻건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어차피 누가 대신 살아주는 인생도 아니니까.
3_작은 사무실
어쩌다보니 이런저런 장비를 구입해서 재택근무 사무실을 꾸미게 됐다. 이것 참, 오버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키보드를 구입하려고 보니 이것저것 저렴한 것 중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제품이 많았었는데, 애플 키보드의 예쁜 디자인에 빠져 거금을 주고 주문해버렸다. 보기엔 이쁜데, 사실 너무 얇은 판자 같은 느낌이 살짝 있어서, 타격감은 그냥저냥인 것 같다. 차라리 좀 저렴하고 타격감 좋은 다른 제품을 살 걸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디자인은 최고인 것 같다. 이걸 보면서, 똑같은 제품인데도 디자인 하나 가지고 이렇게 비싼 값 받고 팔아먹을 수 있다니, 싶었다. 2006년에 히트쳤던 모토로라의 RAZR도 마찬가지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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