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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학문의 위기


2006/10/30 22:19 | Thoughts/Essay & Article

이공계의 위기니, 인문학의 위기니, 순수학문의 위기니 하는 말들은 정말 많다. 뭐라고 한마디 덧붙이지 않아도 될 정도다. 현재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득권을 잃을 위기 때문에만 이런 '위기'들이 이슈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순수학문을 '별로 쓸모는 없지만 어쨌든 존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순수학문은 호기심에서 출발한 순수한 목적의 학문으로, 응용학문처럼 실용적인 쓰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호기심과 그 너머에 있는 진리 추구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실용학문처럼 바로 재화를 만들어내긴 힘들다. 하지만 경제논리로 접근할 때, 응용학문은 순수학문에서 밝혀낸 산출물들을 현실에 적합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순수학문의 기반이 없이는 응용학문의 발전에 한계가 있다. 이런 논리가 아니라면 순수학문에 재화를 투입한다는 것은 대다수의 동의를 받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1년여 동안 입자물리학 분야에 계속 펀드를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 다각도로 평가한 후, 바로 올해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입자 물리학은 다른 분야에 지적이고 기술적인 진보를 유발한다'. 그 결과로 입자 물리학 분야에 대한 투자는 계속되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순수학문은 어떤 식으로 다른 곳에 진보를 유발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나는 순수학문을 하는 사람과 정책을 만드는 사람 둘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순수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학문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관한 몇 가지 착각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 순수학문이 학문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착각.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기초적, 근본적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구과학보다 생물학이, 생물학보다 화학이, 화학보다 물리학이 더 기초적이고 근본적이기는 하지만, 더 중요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응용학문보다 순수학문이 더 기초적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학문적인 중요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둘째, 순수학문을 하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착각. 이와 유사한 착각으로, 공대생들이 수학 베이스를 가지고 금융이나 경영 등 상경/인문/사회 계열로 진출했을 때 특별한 노력 없이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착각이 있다. 분명히 적절한 조건에서 이러한 크로스오버가 플러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순수학문이, 공대 베이스가 다른 분야에서 플러스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다른 분야에도 그 분야만의 룰이 있고, 지적 체계가 있고, 요구하는 능력이 있다. 이것을 그 분야 사람들만큼 체득할 수 없다면 어떤 시너지 효과도 낼 수 없다. 분명히 순수학문을 베이스로 응용분야에 진출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는 경우가 있겠으나, 이것은 순수학문 전공자가 두배로 노력을 했을 경우이다. 기초와 응용을 모두 알면 당연히 뛰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연결고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시너지 효과를 논하는 것은 무리다.

다음으로 정책을 만드는 사람, 시스템을 짜는 사람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당신들은 멍청하다. 1년 앞은 내다볼 수 있을지 몰라도 10년 앞을 내다보지는 못한다. 실용이란 것, 응용이란 것은 시시각각 변한다. 오늘 TV에서 나오는 광고와 10년 후에 어떤 매체를 통해 나오는 광고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오늘 당신이 쓰고 있는 핸드폰과 10년 후 당신이 쓰고 있을 어떤 통신수단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공통적인 '무엇'이 있고, 그것을 탐구하는 것이 순수학문이 하는 일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을 가진다면 순수학문과 응용학문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토대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직 오늘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만을 생각하는 당신들은 멍청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순수학문 전공자들에게 하나의 의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순수학문 전공자를 어떤 식으로 이용해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겠는가? 순수학문 전공자들이 하는 말처럼, '순수학문 베이스가 무슨 일을 하든 도움이 된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고, 그것을 대중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결국 순수학문을 '위기'에서 구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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