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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9월 중순이 다가오는데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다. 이런 밤에 나는 포도주스를 마시며 영문으로 글을 쓰고 있다.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이 오랜만이어서인지,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미루고 미루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당장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나는 끝까지 딴 짓을 하고 있다. 참, 가상하다고 해야 할 지. 어쨌든 이렇게 늦어져서야 검토 받기도 힘들고, 이래저래 곤란한 일 투성이다. 이런 걸 두고 '총체적 난국'이라고 하지.
한편, 마지막으로 들을 수업은 미술사로 결정했는데,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도 않고, 지금같이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을 때는 배워야 할 것 같은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들어야겠다 싶었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고, 선생님도 열의가 있어 보여서 나름대로 얻어가는 게 있을 듯 싶다. 다만, 내 혼란스런 상황이 마무리 될 때까지는 아무래도 관련 도서를 찾아보며 몰두하긴 힘들지 싶다. 모든 일들이 잘 마무리 되어서 당분간은 유유히 미술사 책을 훑어보며, 그렇게 지내고 싶다.
지난 일요일엔 국제선원의 참선 프로그램에 참석했었다. 미국에서 온 영어 교사 친구들이 단체로 왔었고, 관광 중에 들린 역시 미국 출신의 60대 아주머니도 있었다. 참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은 뉴질랜드 출신으로 절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었다. 2시간 동안 참선을 하려니 꽤나 지쳤고, 이어지는 한국스님의 영어 법문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내 마음을 바라본 그 얼마 동안의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 해야 한다. 얼른 글도 마무리 하고, 내가 준비해온 것들도 마무리 하고, 학교 생활도 마무리 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 지난 1년 간 꽤 지쳤던 것 같은데, 조만간 전부 잘 정리가 되어서 미술사 책을 뒤적거리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 끝까지 믿고 전진한다는 것, 그것이 정말 쉽지는 않은 일임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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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사진. 일상이 지루해질 때면 이 사진을 보면서 처음 에베레스트를 마주했을 때의 그 떨리던 마음을 기억해보곤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백열등 하나 달린 골방에서 씻지도 못하고 어서 빨리 내일이 오기를 바라며 침낭 속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새벽부터 먼지 날리는 오프로드를 달려 도착한 이곳.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나는 지금 이렇게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있는가, 묻는다.
8월. 이제부터 승부로군.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정말 국제협력단원으로 제3세계로 떠나게 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변화는 즐거운 일이다.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자. 여행이 즐거운 건 도처에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들이 널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 여정도 그처럼 즐겁게. 자신을 믿고 keep go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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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에 처음 들어가 훈련소를 마쳐 이등병 계급장을 받고, 특기교육까지 수료해서 자대배치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나를 포함해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동기들이 많았기 때문에, 모두의 관심사는 집 근처에 얼마나 TO가 나고, 누가 그곳에 갈 수 있을까였다. 그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는 분 중에 투스타가 있다며 자기는 집 근처로 갈 거라고 누누이 말했다. 과연 그 '빽'이라는 게 진짜였는지, 아니면 허풍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녀석은 원하던 부대에 가기로 잠정적으로 정해졌고, 나머지 동기들도 모두 합의 혹은 가위 바위 보나 사다리 타기 같은 것으로 향후 2년 간의 운명을 정했다. 그리고 그 합의를 깨지 않기로 약속하고 실질적으로 모든 신병들을 배치하게 될 본부로 함께 향했다. 나는 다른 동기 하나와 본부에 남기로 '합의'했는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해당 부대가 구타 및 가혹행위 등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고, 다른 곳은 부대 특성상 군기가 그다지 엄격하지 않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동기들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 친지분 하나가 잘 아시는 분 중에 현역 대령이 계셔서 나를 꼭 집 근처 부대로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었다. 본부에서 자대배치 최종 확인을 기다리던 중, 그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신병들의 자대배치를 담당하던 간부가 나만 불러내더니 모 대령과 나와의 관계를 물으면서, 연락이 왔다며 나에게 집 근처 모 부대로 가라고 권했다. 그 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빽이 있다던 그 녀석의 말은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동기들의 기를 꺾으려는 선제공격일 뿐이었을까. 그 때 동기들과의 합의를 깨고 내가 그 녀석 대신 그 부대에 가겠다고 했다면, 그 후로 2년간의 인생이 꽤나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단지 합의를 지키기 위해서 내게 굴러온 기회를 차버렸다.
그 후로 1년간, 군생활이 괴로울 때마다 그 때의 내 선택을 떠올렸다. 그것이 좋은 선택이었을까, 하고. 본부에 전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른 특기로 같은 부대에 근무하게 된 동기가 다른 선임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그런 일들이 주변에서 비일비재했고, 그 중 일부가 간부들에게 보고가 되어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업군인이란 사람들에겐 의무병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고생하는 젊은이들이 아니라 단지 사고 쳐서 귀찮은 일 만들지 않도록 관리하며 부려먹기만 하는 물건과도 같은 인간 이하의 존재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끔은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었어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란 인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내가 먼저 희생하고, 다른 이에게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지 않는 게 나란 인간이었다.
어릴 적 부터 쭉,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든 무슨 요구를 하든,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하지 못할 일을 부탁하거나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절 당할 경우 대개 항상 내가 먼저 희생을 보여주어야 했다. 어쩌면 그렇게 항상 손해를 본 후 끝난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것을 먼저 버리고, 나의 권리를 먼저 희생했다. 그 편이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 인생도 내 손으로 먼저 부수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고, 내 삶을 부수는 것보다 내 원칙을 부수는 것이 더 힘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했던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내 인생을 다시 멋있게 건설하는 것, 내 자의식이 만족할 수 있는 멋진 인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별 관심도 없으며, 오직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사실, 잘 알았다. 그 누구도 나보다 내 인생에 관심 있는 사람은 없으며, 결국 나의 인생은 내 책임일 뿐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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