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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지금 있는 곳의 입시가 막바지에 다다라 계속 야근을 했고, 이곳의 졸업식을 치러냈으며, 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취미로 하는 스터디에 참석했다. 20세기 미술을 다룬 마지막 수업을 마칠 때는 허전한 마음이 되었다. 아직 못 들은 수업이 많은데, 더 배웠어야 하는 게 많은데 하는 아쉬운 기분. 다른 분야의 수업도 듣는다고 들었지만, 전공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들을 수 있는 전공은 거의 다 듣느라 다른 분야 수업을 못 들어 아쉬움이 남는 것들이 많다. 졸업하기 전에 미대, 문학, 철학 전공수업은 꼭 한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경제학과 경영학 수업도, 특히 회계학은 졸업 전엔 꼭 한번 배우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듣지 못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이번이 아니라도 다음에 들으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그다지 허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그게 불가능할 거란 생각에 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도 사람들을 만나고, 과제를 하고, 책을 읽었다. 몇 년 만에 만난 오랜 인연들을 마주하니 마치 시간이 십 대 후반, 이십 대 초반의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 있었고, 다들 그만큼씩 성장해 있었으리라고 생각해본다. 또한,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사실에 안도, 혹은 무서움을 느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새로움을 갈구하는 것일까. 최근에 현대미술을 다룬 비슷한 제목의 책을 구입했다.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곰브리치의 미술사 책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발견할 줄이야.
이곳에서의 일도 얼마 남지 않았고, 내 시간에 대한 대가로 얼마간의 금전적 이득을 취할 것이다. 우연히 당겨진 오티 일정 덕에 내 여행은 좀 연기되고, 또 짧아지겠지만, Y군의 부추김 덕에 베트남 여행은 꼭 질러야겠다는 각오를 되새겨 본다. 내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등에 짊어지고 짧지만 다시금 길을 나서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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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미술은 시험문제를 내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오늘 고딕부터 19세기 미술까지 마지막 시험을 치렀다. 앞쪽의 그림을 보고 푸는 문제는 쉬운 것도 있었지만, 좀 까다로운 것도 있었다. 뒷쪽은 그냥 읽고 푸는 문제였는데 제목이나 화가 이름만 보고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냥저냥 풀어냈다. 학부 마지막 시험인데도 내년에 끊임없이 이어질 시험들을 생각하면 딱히 다른 사람들 이야기처럼 후련하다거나 시원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수업이 한 번 더 남았고, 마지막으로 에세이 과제도 제출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간고사를 잘 봤지만, 평균도 높고 해서, 기말고사와 에세이도 잘 해내야 할텐데. 졸업하는 데엔 별 문제가 없을 듯 싶지만, 이번 학기에 듣고 싶었던 여러 과목 중에서 내가 선택한 하나라 그런지, 어쨌든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 그리 로드가 큰 과목은 아니라서 직장 생활과 병행해서 할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확실히 직장 다니면서 공부하시는 분들은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저녁엔 계속 미뤄지던 모임이 이뤄져 체스모임의 선배, 후배랑 팔선생에 가서 요리만 세 개를 먹었다. 꿔바로우, 위샹로쓰, 유린지를 먹었는데, 식사 따위는 시키지 않고 요리만 먹다가 그냥 밥을 시켜서 먹었다. 중국에서도 이렇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중국 이후로 오랜만에 위샹로쓰를 먹었더니 그 새콤달콤한 맛에 감회가 새로웠다. 역시 위샹로쓰는 밥하고 같이 먹으면 최고. 꿔바로우는 여전히 쫄깃쫄깃하고 맛있었다. 유린지도 괜찮았고. 닭고기가 원래 좀 차갑게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선배가 아이폰을 구입해서 살펴보았는데, 아직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한 것이 없어서 좀 썰렁했다. 모양은 아이팟 터치랑 똑같았는데, 수화기 부분이 있는 것이랑 뒷면이 금속 대신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 있는 것이 달랐다. 물론, 금속 재질의 경우엔 전파 수신율이 떨어지겠지만, RAZR처럼 안테나 부분만 플라스틱 커버를 씌우든가 샤인폰처럼 알 수 없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건지 궁금했다. 어쨌든 이 작은 컴퓨터를 가지고 싶긴 했으나 요금이랑 현재 핸드폰 사용량 등을 좀 더 비교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다음 달에 떠날 예정인 한달짜리 여행 경비를 100만원으로 잡고 있는데, 여행을 가지 않는다면 아이폰 정도는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 둘 다 할 수 없고,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다가 역시 무엇을 소유하는 것보다는 경험에 투자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책, 음반 등과 일부 전자기기 정도인데, 좀 덜 가지더라도 여행을 가거나 의미있는 경험을 하는 것이 더 좋다. 무엇을 소유 하게되면 잠시 동안은 편하겠지만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고 느껴져 크게 집착이 생기지도 않는다. 경험은 더 큰 것을 선사한다. 몇 년 전, 190만원짜리 여행이 내 인생에 이렇게 크게 자리잡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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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권이란 무엇이고 비운동권이란 무엇일까. 사실, 그런 구분이란 것도 잘 모르겠다.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고 행동하는 쪽이 운동권이고, 정치에는 관심을 끊고 복지 같은 것에만 관심을 두는 쪽이 비운동권일까? 하지만, 애초에 '비정치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사실, 어느 쪽이든 별로 상관은 없다. 다만, 세상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현실의 세상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꿈을 가진 사람들을 지지해주고 싶다. 공약이나 이념이 나와는 조금 다를지라도, 꿈을 가지고 전진한다는 것이 멋있게 보인다. 어쩌면 물리학의 이념이 몸에 배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을 관찰함으로써 자연법칙을 발견한다, 라는 생각. 자연법칙, 즉, 이데아가 존재하고, 그걸 발견한 후에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런 믿음이 사실이라는 것이 현대 과학문명을 통해 매시간 증명되고 있다.
나 역시 살아가면서 그런 꿈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처럼 이상향을 마음속에 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이들에게 끌리는 것인지도. 설사 그 이상향이 내 것과는 다를지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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