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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1. 26 FRI JAIPUR
오늘은 휴식하는 날.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침대에서 계속 빈둥댔다. 낮이되니 호텔도 더워진다. 1월의 더위라. 라자스탄은 덥다 정말.
나가서 일단 식당을 물색했다. 현지인들이 많이 앉아있는 식당을 시도했다. 탈리를 먹었는데 맛도 괜찮고, 양 진짜 많이 준다. 짜파티를 처음에 2개 주더니 계속 리필해줘서 총 6개나 먹었다. 6개까진 그냥 준다고 한다. 가격은 30루피.
정말 배터지게 먹고, 짜이 한 잔 먹었는데 짜이는 별로다. 어쨌든 먹고나서 영화관에 가서 영화표를 끊으려고 했는데 오후 2:45 영화는 매진. 그래서 오후 6:15 티켓을 예매했다. 그리고 PC방 싼 데를 찾았는데 근처에서 하나 발견했다. 30 Rs에 1시간. 뭐 비교적 싸다.
인터넷을 좀 하다가 영화를 보러 갔는데, 바라나시랑 사르나트에서 뵈었던 우리학교 82학번 선배님 가족을 다시 만났다. 라자스탄에서 우다이뿌르, 조드뿌르, 자이살메르 보시고 와서 오늘 밤에 델리 가신단다. 일단 영화 보고 그 후에 차 한잔 하기로 했다.
영화는 인도 발리우드 영화 <Salaam-E-Ishq>였는데 인도판 <Love Actually>인 느낌이었다. 여섯 커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묘하게 얽혀있다.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정말 길었다. 거의 4시간 동안 상영했다. 중간에 휴식시간도 있었고. <반지의 제왕>보다 길다니. 나중엔 꽤 지쳐버렸다.
그런데 정말 인도가 영화 속 모습만큼만 되면 엄청날텐데. 잘 사는 인도는 정말 매력적일 것 같다. 아름다운 건물에, 보존되고 있는 전통의상과 풍습. 유럽 이상이지 않을까. 남인도는 이런 모습에 좀 가까울까. 인도가 이렇게 되길 기원해본다.
영화 끝나고 선배님 가족이랑 라씨 먹으면서 이야기 좀 하다 선배님이 델리행 버스를 타러 가시면서 헤어졌다.
2007. 1. 27 SAT JAIPUR
아침에 일어나 엽서 부치러 나갔는데 Jaipur Inn 앞에 오토릭샤꾼과 사이클릭샤꾼들이 계속 말을 걸어서 이야기 좀 해줬다. 짜이도 좀 마시고. 조금 이야기하다가 나가서 우체국에서 엽서를 부쳤다. 시간이 꽤 이르길래 그냥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이번엔 론리에 나온 Raj Mandir 영화관에 가서 <Vivah>라는 영화표를 끊었다. 약혼에서 결혼까지를 다루고 있는 영화. 오후 3시 시작, 6시5분에 종료. 인도영화는 기본적으로 러닝타임이 긴 듯.
일단 표를 끊어놓고 근처 오토릭샤꾼이랑 좀 놀다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인터넷 할 곳을 찾았으나 정전이라 불가능했다. 그냥 라씨 먹고, 대강 앉아있다가 시간이 되어 영화관에 들어갔다.
좌석 등급이 Ruby - Emerald - Diamond (3rd Class - 2nd Class - 1st Class)순인데, Ruby가 1층 앞쪽, Emerald가 1층 뒷쪽, Diamond는 맨 뒤 2층 Box에 자리가 있다. 높은 등급은 뒤에서 보는 인도 특유의 분류.
영화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내용은 집안에서 정한 상대와 약혼하고, 우여곡절을 거쳐 결혼하는 이야기. 인도의 결혼풍습은 아직 집안이 정한 상대와 결혼하는 것이 대세인 듯 싶었다. 인도 전통 결혼 의식 같은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보고 나서 인터넷을 좀 하다가 들어왔다. 내일은 푸쉬카르로 떠난다.  BRITANNIA와 PARLE의 비스킷
2007. 1. 28 SUN JAIPUR > PUSHKAR
아침에 버스 타고 Ajmer로 이동했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다시 푸쉬카르로 왔다. 론리에 나온 숙소로 가려고 했는데, 버스에 같이 탔던 인도 아저씨가 자기네 호텔로 오면 좋은 가격에 준다길래 그쪽으로 갔다. 그리고 동네를 돌아봤는데, 정말 작은 동네고 여행자 중심의 마을이다. 호객행위는 그다지 심하지 않은데 사람들이 대하는 것이 거의 전부 목적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작은 마을 Pushkar 그러다가 호수 근처에서 여러 명이 몰려다니는 집시여인들에게 잡혀 손에 헤나문신을 했다. 귀찮게 하길래 작은 거 하나만 하고 그냥 적은 돈을 주려고 했었는데, 두 명이 달라붙어서 마구 그리더니 150루피짜리 짜파티 가루를 요구하더라. 그냥 70루피 줬는데 다른쪽 손 해준 집시여인이 주머니에 있던 100루피 이하 지폐 중 남은 20루피를 달란다. 다 줘버렸다. 배고프다고, 남편은 술먹고 때린다고 불쌍한 표정에 돈 안 준다고 짜증내는 표정에... 내 돈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 나는 그들에게 단지 희생양일 뿐인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당한 날 위로하던 인도 소년은 계속 선물을 요구했다. 하나 남은 하회탈 열쇠고리를 줬다. 시계도, 작은 자물쇠도 달란다. 필요하다고 거절해도 계속 보챈다. 푸쉬카르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들 내게서 뭔가 요구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저녁 때 호텔에 돌아와 옥상 식당에서 나이 지긋한 프랑스 아주머니랑 이야기를 했다. 아주머니는 평생 프랑스 시골에서 양봉을 하다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은퇴하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왔다고 했다. 유럽 사람들 역시 항상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한단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기본적인 것들이 갖추어진 후에 하는 고민일 뿐이라는 것을 인도에 와서 느끼셨다고 한다. 내게 헤나를 해준 집시여인 이야기를 듣더니, 자신은 내장이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고 있던 집시여인을 보았다고 했다. 자신은 약품 정도밖에 줄 수 없었다고 했다. 인도는 그렇다. 길거리에 나가보면 구걸하는 꼬마거지, 거리를 떠도는 불구자,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부자들, 호객행위하는 장사꾼들, 죽어가는 노인들이 뒤섞여있다. 생로병사 ... 싯다르타가 어떤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한국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인도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돌아가는가.
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인도, 정말 복잡한 나라다. 생각할 수록 모르겠다. 좀 쉬어볼까 하고 온 곳에서 이런 복잡한 것들을 마주하다보니 별로 편하지가 않아 내일 당장 떠나기로 했다. 푸쉬카르 안녕.
나중에 델리 와서 보니 사실 헤나 비용으로 요구한 돈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껏해야 몇 십 루피짜리 도미토리를 전전하던 나에게 그런 비용은 너무 크지 않은가. 푸쉬카르에서 묵었던 방도 100 Rs였으니까.
 푸쉬카르에서의 헤나(1)  푸쉬카르에서의 헤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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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1. 23 TUE AGRA > JAIPUR
아침에 일어나 일단 비스킷부터 사놓고 체크아웃을 했다. 하루 숙박비가 150 Rs나 되어서 3일치 했더니 450 Rs. 이런 방이 왜 아침마다 정전 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쨌든 이 방이 인도에서 묵었던 곳 중 가장 비쌌던 곳이다.
어쨌든 사이클릭샤를 타고 어제 갔었던 Idgah Bus Stand에 가서 Jaipur행 버스를 탔다. 그다지 좋지 않은 버스에 사람들을 우겨넣는 시스템. 이게 124 Rs고, 근처 Hotel Sakura 앞에서 출발하는 Delux 버스는 140 Rs인데, 가격 얼마 차이 안 나는데 그걸 탈 걸 그랬나.
 On the Road to Jaipur 그래도 10시에 출발한 버스가 들은 대로 6시간 걸려 16시에 Jaipur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정부가 운영한다는 RTDC Tourist Hotel을 봤는데, Dormitory 50 Rs라고 쓰여있길래, 론리 보고 찍어놨던 Jaipur Inn 제끼고 고생해서 찾아갔더니 도미토리는 없댄다. 역시 숙소는 좀 안전하게 가야하는 건가...
어쨌단 다시 고생해서 Jaipur Inn을 찾아 도미토리에 들어갔다. 여긴 도미토리도 100 Rs나 한다. 짐 두고 옆 싱글룸에 들어온 미국인이랑 저녁을 먹으러 갔다. Thali 시켜서 먹었는데 난이 정말 맛있었다. 먹고 영화 좀 보려고 했더니 시간이 오후 6:30, 오후 9:30에 있단다. 3시간 간격으로 있고 러닝타임이 2시간 반인 것 같은데. GURU라는 영화. 그 때 시간이 오후 7:10 정도 되어서 영화는 그만두고 동네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미국인은 친구 만나러 갔다. 근데 자이푸르가 정말 대도시구나 하고 느낀 것이, 피자헛, 맥도날드, 서브웨이 샌드위치 다 있다. 쇼핑몰 비슷한 것도 있고. 레코드샵에 들어가서 봤더니 음악CD나 영화DVD가 우리나라에 비해 결코 싸지 않다. 이 나라의 빈부 격차는 대체 어느 정도인지.
나와서 거리에서 결혼식 후에 신랑 첫날밤 들어가는 행사 하는 것을 봤다. 신랑은 말타고, 음악 연주하고, 보조들이 라이트 들고 서있고, 거지는 구걸하고... 화려한 행사 이면에 숨겨진 많은 것들이 참...
2007. 1. 24 WED JAIPUR
아침에 일어나 물 사러 1층에 내려갔더니 Tea를 공짜로 주네. 서비스인가 싶어 잘 받아먹고 보니 사람들이 아침 먹고 있다. 뷔페식이라 여긴 아침식사 제공인가 싶어 그냥 먹으려고 보니 직원이 잡는다. 이 사람들은 그룹인데 너도 그룹이냐고. 아니랬더니 돈을 내란다. 무시 당하는 듯해서 기분이 좀 상해서, Continental Breakfast 먹겠다고, 얼마냐고 했더니 100루피랜다. 열받아서 시켰다; 콘푸레이크, 계란, 토스트, Tea뿐이다. 이게 100루피. 여튼 먹고 나서 좀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지. 먹고, 준비해서 나가면서 오늘치 숙박료 내고, 근처 수퍼에서 오늘 점심을 샀다. 정말 좋아진 인도 비스킷 PARLE. 크림 안 들어간 순수 밀+우유 비스킷인 PARLE-G 3개를 샀다. 하나에 4루피라 총 12루피. 오늘 아침은 이 비스킷 20개 분량;
걸어서 Old City로 들어갔다. 이곳이 Pink City라 불리는 곳. 이곳저곳 구경하다 Hawa Mahal 발견. 예전 궁중 여자들이 시장거리를 내려다보며 구경했던 곳이라던데. 그런데 너무 더워서 구석에 앉아 비스킷을 먹으면서 쉬었다. 자켓을 괜히 입었나, 하는 후회도 됐고. 아그라에 비해 너무 더웠다. 라자스탄이 사막지대라 그런건가. 라자스탄 주의 주도 자이푸르를 시작으로 라자스탄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Hawa Mahal, Jaipur  Hawa Mahal, Jaipur  Hawa Mahal, Jaipur 여튼 좀 쉬었는데도 지쳐서 인터넷 하고 저녁먹고 영화나 보러 가려다 그냥 바로 옆 City Palace에 갔다. 뭐, 가격이 비싸긴 했는데(180 Rs) 건물도 예쁘고 좋았다. 난 Palace 건물을 많이 보고 싶었는데 건물 개방은 별로 안 되고 거의 박물관만 있다.
 엄청난 비둘기떼, City Palace 앞 광장, Jaipur  City Palace, Jaipur  City Palace, Jaipur 보고 나서 다시 숙소 근처 Main Bus Stand로 돌아와서 밥 먹고 인터넷도 하고 사진을 CD로 구웠다. 왠지 정말 피곤한 하루. 내일 쉬려고 했는데 내일까지 유효한 Jaigarh For Museum Free Ticket이 City Palace 입장권에 포함되어 있네;
2007. 1. 25 THU JAIPUR
오전에 푹 자고 일어나 어젯밤 미리 준비해둔 비스킷을 하나 먹었다. 덕분에 아침식사 비용 세이브. 나가면서 BRITANNIA의 로즈밀크 크림 비스킷이랑 PARLE-G 비스킷 큰 것을 샀다. 어젯밤 PARLE 망고 크릿 비스킷을 먹어본 결과, PARLE 크림 비스킷은 비스킷이 PARLE-G(Plain 비스킷)에 비해 덜 맛있는 것 같다.
어쨌든 오늘은 Amber Fort랑 Jaigarh Fort 가기로 했다. City Palace 입장권에 Jaigarh Fort 무료 입장권이 붙어 있는데 이틀간 유효하다고 씌어있어 쉬기로 한 계획은 내일로 미루고 그냥 가기로 결정했다. Hawa Mahal 근처에 가서 Amber Fort행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에서 몇 명의 인도 대학생을 만났는데 자기네들은 Tourism을 공부하고 있는데, 지금 유적지 복원작업을 무보수 봉사활동으로 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자기네랑 같이 가보자고 하길래 거절했는데 계속 우겨서 한번 가보기로 했다. Amber Fort 가는 중간에 일단 내렸다가 같이 시간을 보내고 다시 가기로 했다.
일단, Maharani Ki Chhatri란 곳에 갔다. Lonely Planet에는 안 나오고, 그 친구들이 준 Jaipur 안내책자에 보니 다음과 같은 소개가 나온다.
Maharani Ki Chhatri: The funeral place for the royal ladies is distinguished by some wonderfully carved cenotaphs built here.
 Maharani Ki Chhatri, Jaipur  Maharani Ki Chhatri, Jaipur 이거 보고 나왔는데 계속 같이 가자고 우기길래 같이 가봤더니 웬 행사장이 나온다. 학생들은 모여서 앉아있고, 앞에 교수님들인지 뭔지... 학생들 나와서 한 마디씩 하고, 교장선생님도 오시고. 유적지 복원작업 봉사활동에 관한 행사로, 학생들이 자신의 체험담을 발표하는 시간인 것 같은데 힌디어로 말해서 하나도 못 알아듣고 한참 앉아 있었다.
학생들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앞에 교수님 같은 분이 나에 대해 다른 학생에게 물어보더니 South Korea에서 온 친구라는 것을 파악하고는, 트로피와 노트 등 상을 주는 시간에 마지막으로 나를 부른다. 덕분에 꽃다발 하나 걸고, 간디 다이어리를 받았다. 안은 힌디어라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다이어리랑 비슷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는 점심시간인 것 같은데, 학생들하고 아까 나를 부른 교수님 같은 분하고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그게 Indian Tradition이라고 그러길래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일단 신발을 벗으라고 해서 신발을 벗고 다들 모여 앉아있는 잔디밭으로 갔다. 일단 손을 씻고, 바나나 잎으로 만들어진 접시가 놓여지고, 밀가루 빵 비슷한 뿌리(Poori)랑 향신료 섞인 Mixed Vegetables, 감자 으깬 것, 향신료, 물 등. 그리 화려하진 않지만 학생용 식단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특히 Poori는 금방 만들어 따끈따끈했기 때문에 정말 맛있었다.
밥 맛있게 먹고, 조금 있다가 맨 처음 나를 꼬드긴(?) 친구가 버스 잡아줘서 다시 Amber Fort로 갔다.
 Amber Fort, Jaipur  Amber Fort, Jaipur  Amber Fort, Jaipur  Amber Fort, Jaipur  Amber Fort, Jaipur  Amber Fort, Jaipur Amber Fort 구경하고, 다시 더 높은 곳에 있는 Jaigarh Fort 올라가서 구경을 했다.
 Jaigarh Fort, Jaipur  Jaigarh Fort, Jaipur  Jaigarh Fort, Jaipur 내려오는 길에 어떤 가족을 만났는데 사직을 찍어 달라고 한다. 일행 중에 카메라를 가진 사람이 있길래 카메라 있지 않냐고 했더니 필름이 없단다. 일단 찍어주긴 했는데, 뽑을 곳도 없고. 이 사람들은 Jaigarh Fort 올라가던 길이었고. 어떻게 해달라는 건지. 너무 피곤해서 그냥 버스 타고 Jaipur로 돌아왔다. 덕분에 사진은 전해주지 못했다.
 Jaigarh Fort, Jaipur 바나나랑 오렌지 사고, 동네 수퍼마켓에서 비스킷이랑 콜라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Republic Day라 공휴일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인도 비스킷의 대표주자 BRITANNIA, PARLE의 비스킷  Jaipur Inn의 Dormito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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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 20 SAT BODH GAYA > AGRA
새벽 4시에 일어나 짐을 꾸리고 4시반 조금 지나서 아마르를 불렀다. 아마르가 오토릭샤를 잡아주어 오토릭샤를 타고 고려사에서 GAYA Junction Station까지 80루피에 왔다. 올 때는 그곳에서 버스 정류장을 찾아 버스를 타고 보드가야로 이동한 다음, 고려사를 찾아 가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비싸긴 해도 편하긴 하구나.
5시반쯤 기차역에 도착하니 고려사에 가시는 비구니 스님 두 분과 여자애 하나가 역에서 날 밝기를 기다리고 있더라. 이야기를 좀 하다가 이제 가도 될 것 같다며 고려사로 출발하셨다. 나는 게시판에 붙어있는 기차 좌석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Waiting List에서 올라가서 좌석이 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기차가 연착되어 좀 기다리다 기차에 올랐다. 기차역에서는 간단히 짜이와 첫 인도 비스킷을 먹었는데, 가격도 싸고 굉장히 맛있었다. 비스켓 몇 개를 구입해서 기차에 올랐고, 그 후에도 비스킷을 정말 많이 먹었다. 그 때 비스킷에도 MRP(Maximum Retail Price)라는 것이 표시되어 있음을 알았다. MRP 10루피 짜리 비스킷을 11루피, MRP 5루피 짜리 비스킷을 6루피 주고 구입했음을 알아챘는데, 조금 웃기더라. 그 아저씨 아이랑 같이 장사하고 있었는데, ... 뭐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그렇게 파는 사람 꽤 봤지만 뭐. 1루피라고 해봤자 우리 돈으로 20원 조금 넘는 돈이니까 나에겐 별 것 아닌데, 뭐 썩 기분이 좋지는 않지.
어쨌든, 기차에서는 호기심 많은 인도 가족들과 같이 앉아서 15시간 이상을 여행했다. 3명 앉는 좌석에 4명도 앉고 그러니깐 불편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쨌든 먹을 것도 얻어먹고 나쁘진 않았다. 보통 모르는 사람이 주는 것은 절대 먹지 말라고 하는데, 고향에 갔다온다는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하루종일 비스킷만 먹고 어떻게 하느냐'며 권하는 음식을 거절하기도 어렵고, 또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원래 Agra Fort역에 7시 25분 도착예정이었는데, 3시간 정도 연착되어 무척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오니 오토릭샤가 타즈마할까지 40루피로 합승 시켜준다고 한다. 좀더 깎아보려고 머뭇거리니까 됐다고 가버리길래 딴 사람 체크했더니 60루피라고 하길래 그냥 걸었다. 론리 플래닛 지도를 보니 금방 도착할 것 같아서 걸었는데, 꽤 멀더라. 40루피 아끼려다 이런 밤길을 큰 배낭을 짊어지고 혼자 걸어가려니 좀 걱정도 되고. 배낭이 없으면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도 있겠지만. 주머니에서 맥가이버칼을 만지작거리면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낄 때 아끼더라도 이런 것은 생각 좀 해보아야겠다. 결국 원하던 숙소에 도착하여 벨을 울리고 방을 잡았다. 론리에 나온 가격보다 비쌌지만, 밤 11시가 넘어 도착해서 방값을 흥정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그냥 묵었다. 피곤한 하루였다.
2007. 1. 21 SUN AGRA
컨디션도 안 좋았고 피곤해서인지 12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옥상에 올라가보니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타즈마할이 보였다. 아그라에 온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그 후 일단 동네를 좀 탐색하며 짜이도 마시고, 밥도 먹었다. 밥은 Shanti Lodge 바로 앞에 있는 건물 2층 식당에 갔었는데, Plain Rice랑 Egg Korma인가를 먹었다. 그럭저럭 맛있었던 듯. 주인 아저씨 라모가 라면 끓이는 것 알려달래서 설명 좀 해주고, 저녁 때 와서 알려준다고 했다.
식당에서 나와서 묵고있는 Hotel Host에 잠깐 들렀는데, 인도에서 어학연수 하다가 한국 돌아가기 전에 여행하는 분 만나서 이야기 해보니 타즈마할 괜찮다고 한다. 아그라성(Agra Fort)는 별로고. 사실, 옥상에서도 타즈마할이 보이니까 굳이 비싼 돈(750 Rs) 주로 볼 필요 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냥 이왕 온 김에 보기로 했다. 당시 우리 돈으로 1만7천원 정도의 가격이었는데, 뭐 그리 비싸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도에서의 내 하루 생활비가 숙박료, 식비, 교통비, 입장료, 식료품비 등등 모두 합쳐서 우리 돈 1만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거의 이틀치 생활비를 타즈마할 관람에 투자해야 하므로 상당히 부담이 되었다. 타즈마할은 외국인 입장료와 내국인 입장료 차이가 가장 큰 곳이었고(내국인은 10Rs였나 20Rs였음), 그렇지만 가장 웅장하고 멋진 곳이었다.
거금 750 Rs짜리 표를 사서 까다로운 출입 검사를 받았다. 라이터나 배터리, 흉기 같은 것은 들고 들어갈 수 없다. 문화재 손실을 우려해서인 것 같다. 금지물품은 보통 압수되는 것 같아서, 바로 옆에 있었던 숙소에 돌아가 라이터와 맥가이버칼을 두고 다시 왔다. 까다로운 출입 검사를 끝내고 들어가니 ... 정말 대단하다. 멋지다는 말 밖엔 안 나오더라. 그림 같은 건축물. 사진 많이 찍고, 열심히 구경했다. 정말 비쌌지만, 정말 멋있었다. 인도 ... 엄청나다. 지금 돌아봐도 타즈마할은 인도 최고의 건축물인 것 같다. 다른 곳은 돈이 아까웠던 적도 많았지만, 타즈마할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최고였다.
혹자는 무덤을 이렇게 화려하게 만든 것을 두고, 민중에게 도움이 안 되고, 정말 불합리하다며 싫어하던데, 왕족의 무덤을 화려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 왕릉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이집트 피라미드도 같은 경우 아닌가? 나는 류시화 씨가 쓴 인도에 관한 책은 읽어본 적도 없고, 사실 다른 사람이 쓴 인도에 관한 책도 읽어본 적이 없다. 류시화 씨가 그런 식으로 썼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은데, 확실한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별로 그런 식으로 생각되진 않았다. 그냥 대단한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타즈마할에서 해지는 것까지 보다가 혼자 여행하시는 한국인분을 만났다. 그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아까 점심 때 갔던 음식점 들러서 주인아저씨에게 라면 끓이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분이 신라면 스프가 있어서 그걸로 끓여서 먹다가, Plain Rice만 시켜서 밥을 말아먹었다. 내가 가져간 안성탕면 스프는 주고 왔다. 사실 많이 먹으려다 주인 아저씨가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 같아서 그곳에서 나와 다른 곳에서 Thali를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이 분은 인도 온 지 10일 정도 되셨고, 라자스탄 갔다가 여기서 바라나시로 가신단다. 네팔 갈 지도 모르고. 기차표 구하려고 하신다는군. 이야기를 좀 하다 헤어졌다. 나는 비스킷을 사서 짜이 한 잔이랑 같이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2007. 1. 22 MON AGRA(FATEHPUR SIKRI)
아침에 일어나 나가서 얼른 아침을 먹고 Idgah Bus Station으로 갔다. 사이클 릭샤를 타서 가서 Fatehpur Sikri행 버스를 탔다. 1시간 정도 타고 가니까 도착했다.
처음 향한 Jama Masjid는 공짜였는데, 가이드 해준다는 녀석들이 미치도록 따라붙더라. 가이드 아니라고, 학생이라고 우기더니, 자기 가게가 있단다. 어이가 없어서. 가이드 돈은 안 줘도 된다는데, 그거 아니면 가게에서 물건을 사라는 거겠지. 거절해도 절대 안 가고. 인도가 호객행위가 심한 것으로 유명한데, 여긴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진드기 처럼 달라붙는 놈들은 처음 봤다. 어떤 서양인 부부는 욕까지 하던데; 그래도 물론 좌절하지 않더군;
모스크인 Jama Masjid와 입구인 Buland Darwaza(Victory Gate)는 정말 훌륭한 건축물이었음에도 짜증나는 인도인들 덕에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인도...정말 이해할 수 없다. 미친 인도인들과 훌륭한 유산. 여행을 하면서 좋은 인도인들도 많이 만나보았지만, Fatehpur Sikri는 아직도 인도 최악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짜증나서 근처에 있는 Palace Buildings로 이동했다. 이곳 역시 UNESCO 세계문화유산이긴 한데 외국인 요금이 꽤 비싸다. 어쨌든, 이곳은 입장료를 내야되어서인지 진드기 인도인들이 없다. 웅장한 것은 모스크가 더 낫더라.
Fatehpur Sikri는 잠시동안(1571-1585) Mughal 제국의 수도였다. 악바르가 수도를 여기로 옮겼다가 물 부족 때문에 어려움을 겪다, 악바르 황제가 죽고나자 바로 버려져서 지금까지 보존되었다.
어쨌든 스트레스 잔뜩 받아서 아그라로 돌아왔다. '티벳탄 키친'이란 곳에서 불고기랑 난을 먹었다. 그리고 비스킷을 또 사와서 먹었다. 비스킷 정말 좋다. 싸고, 맛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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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1. 17 WED VARANASI > BODH GAYA
새벽 1시45분이 되어도 깨우는 사람도 없고 기차도 안 온 것 같았다. 나가서 전광판을 확인하니 기차가 연착인 것 같다. 기차는 3시 5분에 도착해서 15분에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다시 Retiring Room에 돌아와서 누워서 안내방송을 들었는데 3시가 되니 기차 3152편이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온다. 나가서 카운터에 물어보니 빨리 가랜다. 얼른 가서 기차칸 찾아 침대를 잡았다. 이때 SL 칸을 처음 탄 것 같은데, 사실 좀 충격이었다. 더럽고, 추운 밤에 난방도 되지 않고, 사람들은 숄 같은 걸 뒤집어 쓰고 누워있었다. 중국에서 험한 기차 안 타보고 시설 좋은 칭짱열차만 타봐서 그런 걸까. 네팔, 인도에서 험한 현지 버스들을 여러 번 탔음에도 불구하고 SL은 왠지 좀 죄수 수송열차 같아서 원. 그래도 타다보면 나름 재미는 있는 것 같은데, 난 아무래도 기차 보다는 창밖 구경도 많이 할 수 있고, 휴게실에서 쉬다 가는 맛도 있는 버스가 좋다.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기차보다 버스가 꽤 비싸더라.
어쨌든 대강 불쌍하게 쭈그리고 잤다. 아침 8시 정도에 Gaya Junction Station에 도착. 안내방송도 없고, 기차역 표지판을 봐도 잘 안 쓰여있어서, 같이 탄 인도분들에게 물어물어 내렸다. 관광객 상대하지 않는 일반 인도인들은 대개 도움을 청하면 잘 들어주고, 호기심도 많은 느낌.
혹시나 해서 Gaya에서 Agra로 가는 기차표 Waiting List가 줄어들었나 확인해보니 그대로다. 휴, 뭐 10시간 정도의 구간이긴 하지만 뭐 자리 나겠지. 안 나면 쭈그리고 앉아서 가고.
역에서 나가니 오토릭샤꾼들이 엄청 달라붙는데다, 사이클 릭샤 타고 질라스쿨 버스 스탠드 간다고 그랬는데 이 릭샤왈라(릭샤꾼)이 처음 부른 가격의 두 배인 10 Rs를 요구한데다, 버스 스탠드가 아니라 질라스쿨 오토릭샤 스탠드에 내려준다. 관광객 하나 내리면 정말 벌떼같이 달려드는 릭샤왈라들. 인도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1순위라면 역시 릭샤왈라다. 사기치고, 거짓말하고, 어떻게든 관광객을 뜯어먹으려는 그들. 사회에서 가장 하층이고, 제대로된 집이 없어서 릭샤에서 잠들기도 하는 릭샤왈라들을 보면 가끔 동정심이 생기고 그들의 행동이 이해도 가지만, 정말로 감당하기 힘들다.
어쨌든 오토릭샤를 피해 사이클 릭샤를 탔더니, 결국 다른 곳에 있는 오토릭샤꾼에게 나를 넘긴 것에 화나서 물어물어 혼자 질라스쿨 버스 스탠드를 찾아갔다. 그나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론리플래닛 지도로 대강의 위치를 파악해 놓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곳에서 한참 기다려 버스를 타고 보드가야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도 릭샤왈라들이 잡는걸 그냥 걸어서 한국절 고려사를 찾았다. 주지스님과 매니저 아마르에게 말하고 도미토리 침대를 배정받은 후 점심을 먹었다. 점심먹고 여기 오신 다른 스님이 손님들 가이드 계획 짜는 거 도와드리다 샤워하고 빨래를 했다. 저녁 먹고 밤에는 매니저 Amar랑 절에서 머무시는 한국인 한 분이랑 오토바이 타고 시장에 다녀왔다. 보드가야는 마음이 편하다. 어떨까, 스님들이 '대(大)탑'이라고 부르는 Mahabodhi Temple과 석사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는.
 고려사, Bodh Gaya
2007. 1. 18 THU BODH GAYA
밤에 모기 때문에 잠을 좀 설쳐서 그런지 늦잠을 자버렸다. 식사시간을 알릴 때 깨버려서 부스스하게 나가서 아침을 먹었다. 토스트와 계란후라이(오믈렛), 따뜻한 우유. 맛있게 먹고 오전엔 Mahabodhi Temple에 다녀왔다. 바로 뒤에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가 있다. 보리수는 후일 아쇼카왕의 부인이 죽였지만, 그 전에 자른 가지가 다른 곳에 반출되어, 꺾꽂이의 형태로 후에 다시 보드가야로 돌아왔다고 한다. 깨달음의 도시, 보드가야.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Mahabodhi Temple, Bodh Gaya  석가모니가 그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Mahabodhi Temple, Bodh Gaya  Mahabodhi Temple, Bodh Gaya  Mahabodhi Temple, Bodh Gaya 다녀와서는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 직전에 오신 분과 나랑 매니저 아마르(Amar)는 점심 먹고 설거지 후 시장에 갔다. 이 분이 상주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신다는 배선혜님. 누님과 나는 바나나 나무 한 줄기를 통째로 사고 싶어 가격을 보고 사버렸다. 바나나 나무 한 줄기에 바나나가 91개 열려있다. 엄청나네. 장을 본 것을 사이클 릭샤에 싣고 나 혼자 먼저 고려사에 돌아왔다. 아마르랑 누님은 다른 것을 사러가시고.
나는 절에서 기다리다가 두 명이 안 돌아오길래 혼자 나가서 Great Buddha Statue랑 다른 나라 사원들을 둘러보고, 짜이도 마시고, Mahabodhi Temple에도 다시 들렀다 절에 돌아왔다.
 Great Buddha Statue, Bodh Gaya  Mahabodhi Temple, Bodh Gaya  Mahabodhi Temple, Bodh Gaya 돌아와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과연 내일 떠나야 될까. 벌써 떠나자니 아쉬움이 들었다. 일단 기차표 확인을 해서 Waiting List가 해제되고 자리가 났는지 확인해 보아야겠다. 보드가야에서 기차표 예매 사무소도 찾았다.
2007. 1. 19 FRI BODH GAYA
아침에 밥을 먹고 기차표를 확인했다. Waiting List 번호가 39번으로 줄어들었다. 취소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자리가 나려나. 어쨌든 운 좋으면 내일 갈 때는 자리가 생기겠지. 그리고 나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Mahabodhi Temple에 갔다. 내일부터 World Peace Festival이 열린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대탑에 스님들이 많이 모여있다. 오체투지 하는 사람도 많고. 티벳 사람들이 특히 많이 모인 것 같더라. 달라이 라마도 행사 기간에 보드가야에 온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못 뵙고 가겠구나.
 Mahabodhi Temple, Bodh Gaya 오후에는 짐을 싸서 가야에 가려고 했다. 기차가 아침 일찍 있어서 가야에 가서 하루 묵고, 아침에 기차를 타려고 했다. 그런데 아마르가 내일 아침에 가도 괜찮다고, 자기가 오토릭샤 잡아주겠다고 해서 그냥 내일 아침에 떠나기로 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마르랑 사진 찍고, 사진을 인화해서 주려고 했는데 디지털 사진은 당일 인화가 불가능하다네. 그때, 사진을 인화해서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보내주지 못해 미안하다.
 고려사의 법당, Bodh Gaya
저녁 때 잠깐 대탑에 들렀는데, 티벳사람들이 잔뜩 코라를 돌고 있었다. 티벳 방식대로 Mahabodhi Temple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돈다. 즉, Mahabodhi Temple을 자신의 오른쪽에 놓고 주변을 도는 것. 티벳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 중 하나인 코라를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나도 열심히 세 바퀴 돌고 고려사로 돌아왔다.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주지스님과 절에 묵으시는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했다. 위빠사나(Vipassana) 수행 하시는 분도 있고, 수행에 관해서 이야기도 하고, 여러가지 명상법 등에 대해서 좋은 말씀도 많이 들었다. '수행을 많이 하면 죽을 때 도움이 된다'던 주지스님의 말씀이 인상깊었다. 보통 사람은 죽을 때 정신 못 차리고 무서워하다가 죽지만, 수행을 많이 하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기의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어떻게 죽어갈까. 미래의 일이지만, 궁금하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죽을 수 있도록 살아봐야지.
스님이 다시 놀러오라고 하셨는데. 보드가야, 고려사, 언젠가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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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 14 SUN VARANASI
오전에 일어나서 사르나트에 가면서 비행기 티켓이랑 가야행 기차표를 사려고 했는데, 아침을 먹고 가트 쪽에 갔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 Kite Festival도 있으니 하루만 더 보고 가자 싶어서 일단 사르나트 후에 향할 가야행 티켓부터 구하기로 했다.
먼저, 기차역(Varanasi Junction Station)에 들러 외국인 전용창구 오픈시간을 확인했다. 이곳도 일요일엔 오후 2시까지네. 여행사도 일요일엔 오후 2시까지여서 먼저 어제 체크했던 여행사로 갔다. 그곳에서 델리 > 방콕 > 인천 티켓 발권. 타이항공. 총 23,175루피. 신용카드 수수료도 청구하던데. 당시 환율론 우리 돈으로 51만원 정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듯. 원하는 날짜가 없어서 조금 조정해서 발권을 했다. 일단, 2월 14일 00:05에 델리에서 떠나고, 방콕에서 서울 가는 것은 3월 1일로 잡아놓았다. 19:40에 인천 도착인데, 완전 자정에 도착해서 다음날 학교갈 것 같았다. 방콕 스탑이 좀 기니까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좀 다녀오든지 해야지. 어쨌든 나중에 생각하고.
 바라나시의 거리  숙소 앞 골목, Varanasi 비행비표를 사고 기차역에 돌아와서 가야행 기차표를 발권했다. 다시 걸어서 고돌리아 지역(메인가트) 돌아와서 간단히 밥을 먹었다. 메인가트 쪽 골목길 인터넷 방 iway에서 Megu Cafe 주인 일본인 아주머니를 봤다. 그냥 지나쳤는데 나중에 따라오셔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iway에서 국제전화가 엄청 싸다고 하네. 1분에 6루피(1루피에 당시 약 22원) 좀 안한다고 해서 바로 돌아가서 베이징 이후로 집에 처음 전화를 했다. 5분 가량 했더니 30루피 나왔네. 이 때, 라싸에서 잠깐 만났던 한국인분이랑 다시 만났다. 비행기표 샀다고 말했더니 궁금해 하시길래 지도랑 여행사 명함 드렸다. 말을 많이 해보지는 않은 분이라 다음에 또 보게 되면 밥 사주겠다는 말만 듣고 헤어졌는데, 어떻게 한국 잘 들어오셨으려나 모르겠다.
그거 하고 가트 쪽 가서 세레모니 하는 것을 봤다. 나중에 알았는데 뿌자(Puja) 의식이라고, 힌두교에서 매일 저녁마다 하는 예배의식 같은 거다. Kite Festival도 한 것 같았는데, 늦어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매일매일 잔뜩 연을 날리던 것이 Kite Festival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전봇대 전선에도 연이 잔뜩 걸려있고. 바라나시는 정전이 잦았는데, 연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뿌자(Puja) 의식 중 사람들이 강가(갠지스강)에 띄운 촛불  뿌자(Puja), Ganga, Varanasi  뿌자(Puja), Ganga, Varanasi 내일은 사르나트에 들러 1박을 하고 보드가야로 간다.
어쨌든, 요샌 힌두교 최대의 축제 쿰바밀라가 열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좀더 화려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바라나시에서 처음 뿌자를 보는 것이어서 어떤지는 모르겠고. 그거 보고 다시 메인가트 쪽 골목길에 가서 웃밤(Uttpam)이란 음식을 먹었다. 무슨 빈대떡 비슷했던 것 같은데. 돌아올 때는 바나나를 사서 돌아왔다.
2007. 1. 15 MON VARANASI > SARNATH
오전에 마지막으로 Megu Cafe에 가서 치킨까스 세트를 먹었다. 그리고 우체국에 가서 찬영이랑 삼촌에게 엽서를 부치고, 짐을 싸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 앞에서 달라붙는 오토릭샤들을 무시하고 사르나트행 버스를 탔다. 오토릭샤가 좀더 편할지 모르겠지만 버스가 훨씬 저렴하니까. 버스요금은 8루피에 불과했다. 뭐, 많은 여행객들이 오토릭샤를 이용할 지는 몰라도, 혼자 다니는 입장에서 버스요금의 열배를 넘어가는 오토릭샤를 이용하는 것은 지나친 낭비다. 좀 더럽고 불편해도 현지인들과 버스를 같이 타고 다니는 것이 더 재미있기도 하고.
어쨌든, 사르나트는 바라나시에서 별로 멀진 않은 것 같다. 조금 가니 바로 도착해서 얼른 내려 한국절 녹야원에 찾아갔다. 역시 사르나트로 가신다던 바라나시 요기롯지에서 만난 권평정 선배님 가족을 만났다. 사모님께서도 정말 반가워하시면서 수제비도 챙겨주시고, 꼬마도 '어 진짜 왔네' 하면서 반가워했다. 아는 분 있어서 반가웠는데,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을 지도 모르겠네.
스님에게 정식으로 인사도 못 드린 것 같은데, 어쨌든 방 배정 받고 이야기 좀 듣다가 나가서 석가모니가 처음으로 설법한 곳에 세운 Dhamekh Stupa도 보고 근처 유적지도 둘러보았다.
 Dhamekh Stupa, Sarnath  꽃사슴, Sarnath  Dhamekh Stupa 주변 풍경, Sarnath 절에 가지 두 개를 사가지고 돌아와서 같이 묵는 분들과 저녁을 해서 밥을 먹었다. 근데 주지스님한테 좀 잘못 보인 것 같았다. 뭐, 나 역시 '아무 생각없이 인도 왔다가 물가 싸다고 돈 막 쓰다보니 여행 중반쯤 되어 돈이 떨어져서 절에 기어들어온' 사람도 아니고, 룸비니에서 간단하게나마 성지순례를 해보고 싶다고 결정한 입장으로서 좀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어쨌든, 룸비니를 비롯해 쿠시나가르, 보드가야에서도 한국 절에서 묵었는데 유일하게 유쾌하지 못했던 것 같다.
2007. 1. 16 TUE SARNATH > VARANASI
아침을 먹고 법당에 계속 앉아있다가 점심을 먹고 녹야원에서 나왔다. Varanasi Junction 역에 와서 Retiring Room에 도미토리를 잡아놓고 나와서 가야에서 아그라까지 기차표를 예매했다.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3등칸 쿠셋인 SL(Sleeper) 클래스에 자리가 없어 일단 Waiting List에 오른 티켓을 끊었다. 뭐, 운이 좋으면 자리가 생기겠지.
그리고 나가서 바나나 12개짜리 사서 좀 먹었다. 새벽 기차라 도미토리에서 자다가 깨다가 바나나도 먹고 생식도 먹고. 생식은 서명누님이 주고 가신 건데 유용하게 잘 쓴다. 기차 예정은 새벽 1시 45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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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1. 11 THU VARANASI
오전에 일어나서 주변 지리를 익혔다. 일단 걸어보는 게 내가 지리를 익히는 방법이다. 우선 숙소 근처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Man Mandir Ghat에서 강가(Ganga, 갠지스)를 보았다.  Varanasi, India  Varanasi, India 그리고는 배가 고파 Bread of Life Bakery에 갔다. 라싸에서 만난 경내 씨도 추천한 곳이고, 론리에도 나오니까 한번 시도해볼만 하겠지. 브런치를 먹으러 갔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빵이랑 콜라를 먹었다. 이상하게 이런 지역을 여행하면 콜라가 무척 마시고 싶다. 어쩐지 '문명의 맛'이란 느낌. 어쨌든, 먹으면서 론리 열심히 읽으면서 바라나시를 둘러볼 계획을 세웠다.
적당히 마무리하고 가게를 나와 계속 걸었다. 버스 스탠드랑 기차역(Varanasi Junction Train Station) 등등을 살펴보고, 기차역을 한 바퀴 돌아보며 구조를 파악했다. 버스 스탠드에선 보드가야행 버스 있냐고 물어봤는데, 버스가 전혀 없다고 한다. 론리에는 오전에 한대 있다고 나와있는데 말이야. 어쨌든, 기차역 북쪽까지 한 바퀴 더 돌다가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와서 Tourist Information에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보드가야 가는 법, 기차역 도미토리 이용법 등등. Trains at a Glance(기차 시각표 책)를 사고 싶었는데 힌디어 판밖에 없어서 사지 못했다.
다시 숙소 근처인 고돌리아로 돌아올 때는 너무 지쳐서 사이클 릭샤를 타고 왔다. 그리고 고돌리아에 있는 현지인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한국 선교단체에서 온 한국인들을 잔뜩 만났다. 요시코상도 만났는데, 릭샤꾼이 요기롯지에 데려다 줬다고 한다. 이름이 똑같은 '짝퉁' 요기롯지인가.
어쨌든, 밥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도미토리 이웃인 프랑스 여자애랑 옆 방 독일인 가족과 이야기를 했다. 독일인들은 남인도를 돌다가 바라나시에 왔는데, 남인도가 정말 좋았다고 하더라. 나도 좀더 시간이 있다면 남쪽으로 내려가고 싶다.
2007. 1. 12 FRI VARANASI
아침에 일어나 숙소 앞 Megu Cafe에 가서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문을 아직 열지 않았다. 오전 10시에 오픈해서 저녁 9시까지 영업하더라. 근처 Bank of Baroda에 여행자 수표를 바꾸러 갔는데, 여기도 문을 열지 않았다; 11시에 연다고 한다.
그래서 체념하고 그냥 숙소 근처 Man Mandir Ghat 남쪽에 있는 메인가트 Dasaswamedh Ghat에서부터 남쪽을 향해 계속 걸었다. 그러면서 남쪽 가트들을 구경했다.
 Varanasi, India  Varanasi, India 보고나서 바라나시 남쪽지역에 있는 Benares Hindu University까지 걸어갔다. 나는 언제나 걷는다. 걷다보면 나오겠지.
대학 앞은 역시 변화하더라. 게다가 대학 안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가트를 둘러볼 때, 이게 바라나시의 매력인가 싶었는데, 대학은 정말 깔끔하고 귀족적이었다. 대학을 둘러보다가 New Vishwanath Temple 발견. 바라나시에 있는 대부분(혹은 전부)의 힌두 사원들은 힌두교도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지만, 이곳은 그런 제약이 없었다. 들어가서 신상들, 사원들을 구경했다.
 Central Library, Benares Hindu University, Varanasi  New Vishwanath Temple, Benares Hindu University 팔이 여덟 개 달린 신도 있었고, 검은 얼굴의 신상도 있었다. 이게 시바 신이었나? 여성 생식기 모양의 상도 있었다. 사진으로 많이 보던 것이었다.
사원을 구경하다 이 학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한다는 브라만을 만났다. 자기가 '브라만'이라고 말하더라. 이렇게까지 계급의식이 투철할까. 힌두교에선 좋은 업을 쌓으면 상위 계급으로 태어난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나는 '그래서 어쩌라고'의 심정으로 대강 응답해주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도 또다른 카스트가 있지 않은가. 미국, 서양을 동경하고 동남아, 네팔, 파키스탄 노동자들을 깔보고. 인권이란 뭐고, 계급이란 뭐고, 태생적 차별이란 무엇인지. 결국 우리도 예외가 아니지 않나.
사원에서 나와서 15루피짜리 레몬주스를 맛있게 마시고 걸었다. 걸어서 다시 가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강가를 따라 서서히 북상.
 크리켓 경기 at Benares Hindu University, Varanasi  Ganga, Varanasi  소 떼 at Ganga, Varanasi
은행에 가려고 했는데, 중간에 Harish Chandra Ghat에서 화장의식이 행해지고 있어서 구경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인지 별다른 의식이 없다. 시신을 가져와서 갠지스 물에 한번 적시고 태운다.듣기에는 미리 동네 한바퀴 돌고 온다고 하던데. 네팔 카트만두의 Pashupatinath에서 보았던 꽉 찬 화장의식과는 사뭇 다른 느낌. 시신 타는 것을 보다가 서둘러 은행에 갔는데 오후 4시에 닫는다고 한다. 도착한 시간은 5시반 정도. 내일은 토요일이라 11시부터 오후 1시반까지라면서 내일 오라고 한다. 내일은 꼭 시간 맞춰서 가야지.
저녁은 숙소 앞 Megu Cafe에서 오야꼬동(치킨+계란 덮밥)을 먹었다. 인도인 남편과 일본인 부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어쩐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그들. 깔끔하고 음식도 맛있고, 바라나시에서 찾기 힘들 정도로 사랑스러운 곳인데 왜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을까 싶더라. 가게 문을 연지 두 달밖에 안 되었다고 홍보를 부탁하던데. 장사가 생각보다 잘 안 되어서 그런걸까.
정사장님이 빌려주셔서 본 '마지막 여행'(박동식의 네팔, 인도 여행기)에서도 네팔인에게 시집가서 네팔 시골에서 하루종일 농삿일에 시달리는 일본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Megu Cafe 주인부부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책에서처럼 돈 보고 일본여자랑 결혼했다가 돈이 없어서 실망한 게 아니길. 일본 여인도 참 대단하다. 이렇게 사는 한국 여인이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가게를 차리고 운영하는 것도 일본인 부인이 주도한 것 같은데. 현명한 여자를 만나는 게 참 중요하겠구나.
밥 먹고는 인터넷을 했는데, 한글이 읽히지도 않는다. 어떻게 하지. 숙소에선 아침에 체크인을 한 한국분들과 이야기를 좀 했다. 내일은 북쪽 가트 구경 해야지.
2007. 1. 13 SAT VARANASI
오전에 일어나서 Vegetable Thali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다. 고돌리아 쪽 길에서 Golden Temple(Vishwanath Temple)로 들어오는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식당, 맛도 가격도 좋은데 서비스가 너무 불쾌하다. 모욕을 참는 것도 정도가 있다.
아침을 먹고 은행 가서 여행자 수표를 무사히 환전했다. 이제 오늘은 메인 가트 북쪽의 가트를 둘러보는 날. 걷고, 또 걷는다.
 Manikarnika Ghat, Varanasi
그러다가 Manikarnika Ghat에서 화장하는 것을 한참 봤다. 여기선 의식을 바라나시 골목길에서 다 하고 오는걸까. 시신을 가져와서 강가에 담궜다가 장작에 얹고 짚에 불을 붙여 시신 주위를 세 바퀴 정도 돈 다음 불을 놓는 것밖에 없다. 그걸 보고나서 북쪽 끝까지 걸었다.
 Varanasi, India  Varanasi, India 가트 북쪽 끝까지 도착해서는 강가를 벗어나 철로를 따라 Kashi Train Station으로 갔다. 바라나시 북쪽에 있는 다른 기차역. 이곳에서 릭샤를 타고 Varanasi Junction Train Station에 갔다. 그리고 걸어서 역 북쪽지역 여행사에 가서 항공권 가격을 체크했다. 두 군데 체크했는데, 처음 곳이 직접 발권하고 가격도 좋았다. Delhi > Bangkok > Inchon 노선이 TAX 포함해서 50만원선이었다. 항공사는 타이항공. 그런데 여행사 가는 도중에 룸비니에서 쿠시나가르에 갈 때 버스를 태워주신 성지순례 하시는 분들을 만났다. 이런 인연이, 하면서 정말 반가워했다. 이 분들은 타지마할을 보러 아그라에 가신다고 했다.
어쨌든 항공권을 알아보고, 다시 고돌리아 지역으로 돌아와 한국인이 많이 모여있는 메인가트(Dasaswamedh Ghat) 뒤쪽 지역에서 PC방에 갔더니 한글이 읽힌다. 밀린 메일 쓰고, 확인하느라 2시간반이나 사용했다.
돌아올 때는 Megu Cafe에 들러서 가츠동을 먹었다. 그런데 가츠동이면 돈가스 덮밥이라, 돼지고기를 써야되는데 치킨을 쓰더라.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시해서 먹지 않고, 이슬람에선 돼지를 부정하게 여겨 먹지 않기 때문에 치킨을 쓰는 것 같다. 바라나시는 이 모든 종교의 총체니까, 분쟁이 일어날 일 따위는 하지 않는 게 좋겠지.
저녁을 먹고 돌아와서 이리저리 고심한 끝에, 일단 비행기표를 사고 얼른 이동하기로 했다. 결정하고 행동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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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 8 MON LUMBINI
룸비니 대성 석가사의 아침 공양시간이 5시50분부터 6시반까지라 아침 일찍 일어났다. 점심은 11시반부터 12시, 저녁은 오후 5시반부터 6시.
어쨌든, 아침공양을 하고, 씻고 정리를 좀 한 후 Maya Devi Temple을 보러 갔다. 기존 유적들의 흔적이 남아있고, 싯다르타가 태어난 곳의 유적도 정확히 남아 있었다. 이렇게 콕 집어서 '여기서 태어났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앞에 있는 성스러운 연못(Sared Pond)에선 마야 데비 왕비가 싯다르타를 낳기 전에 목욕을 했다고 한다.
 Maya Devi Temple, Lumbini  Maya Devi Temple, Lumbini  Maya Devi Temple, Lumbini  Maya Devi Temple, Lumbini  Maya Devi Temple, Lumbini 절을 둘러보고 건너편에 있는 네팔 절(Nepal Buddha Vihara)에서 법회 참석하고, 그 맞은편에 있는 티벳 절 Dharma Swami Maharaj Buddha Vihar에 들렀다가 나왔다.
그 후 주변을 좀 둘러보다 베트남절에 들렀는데, 공사중이라 닫혀서 못 들어갔다. 그리고 중국절에 들렀는데, 자금성을 떠올리게 하는 황금기와(노란 도자기) 등 멋지게 잘 해놨는데, 여기서는 잘 수도, 식사를 할 수도 없는 듯했다. 역시 우리 절이 최고!
 베트남 절, Lumbini  중국 절, Lumbini  중국 절, Lumbini 중국 절은 우리 절 대한사 바로 건너편에 있었는데, 점심공양시간이 되어서 밥을 먹으러 우리 절로 돌아왔다. 절에서 점심을 먹고 여기서 머무는 분들이랑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게 여행을 오신 여선생님도 있었고, 인도에서 여행을 하다 올라온 친구들도 있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절에서 머물고 있는 유럽 출신의 부부도 있었다. 참,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오후 늦게는 East/West Monastic Zone을 한바퀴 돌았다. 미얀마, 태국, 인도, 네팔, 캄보디아(건설중), 독일 등의 절이 있었다. 국가가 다양한 만큼 건축양식도 천차만별. 그런 다양성을 보는 것이 즐겁다.
 네팔 절, Lumbini  미얀마 스투파, Lumbini  미얀마 절(?), Lumbini  태국 절, Lumbini  일본 절(?), Lumbini  독일 절(?), Lumbini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석양을 보았다. 먼 타국에서 보는 석양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부처의 탄생지에서 보는 석양.
 룸비니에서의 일몰  석가사 대웅전에 올라, 룸비니 우리 절에 돌아와서는 공사중인 대웅전에 올라갔다. 건너편에 보이는 노란 기와의 절이 중국 절. 우리 절은 지금 공사가 한창. 왼쪽 건물에 스님들이 거처하시는 방들, 법당, 종무소 등이 있고, 오른쪽 건물이 여행자 및 성지순례객들을 위한 숙소다. 건물은 다른 나라 절들에 비해 멋있지는 않지만 우리 절이 제일 사랑스럽다. 왜냐하면 이 많은 절들 중에 여행자들을 재워주는 곳은 우리 절과 일본 절, 두 군데뿐이다. 그런데 일본 절은 새벽에 아침예불을 참석하지 않으면 머물 수 없다. 우리 절은 전혀 강제사항이 없어서, 일본 아이들까지 일본 절이 아니라 우리 절에서 머물고 있었다. 식사도 정말 맛있고. 성지순례를 하는 네팔인 힌두교도들까지 머물게 해주니 인심을 얻는 것 같았다. (힌두교에서는 석가모니를 Vishunu신의 화신으로 여겨 성인으로 취급한단다) 정말 마음이 편해지는 곳. 다시 가보고 싶은 곳.
그리고 저녁 밥을 먹으러 갔다. 저녁은 중국 여자분이랑 일본 여자분이랑 같이하게 되었다. 중국 분은 인도에 13개월 있다가 네팔에 오셨다고. 일본 분은 한국 갔다가 동남아 돌고, 중국 들어가서 티벳 거쳐서 네팔 들어왔다고 한다. 내일 석가모니가 열반한 쿠시나가르(Kushinagar) 간다고 하길래, 나도 어디로 갈까 한참 고민하다가 같이 가기로 했다. 한번 인연에 따라보지 뭐. 룸비니에 있으니 마음이 참 편해졌더랬다. 그래서 좀더 머물까 하다가 그냥 떠나는 거니까, 석가모니가 열반한 쿠시나가르도 한번 가보지 뭐, 하는 생각이었다.
스님께 물어보니 그곳에도 대한사라는 한국 절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묵을 듯 싶다. 저녁 때는 투어온 네팔 여자애들이랑 이야기 좀 했다. 사람마다 말이 다 달라서 모르겠는데, 이 친구들은 4살에 학교 들어가서 16살에 대학 1학년이라고 한다. 하나는 17살 대학 2학년, 다른 하나는 동생인데 14살에 10학년이란다. 카트만두에 산다는데 얘네도 보통 석사(Master's Degree)까지는 공부한다고 그러네... 음, 진짠가. 예전에 Chitwan에서 로자나네 남편도 그런 소리 했던 것 같은데. 여기 대학이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밖에 못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모르겠네. College들이 전부 고등학교 건물처럼 생겨서 그런 생각도 들고.
여튼 내일 이 사람들도 쿠시나가르(Kushinagar) 갔다가 다시 여기 대성 석가사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새벽 4시에 출발한다며 일찍 자러간다네. 내가 바디랭귀지로 재미있게 해줬더니 "You are so sweet"이라던데. 뭐니 얘네(...) 흠칫했다;
나는 한국사람들이랑 이야기 좀 했다. 인도에서 오신 분들에게 인도 이야기도 듣고. 한 분은 이번에 취업하면서 한달 계획으로 첫 해외여행을 오셨다고 했다. 이런저런 고생담, 즐거운 체험들과 깨달음들을 이야기하시는데, 정말 재미있게 들었다. 여행이란 이렇게 누군가에게 성장의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누가 여행을 많이 했고, 적게 했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여행자들은 여행이란 공통점으로 하나가 된다.
2007. 1. 9 TUE LUMBINI > KUSHINAGAR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짐을 챙겨 준비한 후 일본 여자분(요시코 상)이랑 같이 출발하려고 기다리던 중에 주지스님께 쿠시나가르 관련해서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대한사라는 절이 있고, 묵어갈 수 있다고 했다.
 대성 석가사, Lumbini 요시코 상이 좀 늦어져서 기다리는데 한국 성지순례 패키지로 오신 분들이 들리셨다. 이분들이 이제 쿠시나가르 가실 계획이고, 버스 자리도 여유있다고 하셔서, 주지스님 중재로 버스를 타게 되었다.
버스가 정말 럭셔리했다. 여행 나와서 이 정도 레벨이 되는 버스는 처음 타는 듯 싶다. 원래 룸비니에서 쿠시나가르 가려면 LUMBINI > BHAIRAWA > SONAULI > (국경통과) > GORAKHPUR > KUSHINAGAR 이렇게 버스 4번을 타야되는데 그냥 한번에 갈 수 있었다. 국경에서는 버스에서 내려서 출입국 수속을 했다. 패키지로 오신 분들은 이것도 현지 가이드들이 대행해주었다.
 우리가 타고 온 하얀 버스, 국경 Sonauli, Nepal  이제 인도다! 요시코 상과 나는 출입국수속을 하고 인도쪽에서 다시 버스에 올랐다. 다시 출발. 중간에 정차해서 밥도 먹고 좋았다. 오랜만에 진짜 한국음식도 먹고. 태워주신 댓가(?)로 앞에 나가서 노래도 불렀다. 완전 한국 관광버스 느낌인데(..) 요시코 상도 일본노래 부르고. 둘이 같이 타서 그런지 서로 잘 해보라고 아주머니들이 난리셨는데 ... 아니 잘해보고 싶어도 8살 연상과는 좀 무리가 아닌가(..) 요시코 상이 어려보이긴 했다. 요시코 상은 일본 도쿄에 살고, 컴퓨터 회사에서 프로그래머 하다가 여행 나왔다고 하는데.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려고 한다더라. 작년 4월에 여행을 떠나 한국 들렀다가 동남아 가서 한 바퀴 돌고, 중국 여행을 하다가 티벳 쪽을 통해 네팔로 넘어와 이제 인도로 가는 거라고 했다. 인도 이후엔 파키스탄을 갈 생각이라고. 일본인들 정말 대단해.
어쨌든 석가모니 열반성지인 Mahaparinirvana Temple에서 열반성지랑 와불상을 보았다. 그 후에 버스를 타고 다시 이동해서 부처님 열반 후 화장을 한 화장터인 Ramabhar Stupa를 보았다.
 Mahaparinirvana Temple, Kushinagar  Mahaparinirvana Temple, Kushinagar  Ramabhar Stupa, Kushinagar  Ramabhar Stupa, Kushinagar 그리고 한국절 대한사로 왔다. 같이 오신 분들은 법당에 들렀다가 주지스님을 뵙고 바로 앞 Lotus Nikko Hotel로 가셨다. 절에는 스님 한 분과 일을 도와주시는 보살님 한 분, 그리고 절에서 일하는 인도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보살님의 음식솜씨가 무척 좋으셔서 정말로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대한사에 계시는 주지스님은 한국에서 6개월 파견나오셨다고 한다. 성격이 참 사나우셨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시원시원하게 잘 대해주셔서 좋았다.
저녁을 먹고는 바라나시행 교통편을 알아봤다. 이곳저곳 물어보다가, Lotus Nikko Hotel에 갔었는데, 아까 만난 패키지 여행하시는 분들의 인도인 가이드인 썬디쁘가 많이 도와줘서 거의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어쨌든, 오늘 힘든 여정이 될 줄 알았는데 너무 편하게 왔다. 여기 계신 한국 보살님께 여쭤보니 성지순례 패키지가 10일에 200만원 정도라고 하신다. 론리에 보니 Lotus Nikko Hotel 가격이 싱글룸 3600 Rs(약 75,024원), 더블룸 3960 Rs(약 82,526원) , 스위트룸 5500 Rs(약 114,620원)네. 엄청나게 비싸다. 참고로 교통비, 숙박비, 식비, 입장료 등등을 모두 포함한 내 인도 하루 예산이 우리 돈 10,000원 정도. 저 정도 가격이면 현지 사람들 한달 수입을 넘어간다.
이렇게 패키지로 나오면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정말로 편하게 '구경'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높은 버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구경하는 것이 마치 동물원에서 사파리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때까진 나도 동물원에서 사자와 호랑이와 어울려 버스를 타고, 물건을 사고, 밥을 먹었는데.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 되었더랬다.
어쨌든, 이렇게 바라나시까지 가는 법도 알아낸 후엔, 아침 일찍 나가기 위해 씻고 도미토리에서 잠을 청했다.
 우리가 타고온 버스  대한사, Kushinagar
2007. 1. 10 WED KUSHINAGAR > VARANASI
6시에 대한사에서 일하는 인도 친구가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6시반까지 30분을 기다려도 안 오길래 그냥 나왔다. 요시코 상이랑 걸어서 쿠시나가르 메인 게이트를 지나 삼거리에서 고락푸르행 버스를 탔다. 1시간 정도 걸린 듯 싶었다. 고락푸르에 도착해서 사이클 릭샤를 타고 가서 바라나시행 버스를 탔다.
그게 오전 8시였다. 바라나시의 버스정류장까지 도착하는 데엔 8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뭐 이젠 이 정도 걸리지 않으면 이동하는 것 같지도 않달까; 어쨌든 오후 4시쯤이 되어서 바라나시에 도착.
나는 론리를 열심히 뒤져 도미토리가 있는 숙소가 요기롯지(Yogi Lodge)와 비슈뉴 게스트하우스 두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는데, 요시코 상이 일단 요기롯지에 간다고 하길래 나도 같이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요 짱은 릭샤를 타고 간다고 했다. 론리를 읽어봐도 그렇고, 바라나시에서는 숙소 호객행위가 심해서 릭샤를 타고 숙소까지 가는 것은 별로 안 좋다고 한다. 왜냐하면 여행자를 데려다준 릭샤꾼이 커미션을 먹고, 그만큼 투숙객은 돈을 더 내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명한 게스트하우스일 경우 이름이 거의 똑같은 '짝퉁' 숙소도 있어, 여행자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 그런데 요 짱은 그냥 간다고.. 휴, 순진한 건지 아니면 돈 몇 푼 그냥 줘도 상관없다는 편한 마음인지 모르겠다.
여튼, 요 짱은 릭샤꾼을 따라 릭샤를 타고 갔다. 나는 릭샤를 타고 싶지 않아서 걸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멀더라(..) 어쨌든 고생고생해서 요기롯지 찾아서 들어갔더니 요시코 상은 없다. 결국 릭샤꾼 꼬임에 넘어가서 다른 곳으로 간 게 아닐까. 나는 여기에 도미토리가 있고, 가격이 싸서 왔는데. 시설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가격이 쌌다. 론리엔 도미토리 50 Rs라고 나왔는데, 가격이 올랐는지 55 Rs였다. 별 차이 없길래 그냥 머무르기로 하고 나가서 밥을 먹었다. 론리에 나온 Ganga Fuji Restaurant였다. 치킨 버터 마살라라는 것을 먹었는데 14 Rs인 줄 알았는데 140 Rs; 0이 지워진 것처럼 씌어있어서 착각했나보다; 밥 20 Rs, 콜라 15 Rs를 더하니 175 Rs ... 이게 말이 되는 가격인가. 55 Rs짜리 숙소에서 자는 사람이 이걸 먹어야 되나. 하루 예산의 1/3이 넘는다...
그럭저럭 맛은 있었지만 가격이 생각했던 것의 10배가 되니까 대략 난감했다. 다음부턴 주의해야지. 비싼 거 먹으라고 자꾸 유혹하던 가게 주인의 이미지도 매우 안 좋아져서, 다음부턴 그 가게에 절대 안 갔다.
다시 호텔에 일찌감치 돌아와서 론리 열심히 탐독. 요기롯지 도미토리는 특이하게 거실 비슷한 곳에 침대가 놓여있었다. 이웃 침대엔 프랑스 여자애가 하나 머물고 있었는데, 인도에서 서커스를 배우며 1년인가 2년 살았다고 한다. 바라나시엔 여행와서 3주정도 되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서로의 소개를 간단히 하고, 한국을 잘 모르는 것 같길래, 한국에서 준비해간 한국 사진이 실린 엽서를 보여주었다. 아름답다고 감탄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프랑스 좋아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론리플래닛을 보다 잠들었다. 프랑스 여자애에게 내가 바라나시의 첫 인상을 '시끄럽고 공기오염이 정말 심하다. 정신없다. 깨끗한 네팔에서 와서 더 그런 것 같다'고 했더니, 며칠만 지나면 적응되고, 바라나시의 매력에 빠져들 거라고 하더라. 나도 그런 각오와 그런 기대를 가지고 왔으니 좋아지겠지. 바라나시가 가장 인도다운 도시라고 하던데, 어째서 그런지 알고 싶었다.
자, 이제 인도다. 이제 바라나시다. 4대 문명 발상지 중 한곳인 강가(갠지스)를 끼고 있는 '역사보다 오래된 도시'. 이곳에서 죽어 화장하면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는 '신성한 도시'. 이곳이 바로 바라나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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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1. 5 FRI POKHARA
오전에 일어나 소비타네에 가서 Vegetable Thentuk을 먹었다. 덴뚝은 티벳음식인데, 수제비랑 비슷하다. 티벳에서 먹은 티벳음식들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에 티벳음식은 안 먹으려고 했는데, 소비타네 아주머니가 '수제비'라고 하시길래 그냥 먹었다. 그런데 역시 소비타네선 뭘 먹어도 맛있다 :)
먹고 바로 사랑곳(Sarangkot)으로 향했다. Phewa 호수를 지나서 헤메다가 좀 긴 루트를 겨우 찾았다. 먼 길이라 그런지 관광객들이 그리 많지 않은 길인 듯 했다. (가까운 길은 내려오면서 발견했는데, SADHANA YOGA 표지판 따라 올라가면 됨)
 Phewa Tal, Pokhara  Phewa Tal, Pokhara 중간에 나무하러 모인 마을사람들을 만나서 나뭇가지를 타고 놀면서 사진도 찍었다. 외국인을 보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나랑 닮았다고 마을사람들이 좋아하던 네팔 친구랑 사진도 찍었다.
 사랑곳 가는 길, Pokhara  사랑곳 가는 길, Pokhara 1시간쯤 올라갔을 때 네팔 청년 몇을 만났는데, 하나는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어하고, 다른 하나는 이미 한국에 갔다 왔다고 했다. 한국 농촌에서 일했다는데, 돈을 모아오지는 못하고 다시 네팔에 돌아와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이 친구는 카타르에서 삼성의 Safe Guard로 일했다는데, 자기는 한달에 USD 200 정도를 받았고, 자기 직속 보스는 USD 2000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아무리 네팔인이라지만 인건비가 너무 적은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포카라에서 한국 농촌에 가고 싶다는 사람, 곧 가는 사람, 갔다온 사람 등등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있는 많은 네팔인들을 볼 수 있었다. 네팔에 있으면 한달에 보통 우리 돈으로 5~6만원 정도밖에 벌지 못하지만, 한국 농촌에 오면 한달에 8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2년 계약으로 오는데, 커미션이 거의 800만원에 달해서, 일년 동안 번 것은 고스란히 커미션으로 줘야 한다고. 하지만 1년 정도 추가해서 총 3년 일해서 돌아오면, 네팔에서 작은 가게 등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목돈을 쥘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 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 한국인 여행자들과 어떻게든 커넥션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던 네팔인들을 보면서, '돈 벌러' 일본에 가고자 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랬을까.
어쨌든, 네팔 친구들과 한참 놀다가 헤어져서 다시 한 시간쯤 올라가니 사랑곳이 나왔다. 올라가면서 네팔 애들이랑 놀면서 올라갔다. 네팔은 금요일이 half day(반나절 휴일)고, 토요일이 휴일, 일요일은 평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이 금요일이라 학교에서 일찍 끝나서 집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사랑곳에 사는 애들도 있어서 손 잡고, 사진찍고 놀면서 같이 올라갔다. 개중에서는 호텔집 아이들도 있었다.
 사랑곳 가는 길, Pokhara  사랑곳 가는 길, Pokhara  사랑곳 가는 길, Pokhara 사랑곳에 올라가니 정말 마차푸차레(Machhapuchhare, 6997 m), 안나푸르나(Annapurna) I, II, III, IV, Second Annapurna 등이 한눈에 보였다. 오면서 네팔 사람들이 "You're lucky!"라고 하던데, 오늘이 구름과 안개가 걷혀 산이 잘 보이는 날이란다.
마차푸차레는 네팔 사람들이 '신이 사는 산'이라고 믿어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입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도 올라본 적이 없는 산. 그 산을 직접 마주해보니 네팔인들이 왜 마차푸차레를 '신이 사는 산'으로 믿었는지 알 것 같았다. 별명은 Fishtail. 정말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생겼다.
 Machhapuchhare(6997 m)  Annapurna  Annapurna  Machhapuchhare and Annapurnas  Machhapuchhare(6997 m) 한참을 보다가 산을 내려왔다. 내려올 때는 가까운 길로 내려왔는데, 이쪽은 계단만 계속 있어서 심심하고 더 힘들었다.
 사랑곳에서 내려오는 길, Pokhara 겨우 다 내려와서 Lakeside로 왔는데, 라싸에서부터 만난 안경사분을 만났다. 우리랑 랜드크루저 같이 타기로 했다가 도망간 이탈리아인 크리스타앙도 포카라에 있다고 한다. 같이 랜드크루저 타고 온 것 같다던데. 참, 녀석도 끈질기구만. 하긴, 여기서는 루트가 비슷하니 만날 수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를 잘도 피해다니는 것 같다.
여튼, 그 분은 같이 온 일행하고 내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을 떠나실 거라고 했다. 준비하러 가신다고 해서, 헤어지고 우리는 소비타네 가서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오후 5시가 넘었는데, 아침 먹고 사랑곳 올라갔다와서 처음으로 밥을 먹는 거라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밥 먹고 호텔 돌아와서 씻고, 빨래 좀 하고 책 좀 읽다가 9시쯤 나가서 여러 German Bakery 중 한 곳에서 초코 케이크랑 초코렛 브라우니를 간식으로 먹고 들어와 책을 읽었다.
그런데 빵집에서 어떤 소년이 다가와서 뭔가 했더니 자기도 빵을 사달라는 거였다. 그런데 이 녀석, 빌려준 돈을 받으러 온 사람처럼 완전 건방진 태도. 어이가 없었다. 관광객 중에 그런 녀석에게 빵을 사주는 사람도 있을까. 어려서부터 그런 태도에 익숙해져서, 그리고 그런 정신상태로 네팔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내가 주제넘은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 무엇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2007. 1. 6 SAT POKHARA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소비타네 가서 아침을 먹었다. 오므라이스도 한국과 똑같진 않지만 맛있었다. 맛은 똑같은데 계란으로 밥이 싸여있지 않고 계란이 그냥 밥 위에 덮여있다. 어쨌든 밥 먹고 Phewa Tal에서 1시간 보트를 탔다. 호수 중간에 있는 섬의 힌두 사원에도 들렀다.
 Phewa Tal, Pokhara  Phewa Tal에 떠있는 섬의 힌두사원, Pokhara  Phewa Tal에 떠있는 섬의 힌두사원, Pokhara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정사장님께 빌린 인도 여행기 책을 읽었다. 다 읽을 무렵 서명누님이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나가서 숙소 앞 Napolis에서 피자를 먹었다. 피자를 먹고, 서명누님은 쇼핑도 좀 하시고, Money Changer 가서 돈도 좀 바꾸고, 이제 서명누님이랑 내일 헤어지기 때문에, 서명누님 론리플래닛 네팔편 복사도 했다. 나는 50달러짜리 지폐를 30달러만 네팔루피로 환전하고, 20달러는 돌려받았는데, 이런 것도 가능한지 처음 알았다.
어쨌든 서명누님은 쇼핑 더 하러 가시고, 나는 호텔 돌아와 좀 놀다가 PC방에 가서 비행기 티켓을 알아봤는데 가격이 참 난감하게 비싸더라. 이러다 집에 못 가는 거 아닌지...
저녁 때가 되어서 PC방에서 서명누님을 다시 만났다. 서명누님은 이제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카트만두로 돌아가시는데, Chitwan에서 같이 다닌 Rajani 부부를 만나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 전화를 걸러 PC방에 들리셨다. 어쨌든 우리는 소비타네 가서 마지막 꽁치 김치찌개를 먹었다.
그 후, 여행사 몇 군데에 들러 카트만두에서 방콕 경유 인천행 비행기를 알아봤는데 휴일(금요일 half day, 토요일 휴일. 일요일 평일)이고 시간이 늦어 컴퓨터로 가격체크가 안 된다. 큰 여행사 한 곳에 갔더니, 가격체크는 안 되고 대략 편도 400 USD 한다고 하더라. TAX 포함하면 약 50만원. 이 정도면 뭐 돌아갈 수 있겠지. 일단 인도에 들어가서 다시 알아봐야겠다.
여행사에서 나와서 소비타네 근처 German Bakery에서 핫초코를 먹고 돌아왔다. 내일은 각자의 길을 가겠구나. 서명누님은 카트만두 돌아가서 1월 8일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신다. 그동안 즐거운 여행이었다. 앞으로도 좋은 만남이 있으면 좋겠다.
2007. 1. 7 SUN POKHARA > LUMBINI
아침에 일어나 정사장님 짐은 호텔에 맡기고 8시쯤 체크아웃했다. 우리는 소비타네 가서 서명누님은 전기담요, 나는 깔깔이를 소비타네 아줌마께 드렸다. 우리는 이제 필요 없는 물건이니까 잘 쓰시면 좋겠다고 덧붙이면서. 아주머니께서 고마워하며 받아주셔서 마음이 좋았다.
서명누님은 아침으로 김치 덴뚝(Thentuk, 수제비랑 비슷), 나는 오므라이스를 시켰는데, 먼저 주문한 다른 분들이 많아서 1시간쯤 걸렸다. 맛있게 아침을 먹고, 또 보자며 작별인사를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Local Bus Station으로 갔다.
서명누님은 카트만두행 버스를 타시고, 나는 소나울리행 버스를 탔다. 버스정류장에서 우리는 간단히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제 다시 홀로 여행이다. 길 위에서는 늘상 만나고 헤어짐이 있다. 만남과 이별에 익숙해지는 수밖엔 없다.
10시25분쯤 버스를 타고 출발했는데, 인도와의 국경인 소나울리에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는 BHAIRAWA에 오후 5시40분쯤 도착했다. 근처에서 룸비니 가는 로컬버스를 찾아서 탔는데, 6시쯤에 출발해서 7시쯤에 룸비니 도착. 론리플래닛엔 가격이 25 NRs라고 나왔는데, 30 NRs더라. 뭐, 그래도 싸긴 싸다. (1 USD = 약 70 NRs)
룸비니에 내려서 한국 절을 찾으려고 한참을 헤메었다. 절은 마을에 있는 것이 아니라, World Heritage로 지정된 구역 내에 있었다. 각국의 절들이 모여있었는데, 어두워서 정말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베트남 절에 살고있는 베트남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 한국 절(대성 석가사)을 찾아왔다. 사무실에서 방을 배정받고 들어갔더니 룸메이트가 일본인 친구였다. 이 친구도 장기여행하는 친구. 인도에 갔다가 네팔로 '도망'왔다고 했다.
배가 고팠는데, 이미 공양시간이 끝나 밥이 없어서 미숫가루를 먹고 씻었다. 내일은 룸비니 구경하고 모레는 인도로 간다.
처음엔 룸비니에 들릴 생각이 없었는데,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니까 석가모니의 탄생지를 한번 보고 지나가자며 들렀다. 여행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인지, 룸비니에서의 좋은 기억이 결국 불교 8대성지 중 주요 4대성지인 룸비니(석가모니 출생), 쿠시나가르(석가모니 열반), 사르나트(첫 설법), 보드가야(깨달음)를 들리게 하는 인연으로 이어질 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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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1. 2 TUE POKHARA
오전에 느지막히 일어나서 적당한 식당에서 Continental Breakfast를 먹었다. 계란, 감자, 구운 토마토, 빵, 차 또는 커피. 그리고 자전거를 빌려서 큰 마트에 쇼핑하러 갔다. 하루에 60 NRs로 빌렸으니까, 1 USD가 조금 안 된다. 정말 이것에 비하면 숙박비는 싼 편. 카트만두도 그렇고, 포카라도 그렇고, 여행자들이 갈 만한 숙소가 정말 많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서인지 가격수준이 낮은 것 같다. 비슷한 물가수준인 인도랑 비교를 해보면 확실히 그렇다.
어쨌든, 카트만두에는 큰 마트가 있다. 이곳에는 영국군에서 퇴역한 네팔 용병들이 많이 모여 살기 때문에 그 정도의 구매력이 존재하는 것 같더라. 물론, 서울 생각하면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네팔에선 놀라울 정도로 잘 갖추어진 상점이다. 비누랑 휴지, 그리고 1L짜리 생수 한 박스(12병)를 사서 자전거에 싣고 돌아왔다. 당분간 생필품 걱정은 거의 없을 듯.
조금 있다가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한국식당을 겸하는 소비타네에 갔다. 네팔 아주머니가 한국요리를 배워서 하는 것 같았다. 제육덮밥이랑 꽁치 김치찌개, 신라면을 시켰는데 맛이 상당히 괜찮았다. 한국에 안 가보고도 이 정도 맛이 나다니, 대단했다.
 출처: sobitane.cyworld.com  사랑하는 소비타네, Pokhara
 소비타네 아주머니(출처: sobitane.cyworld.com)  꽁치김치찌개@소비타네 소비타네가 좋은 이유는 정말 많다. 우선, 한국음식을 비교적 제대로 만들고(심지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서울 뚝배기집'보다 훨씬 맛있다), 소비타네 아주머니가 정말 좋고, 포카라에 있는 한국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난 아주머니의 성실함과 배우려는 태도가 좋았다. 예를 들어, 전날 '홍금보네'에 갔을 때, 한국인으로서 외국인이 만든 한국음식, 그리고 식기 및 기타 세팅 등을 보면 말해주고 싶은 개선점들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홍금보 아저씨(홍금보를 닮았다;)는 '한국음식엔 젓가락을 주어야 한다', '밥은 접시(plate)가 아니라 bowl에 내어야 한다'등의 지적을 해주어도 듣는 둥 마는 둥. 이래서는 뭐 식당이 잘 될 수가 없지.
소비타네 가서 놀랐던 것이, 일단 모든 것이 너무나도 한국식에 맞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소비타네서는 Continental Breakfast를 먹어도 포크 대신 젓가락이 나온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개선점을 말해주었을 때 아주머니가 정말 열심히 귀담아 들으면서 어떻게 개선할지 생각하신다. 지금의 정말 맛있는 한국음식도, 지난 몇 년간 한국인들이 계속해서 개선점을 알려준 것을 반영해서 차근차근 향상시킨 것이라고 한다. 올해 들어서 이 정도로 훌륭한 맛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국 아주머니 중에도 소비타네 아주머니만큼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으리라. 게다가 한국에 한번도 가보지 않고 그렇게 훌륭한 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정말 놀라웠다. 현재 남편은 중동 어딘가로 돈 벌러 가셨다고 하던데, 소비타네 아주머니도 이대로 간다면 상당한 돈을 모으지 않을까. 성격도 정말 밝고, 따뜻하고, 유쾌하시다. 나도 이런 여자분을 아내로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소비타네 아저씨, 참 복 받으셨다:)
점심을 먹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자전거를 가지고 나가 내일 렌트비를 미리 지불했다. 정사장님은 빨래할 대야를 사러 나가신다고 했고, 나는 포카라의 북쪽지역인 Old Pokhara에 가보고 싶어서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일단 시장도 있고, 마을도 있는 Old Pokhara까지 가긴 했는데, 어두워져서 조금 곤란해졌다. 가로등도 없고,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니까 모닥불이나 촛불 같은 것을 켜놓았다. 그래도 Lakeside는 여행자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라 전기로 불을 켜지만, 이쪽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에 헤드랜턴 달고 자전거를 탔다. 포카라 북쪽 끝까지 종주하고 돌아왔다.
호텔에 돌아와서는 호텔집 애들이랑 공놀이 하면서 조금 놀아줬다. 둘다 영어는 곧잘 하는데다, 작은 녀석은 케이블 TV의 힌디어 만화영화를 많이 봐서, 힌디어까지 할 줄 안다더라. TV를 보니까 무려 아리랑TV도 나오네(..) 와.. 나중에 차차 알게 되는 것이지만, 이 집 정말 잘 사는 집인 듯. 자동차는 현대 아토즈(현지 이름은 달랐는데, 뭐였더라)를 가지고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돈 3천만원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참 비싸다, 이 사람들 부자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2007. 1. 3 WED POKHARA
오전에 일어나서 소비타네서 Continental Breakfast를 먹었다. 소비타네 있던 한국인 네 분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Annapurna Base Camp)까지 트레킹을 가신다고 해서, 정사장님이 그쪽 분들이랑 같이 트레킹을 가시기로 했다. 정사장님, 포카라 오니까 트레킹이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시더니만, 결국(..)
내일 떠나신다고 했기 때문에, 안나푸르나 입산 허가증(여기도 Permit)하고 포터 알아보시러 그쪽 일행과 남고, 나랑 서명누님은 계획대로 Mahendra Gufa(Cave)랑 Bat Cave를 보러 포카라 북쪽으로 향했다. 론리 플래닛에 보면 Lakeside에서 6 km 거리라고 나와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서명누님이 계속 힘들어 하셔서 엄청 천천히 갔다. 거의 다 왔을 때쯤 서명누님은 결국 버스를 타고 가셨음. 무려 2시간 정도나 걸린 듯.
Mahendra Gufa 도착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들어갔는데 별 게 없었다(..) 가격은 10 NRs라 싸서 좋았지만, 자꾸 가이드 해주겠다고 달라 붙어서 귀찮았다.
 Mahendra Gufa Mahendra Gufa는 힌두교의 성지 중 하나인 것 같았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쪽은 인도인들이나 네팔인들이 주로 찾는다고 론리에 나와있었는데, 정말 이쪽 사람들만 많았다.
이것을 다 보고 Bat Cave로 이동. 약 3~400 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가는 길에 오프로드를 달리며 나무 하는 마을 사람들도 만나고 재미있었다.
 Mahendra Gufa에서 Bat Cave로 가는 길 어쨌든, Bat Cave에 갔더니 동굴이 길고 복잡하다면서 자꾸 가이드 해주겠다고 달라붙길래 거절하고 들어갔다. 서양애들이 출구에서 힘겹게 기어나오는 것을 보고, 입구로 향했다. 들어가니 천장에 박쥐가 엄청나게 많이 붙어 있었다.
 Bat Cave 사진 좀 찍고, 출구를 찾았는데, 완전 암벽등반(..) 떨어지면 죽는다는 일념(..)으로 돌에 달라붙어 겨우겨우 탈출했다. 완전 exciting했다! 포카라에 왔다면 한번쯤 가볼만 한 듯.
돌아올때는 난 자전거, 서명누님은 버스를 탔다. 난 호텔까지 50분 걸렸는데, 서명누님은 1시간 이상 걸리셨다; 한번 버스 갈아타고 오셨다고 하던데(..) 사실 동굴 쪽으로 갈 때는 살짝 오르막이었기 때문에, 올 때는 약간 내리막인 경향이 있어서 쉽고 편하고 빠르게 올 수 있었다.
호텔에 있다가 내일 트레킹 준비를 마치고 오신 정사장님을 만나서 간단히 피자를 먹고 저녁 때 환송회식을 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서울 뚝배기집에 가서 삼겹살, 된장찌개를 먹었는데, 비싼데 맛이 별로 없다. 네팔인 종업원들의 서비스도 별로고. 차라리 소비타네가 낫지. 라싸의 아리랑도 그리웠고.
밥을 먹고 나서는 소비타네 건너편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치즈 케이크를 먹다가 라싸 야크호텔 룸메이트였던 카이상 일행을 다시 만났다. 카트만두에서 만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친구들은 카트만두에서 왔는데, 이제 Chitwan National Park도 다녀올 거라고 하더라.
이제 내일이면 정사장님과도 바이바이.
2007. 1. 4 THU POKHARA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정사장님이랑 같이 나가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정사장님은 간단히 빵을 드시고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있는 Angel Hotel로 트레킹 일행을 만나러 먼저 가셨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라싸 도착해서 같은 도미토리에서 만난 후 거의 한달 가까이 되었다. 여행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이렇게 일상적인 일이 된다. 포카라를 떠날 때 나는 다시 혼자가 될 것이다.
나와 서명누님은 아침을 해결하고, 잠시 호텔에 들렀다가 Devi's Fall로 향했다. Dam Side를 지나 길을 따라가니 Devi's Fall이 나왔다. Phewa Tal(페와 호)의 물이 땅 속으로 사라지는 곳이다. 지반이 석회암인지, 물이 지반을 깎아서 아래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름 몬순 때는 수량이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겨울이라 그런지 그다지 물이 많지는 않았다.
 Devi's Fall, Pokhara  Devi's Fall, Pokhara 그러다가 소원 비는 우물에 사람들이 동전 던지는 것을 구경하다가 나와서 World Peace Pagoda에 올랐다. 나는 중간에 매표소가 있는 줄 알고, 무료로 들어가려다(..) 야산을 헤메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겨우 길을 찾아 올라갔는데, 알고보니 이곳은 티켓팅이 없는 곳이었다(..) 다음부턴 그냥 돈 내고 들어가야지; 정사장님 덕에 무료입장이 습관이 된 듯(..)
어쨌든, 서명누님과는 World Peace Pagoda에서 다시 만났다. 그 위에선 안나푸르나와 '신이 사는 산' 마차푸차레가 정말 멋지게 보였고, Phewa Tal과 포카라의 경치도 멋있었다.
 World Peace Pagoda 올라가는 길  World Peace Pagoda, Pokhara  World Peace Pagoda, Pokhara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초경량항공기(?) at World Peace Pagoda, Pokhara  Machhapuchhare(6997 m), Pokhara  안나푸르나, 페와 호, 포카라 at World Peace Pagoda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길 산에서 Damside로 내려와 Lakeside의 우리 호텔 나이팅게일로 돌아왔다. 간단히 씻고 소비타네 가서 꽁치 김치찌개를 먹었다. 그 후엔 티셔츠도 하나 사고. 오후 늦게는 샤워하고 빨래를 잔뜩 했다. 저녁 때는 스파게티를 먹었다.
슬슬 인도 루트를 좀더 연구해야 할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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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12. 30 SAT KATHMANDU > CHITWAN NATIONAL PARK
아침에 일찍 나와 Chitwan행 버스를 탔다. 여기부터 패키지에 포함된 것. 그냥 시외버스 비슷한 거였는데, 사람들이 비좁은 자리에 잘 끼어서 탔다. 우리 앞에 끼어서 앉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있었는데, Chitwan 쪽에 사는데 카트만두에 있는 기숙학교(Boarding School)로 유학왔다고 했다. 교과서들을 살펴보니 모두 영어(..) 우와, 놀랐다. 지금은 방학을 맞아서 집에 가는 중이라고.
지도엔 고속도로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산을 타고 가는 국도 같은 느낌이 나는 도로를 따라 열심히 달렸다. 중간에 아침을 먹기 위해 나름 휴게소에서도 한번 서고. 5시간쯤 걸려서 Chitwan에 도착. 우리는 마을이 있는 곳에서 한참 들어가서, 정글 근처 마을에 있는 종점에 멈춰섰다. 우리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는 Hotel Hermitage에서 마중나온 사람을 찾아서 지프를 타고 호텔로 갔다. 이 가격에 이런 호텔이라니, 하면서 놀랄 정도였다.
 Hotel Hermitage, Chitwan 점심 먹고 쉬다가 Elephant Breeding Center에 코끼리를 보러 갔다왔다. 코끼리를 키워서 다른 국립공원에도 보내고, 밀렵을 감시할 때도 타고 나닌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곳 약자가 EBC. Everest Base Camp와 약자가 같아서 반가웠다.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코끼리 밥 주는 것도 구경하고, 코끼리를 만져보기도 했다. 우리 가이드인 네팔인 산타와 농담따먹기도 하면서. 상당히 유쾌하고 박식한 사람이었다.
 Elephant Breeding Center  Elephant Breeding Center  Elephant Breeding Center Elephant Breeding Center에 다녀와서 정원에서 인도사람들이랑 놀았다. 휴가철에 인도에서 많이 온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런 느낌? 아저씨는 카타르 도하에서 일하고, 아줌마랑 딸, 아들은 캐나다에 산다고 한다. 아줌마는 의사 자격도 있다고. 친지들은 뭄바이(봄베이)에 있다고 했다. 꽤 잘 사는 집인 듯.
Chitwan National Park가 원래 관광지로 잘 나갔었는데, 기억나지 않은 이유 때문에(홍수였나 아님 정치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나 했었던 듯) 갑자기 관광객이 급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격을 대폭 낮추었다고. 그래도 우리가 온 이번 패키지가 USD 55였다. 물론, 우리가 보기에 이 가격 대비해서 시설과 프로그램 모두 엄청 훌륭했다. 하지만, 보통 네팔인들이 한달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 이 정도니까, 이곳에 2박3일, 혹은 3박4일로 놀러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쪽 동네에선 상당히 부유한 축에 드는 사람들이 아닐까. 이곳에서 네팔인 커플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카트만두에 사는 꽤 인텔리 축에 속하는 이들인 것 같더라.
 강 건너 Elephant Breeding Center에 다녀오며 어쨌든, 인도 가족들에게 쿠키 얻어먹고, 차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 방으로 돌아와서 휴식. 저녁 때 Tharu Dancing이라고, 이쪽 지방 전통춤 공연을 보러갔다.
무슨 학예회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재미있었음.
여기 갔다와서 치킨 카레 등등의 치킨 요리만 세 가지 시켜놓고 밥을 먹었다. 그런데 저녁 되니까 물이 잘 안 나오네(..) 역시 뭔가 오지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2006. 12. 31 SUN CHITWAN NATIONAL PARK
오늘은 새벽같이 일어나 코끼리를 타러 갔다. 코끼리가 호텔까지 픽업하러 와서(..) 한 마리 당 네 명씩 타고 정글로 들어갔다. 코끼리를 타는 게 처음엔 무서웠는데, 곧 적응되었다.
정글에선 사슴 2~3종류를 각각 한번씩 보았고, 코뿔소도 5마리 가량 볼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코뿔소들은 코를 박고 잠에 빠져 있었다(..) 코뿔소를 보는 것은 전적으로 운에 달렸다고 하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한 마리도 못 보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
 사슴, Chitwan National Park  자고 있는 코뿔소, Chitwan National Park  자고 있는 코뿔소, Chitwan National Park
약 두 시간 가량 코끼리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아침 먹고 조금 쉬다가 이번에는 카누를 타러 갔다. Bird Watching 프로그램, 그 후에 Jungle Walk 등이 이어진다.
 Bird Watching on a Canoe 카누를 타며 여러 새를 봤다. Rudy Shellduck 등. 산타가 새 이름을 많이 알려줬는데, 물론 기억하기는 힘들다(..) 이 사람, Bird Watching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책도 많이 보았고, 새로운 종을 발견하기도 했다더라.
 악어(Marsh Mugger) 카누를 타고 하류로 내려가면서 악어도 두 마리 봤다. Marsh Mugger라는 종을 비롯해 다른 종류 한 마리 더 봤다.
하류에서 내려서 Jungle Walk를 했다. 곰 흔적, 코뿔소 흔적, 호랑이 발자국 등과 원숭이를 봤다. 그 외엔 동물들을 별로 못 봤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지나가면 도망가지 않을까 싶다. 정말 야생동물을 보려면 오랫동안 정글 안에 있는 Cabin 같은 데서 머물러야 한다더라.
 Jungle Walk, Chitwan National Park  Jungle Walk, Chitwan National Park  호랑이 발자국, Chitwan National Park  Chitwan National Park  가이드 산타, 정사장님, 로자나 씨 남편 in Chitwan National Park 그 후, 호텔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씻은 다음 휴식. 사람들이랑 체스도 여러 번 두었다. 여기 사람들 체스를 기본적으로 다 잘 두는 건지, 내가 못 두는 건지 모르겠다. 대부분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았다.
사람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밥을 먹었다. 서명누님은 무슨 로컬 페스티벌 간 듯 해서 정사장님이랑 둘이 저녁식사를 하고, 우리랑 같이 도착해 함께 투어를 한 네팔인 로자나 씨의 남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네팔의 정치상황, 사회, 경제 등 여러가지에 대해 네팔인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부패 때문에 왕을 쫓아낸 것이 2006년 초. 마오이스트(Maoist) 등등 여러 정치세력들이 세력다툼을 하고 있어 정치가 안정되지 못했다. 그래서 각종 파업도 심하다.
교육의 경우, 확실히 카트만두나 포카라 등 도시를 중심으로는 네팔어를 제외한 전체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등 수준이 높지만, 시골 지역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이 분은 네팔에 들어와있는 일본계 IT기업에서 일하는데, 인도의 IT산업과 마찬가지로, 저렴한 인건비를 이용해 미국 등지에서 SW 아웃소싱 등을 받아서 일하는 것 같았다. 네팔이 앞으로 더 잘 살기를 바란다. 정치만 좀 안정 되면 정말 좋을텐데.
2006년의 마지막 날. 한국에 있었으면 새해를 어떻게 맞았을까.
어쨌든, Happy New Year :)
2007. 1. 1 MON CHITWAN NATIONAL PARK > POKHARA
오늘은 포카라 가는 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싸서 지프에 싣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카트만두로 돌아가는 로잔(조카)과 로자나, 로자나의 남편과 작별인사를 하고 포카라행 버스에 탔다.
 Chitwan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번 서고, 계속 가다가 포카라 다 왔을 때쯤 버스가 멈췄다. 무슨 스트라이크가 있어서 길이 막혔단다. 정세를 보아하니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아 걸어가기로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  파업으로 멈춰 선 차량들 포카라 쪽에서 걸어온 사람한테 물어보니 길을 막아놓은 곳에서부터 20분 정도 걸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늘어선 차들을 옆에 두고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걸었다. 나는 힘들었지만 걸을만 했는데, 정사장님과 서명누님은 꽤 힘들어 하셨던 것 같다.
20분 정도 걸어가니 포카라로 들어가는 다리가 나왔다. 건너가니 그쪽에도 차들이 서있었다. 여행자 버스(Tourist Bus)에 현지인들을 태우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스트라이크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자세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다리를 기준으로 포카라로 들어오는 길과 포카라에서 나가는 길에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계속 걸어서 여행자들이 모이는 Lakeside까지 가려고 했는데, 정사장님이랑 서명누님이 걷는 것을 너무 힘들어 하셔서 결국 택시를 타게 되었다. 처음엔 론리에 나온 나노하나(일본어로 유채꽃인 듯?) 호텔에 갔는데 방이 400 NRs(약 5440원) 나 해서 다른 곳을 찾아보니 Hotel Nightingale이 250 NRs(약 3400원)에 트리플이 있어 이쪽에 짐을 풀었다. (1 USD = 70 NRs)
사실,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큰 돈이 아닌 것 같지만, 항상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면 그 나라 물가수준에 금방금방 적응해야 한다. 내 경우, 네팔 예산을 1만원(약 735 NRs)으로 잡았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모든 생활비를 결정해야 한다.
이때, 내가 쓰는 방법은, 현지 가격을 적절히 한국 물가기준으로 얼마 정도인가 환산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네팔에서 내 하루 예산이 735 NRs였으므로, 여기에 0을 두 개 붙여 한국 원화로 생각하면, 대강 현지 가격이 현지에서 얼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감이 온다.
예를 들어보면, 한국에서 하루 생활비로 대강 73500원을 쓴다면 (조금 풍족한 편이겠지만) 그럭저럭 살 수 있다. 한편, 네팔에서는 735 NRs로 그럭저럭 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네팔에서 400 NRs라면, 한국에서 약 40000원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 경우는 숙박비)으로 생각하면 감이 온다. 250 NRs라면, 25000원의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 따라서 실제 환율상 400 NRs(약 5440원)와 250 NRs(약 3400원)는 2040원 차이지만, 현지 물가에서는 400 NRs - 250 NRs = 150 NRs이므로 가치로는 15000원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정도 가치 차이라면 밥 세 끼(5000원 x 3) 정도의 차이다(실제로 저렴한 식사의 경우 60 NRs 정도). 한국돈으로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없이 지출하다가는 예산에서 금방 구멍이 나버린다. 예산을 맞출 수 있는지의 여부는 현지물가에 어느 정도로 빠르게 적응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어쨌든, 짐을 풀고 나왔다. 포카라는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있는 네팔 제 2의 도시로, 휴양지로 유명하다. 포카라엔 Phewa Tal(페와 호수)이라는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를 끼고 휴양지가 조성되어 있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이 주변에 머물고 있고, 근처에 옛 국왕의 별장도 있다.
포카라는 영국군 출신의 퇴역한 네팔 용병들이 집단적으로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영국군은 네팔에서 용병을 많이 뽑는데, 포카라에서 매년 300명 정도의 규모로 선발한다고 한다. 네팔 성인노동자가 한달을 일하면 보통 우리 돈 5~6만원 정도의 수입을 얻는다. 하지만, 영국군에 뽑히면 숙식을 제공받고도 한달에 200만원 가량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많은 경우에 위험한 전장으로 투입되어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복무하는 동안은 네팔 기준으로는 엄청난 돈을 가족들에게 송금할 수 있다. 또한, 약 20년 가까이 되는 복무 기간을 마치고는 영국 영주권을 얻어 사는 경우도 있지만, 돈을 가지고 포카라에 집을 지어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로 예쁜 2층 양옥집을 지어 살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Lakeside 길을 좀 탐색하고, '홍금보네'라는 음식점 가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네팔 아저씨가 주인인데 티벳, 중국, 네팔 요리가 메인이고, 한국요리는 여행자한테 배웠다고 한다. 꽤 어설프고, 식당이 2% 부족해서 다음부터는 안 갈 듯 싶다.
후에 발견한 것이지만, 포카라 최고의 한국식당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서울 뚝배기집'이 아니라, 네팔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소비타네'(딸 이름이 소비타)였다. 아줌마 김치찌개 정말 맛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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