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메일의 채팅 기능 덕에 우연히 G메일에 같이 접속해있던 서군과 채팅을 할 수 있었다. 녀석, 네팔에서 루즈해져서 얼른 인도로 들어갔단다. 우기가 오기 전에 가장 더운 시기인 지금, 바라나시에서 반팔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닐 녀석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나는 예전 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 되었고, 더욱 행복해져서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지금 생활도 그럭저럭 즐기고는 있지만, 어쩐지 조금 지쳐있었달까. 벌써부터 겨울의 여행계획을 세우며, 내가 무엇을 해왔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넓게 살자. 세계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열정있는 인간이 될 거야. 내 인생의 테마는 도전이다. 안정도, 평범함도, 여유도 좋지만 나는 긍지를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갈테다. 정년이 보장된 고소득의 안정된 생활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는, 그 이상의 인간이 될 거다.
이 '전쟁터'에서 '사법연수원장상'을 받고 전체 4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지만 '노동단체 입사'라는 '가시밭길'을 선택한 여성 변호사가 있어 화제다.
졸업 순위 50등 안에만 들어도 최상위권으로 분류돼 사회적 명성이 보장되는 법원·검찰이나 고액 연봉의 대형로펌을 '골라 갈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극히 이례적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1월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민주노총 법률원에 갓 입사한 '새내기 노동자' 여연심 변호사(29·연수원36기).
(후략)
뭐,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 말은 정말 공감.
"한번은 어느날 낮에 농성을 벌이다 체포된 KTX 비정규직 승무원들을 경찰서에서 접견하고 그날 저녁 한 대형 로펌 관계자와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던 일이 가슴에 아프게 남아있어요"
좋은 레스토랑과 럭셔리한 카페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겨우 한두시간에 소비해버리는 그 돈으로 인도나 네팔 같은 곳에서는 한 가족이 한달을 먹고 살 수 있다. 그런 세상을 직접 겪어보니 가끔 좋은 음식을 먹을 때 마음이 짠 하다. 그냥, 그런 세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이야기를 꺼내봐야 득될 것이 없어서 입은 닫고 있지만.
나중에 직업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작은 돈이나마 꾸준히 기부하고 싶다. 아프리카에 사는 한 아이를 정해 매달 2만원씩 후원하는 프로그램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학문과 비즈니스는 개인에게 있어서 전혀 다른 세계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일을 해내지 않으면 많은 일을 한다고 해도 별로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이미 알려진 문제를 백만 번 다시 푼다고 해도 쓸모 없는 일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이미 알려진 문제를 백만 번 다시 푸는 것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다. 비즈니스는 원천기술 1등이 항상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처럼 생산기술에서 최고인 기업이 성공하는 일이 많다. 역시, 학문의 세계 쪽에서 사람들이 좀더 극한에 도전한다고 할까.
그러나 개인의 입장에선 어떨까? 아카데미아에선 知의 영역을 넓혀가지 못하면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것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상당한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별로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 참 슬프달까. 이런 경향은 새로운 결과를 도출해내기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기초학문으로 갈 수록 심하다.
Years later, when I moved to Wall Street, I especially like the ways in which one could be usefully busy in quantitative finance. There was always a program to write, a trading interface to design, a calculation to do. It was nice to be able to contribute without having to be extraordinary.
- Emanuel Derman, <My Life as a Quant> p.31
내가 경험한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물리학에서는 최고가 아니면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Derman의 말처럼, 비즈니스의 세계에선 특별한 인간이 아니어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좋았다. 내 능력으로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하지만, 요즘도 여전히 수많은 천재들이 평생에 걸쳐 이루어낸 업적들을 공부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 어쨌든 즐기자.
의대에 가고 싶어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데, 점점 그들과 나의 차이를 알 수 없게 되는 것 같아 두려워진다. 그런 것은 견딜 수가 없는데 말이야.
무엇을 하든 그 나름대로의 힘든 일과 어려운 점이 있다. 다른 분야가 장밋빛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 그렇지 않은 걸. 지금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면, 다른 분야로 가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타분야를 얕잡아 보는 사람 치고 그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다른 인간들의 노력은 그다지 과소평가할 것이 못 된다. 어떤 분야든 최고가 있고, 그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레벨에서는 쉬운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익히기 위해 자기 분야만큼의 노력을 투입하지 않는 이상, 무엇을 하든 그다지 잘 할 수는 없다. 다른 분야를 하기 위해서는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오늘 내가 기타를 칠 줄 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연주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적당히 코드를 짚고, 적당한 멜로디도 연주할 줄 안다.
그제인가, 책장에 놓여진 기든스의 <현대사회학>을 들춰보면서, 이것 역시 나름 흥미롭게 들었던 수업이 아닌가 싶었다. 선생님이 상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열의를 가지고 사회심리학적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이재경의 <기사작성의 기초>. 분명히 언론학 수업을 들을 때 <Elements of Journalism>과 같이 구입한 것 같은데, 어째 제대로 들춰보지도 않은 건지 모르겠다.
수학과 물리학에 치여 사는 요즘, 역시 인문학 과목 하나 정도는 들어줘야 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이모의 결혼식에서 결혼행진곡을 연주한 이후 그만둔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다가 체르니 30번에서 그만둔 경험이 있다. 비록 이제와서 피아노로 칠 수 있는 것은 징글벨 정도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래도 기타연주를 조금이나마 할 줄 아는 것이다. 나는 예고를 거쳐 미대에 진학한 친구들 만큼은 아니지만, 미술도 상당히 했었다. 물론 낙선에다 심사평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지만, Hard Science의 대명사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문예공모에 단편소설을 보내기도 했다. 과학컬럼과 기사를 써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여행한 나라는 10개국을 넘어섰다.
어쩐지, 정신없는 나날들이 계속되면서, 그런 모든 것들을 전부 잊어가는 것 같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싶다. 물론,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갓 들어온 새내기 후배가 의대가 어떻고, 치대가 어떻고, 지금 입학한 과에 들어온 이유가 경쟁률이 낮은 과를 찾아 눈치작전을 한 결과라는 얘기를 듣고 있었더니 조금 어질했다. 거기에 예전 과외선생님이 돈 많고 연대 치대를 다니는 서울공대 출신이고 잘 생겼으니 군면제라는 사실까지 장점으로 거론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정말 사람이란 참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달까.
국문과가 가고싶어 문과대학을 들어갔다고 굳이 부연하는 지인의 모습을 보며, 이 땅에선 좋아하는 것을 공부한다는 것이 일종의 변명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조금 마음이 안 좋았다. 어쩌면 나 역시 '왜 물리학 같은 것을 공부하냐'고 물어왔을 때 '정말 좋았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대답하지 못하고 변명 따위를 해야될 때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지독히도 열등감을 느꼈고, 죽도록 공부해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분야에 가치를 느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다른 많은 분야들을 제쳐두고 전공으로 삼기로 했던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스스로 선택한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과는 정말로 많이 달라졌고, 내 선택과 내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 정말로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스무살 이후의 내 인생에 후회 같은 건 없다.
그냥, 녀석의 잣대로 재면 내 인생은 '몇 등'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쩍 커버린 내가 보기엔 그런 질문이 조금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정말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다. 근본적으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요즘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하면서 엄청난 노력을 인생에 투입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조금은 더 행복하게 살아야 될 것 같았다. 나는 나 자신의 선택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불평할 이유 따위는 없겠지. 즐겁게 살자.
경기 부천 순천향병원에서 한 여중생이 팔골절 수술을 받은 뒤 숨진 사건이 의료사고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유족 측은 의료진 과실로 사망했다는 입장이고 병원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4일 현재 인터넷에서 '부천 순천향병원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퍼지고 있는 사건의 요지는 팔골절 수술을 받던 임모양(15)이 수술 몇시간 뒤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 시비가 커진 것은 유족이 사망 경위 설명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임양 시신을 병원 1층 로비에 옮기고 농성을 벌이면서부터다. 병원 측은 일단 부검을 위해 시신을 영안실로 옮길 것을 요구했으나 유족 측이 거절하자 2일 오전 사설경호원과 경찰력을 동원해 강제 집행했다. 이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이 인터넷으로 퍼지면서 네티즌은 인터넷 청원을 벌이는 등 격분하고 있다.
임양 유족은 현재 ^수술 당시 보호자 없이 임양 혼자 있었는데도 예정 수술시간보다 45분 빨리 임양을 수술실로 데려간 점 ^병원 측이 임양 사망과 관련,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경호요원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임양 시신을 영안실로 옮긴 점 ^유족 측에 임양의 사망 경위를 설명하거나 담당의사가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점 등을 문제삼으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에 병원 측은 경찰력 투입 과정에 대해선 "유족 측이 병원 앞에서 며칠간 격렬한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자체 출동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병원 측은 2일 부검을 위해 임양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냈다. 국과수 측은 "2일 부검을 했고 열흘 정도 지나야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그때까지는 의료진 과실 여부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어제는 3년만에 만난 친구들과 값비싼 삼겹살을 구워 저녁을 해결하고, 막 스무살이 되었을 무렵에 지겹도록 반복했던 술집과 노래방 코스를 거치며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불러댔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 범위를 훌쩍 벗어났지만, 3년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그만 가봐야겠다고 할 수 없었다. 이젠 몇 년 전인지 한 손에 꼽을 수도 없게 된 고교시절 이야기도 하고, 우리 한 세대 위의 형, 누나들이 그랬듯 우리 시대인 1990년대의 노래를 불렀다. 돈 이야기를 하고, 결혼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 두 시간도 자지 못하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레주메를 손 보고, 녀석들을 만나러 갔었다. 그러나 어쩐지 여유란 것이 내게만 결핍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녀석들은 충분히 연애를 하고, 펀드에도 투자를 하고, 과외를 하는 데에도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내 삶은 전혀 그렇지 않아 약간의 괴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부터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략 주말엔 하루에 6시간 정도까지는 투입할 각오를 해야 할텐데, 여유 시간은 부족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와 바닥을 드러낸 내 재정을 채우기 위해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하루는 고작 24시간이고, 그 24시간을 오롯이 일 처리에 쓰기는 힘들다. 휴식할 시간이 부족하니 능률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 되면 일 처리에 좀더 긴 시간이 걸려 더욱 여유가 부족해진다. 그런 악순환이 시작되면 안 되는데.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막아내고 있다. 사실, 최대한 능률적으로 일처리를 해서 여유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방법인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일을 하기로 한 건지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다.
친구의 "사랑이란 이상과 현실의 타협이다"라는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나는, 모든 면에서 이상을 향한 고개를 - 적어도 아직은, - 돌릴 수가 없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