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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우주관광이니 뭐니 해도 이소연 씨가 소유즈를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으로 갔다. 우리 윗세대만 해도 암스트롱이 달에 가는 것을 보고, 어린시절 과학자가 되어 NASA에 가는 것이 꿈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외나로도에서 로켓까지 쏘는 날이 오면, KARI(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가서 우주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아이들도 생기지 않을까.
이소연 씨, 고산 씨에게 각각 250억원 씩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돈을 연구비로 지원하는 것이 '우주관광'에 쓰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설사 이소연 씨의 우주여행이 '정부가 돈을 댄 비싼 우주관광'일 지라도, 그녀를 보며 미래를 그려볼 아이들을 위해서는 나름대로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사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설사 우리가 지금은 자력으로 장거리 로켓을 쏘지도 못하고, 우주에 사람을 보낼 수도 없고, 달에 탐사선을 보낼 수도 없지만, 지금의 아이들이 그런 꿈을 꾼다면 그들 세대에 그들의 힘으로 이루어 낼 희망이 있다. 그들이 NASA 대신에 KARI에서 우리가 만든 우주복을 입고, 우리가 만든 로켓을 타고 우주로 향할 꿈을 꾸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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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국회의원 총선거
20대 투표율 37.1%
50대 투표율 82.6%
정치인들은 오히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내심 좋아한다는 한 정치학자의 주장을 읽은 적이 있다. 자기 권리를 표시하는 사람에 의해 시스템이 세워지고, 운영된다. 나이가 들 수록 그런 '현실'을 뼈져리게 알아가는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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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살자. 세계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열정있는 인간이 될 거야. 내 인생의 테마는 도전이다. 안정도, 평범함도, 여유도 좋지만 나는 긍지를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갈테다. 정년이 보장된 고소득의 안정된 생활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는, 그 이상의 인간이 될 거다."
- 2007/04/19, 여행, 여행, 여행
1년 전의 나. 지금의 나.
나는 무엇을 잊고 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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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8/10
(...전략...)
그 때쯤 흘러 나오는 음악들 사이로 상실감이 물밀듯이 다가왔다. x-japan의 dhalia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x-japan은 내가 중2,3 때 죽어라 들어대던 밴드였는데.. 그래도 그 때는 열정은 있었는데. 지금은 열정을 느낄 만한 일조차 없다. 음악도 거의 듣지 않는다. 음악 없이는 못 살 거 같은 때가 있었다. 언제나 미니기기를 들고 다니며 이어폰을 귀에 꽂고 살던 때가 있었는데. 음악 없이 산다는 건 정말 무료할 것 같았고, 많은 것을 잃고 사는 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이다. 그런 것들이 너무 슬펐다. 지금 나는 그저 '관성'으로 살고 있을 뿐이니까. 거기에는 가속을 시킬만한 힘, 열정이 결여되어 있다. 내게는 이제 뭐가 남았을까, 하는 생각에 슬퍼져오는 새벽이다. 이제 자야지.
Reply)
서평식 :: 가끔은 무료함도 좋은거야
areacode :: 무미건조..나도 그래.
6년 전 어느날의 일기. 친구들의 댓글.
나는 도무지 자라지 않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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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이 없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
체스모임을 같이 하고 있는 형이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한가지만 하는 데에 꽤 어려움을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전공에 있어서 최고로 우수한 사람들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시간과 노력을 한 가지에만 투입할 수 없었다.
작년에 긴 여행에서 돌아와서 학교로 돌아갔을 때에도 나는 댄스 스포츠를 했고, 현대무용을 배웠다. 하지만 여름의 인턴생활이 끝나고부터 나는 무엇을 했나? 전공에 있어서 그 전보다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지만, 내 인생이 한가지에만 모조리 투입되고 있고, 그래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요즘 책도 거의 읽지 않고, 운동도 하고는 있지만 본격적으로 하지도 못하며, 취미생활이라고는 거의 전혀 하고 있지 못하다. 공부는 늘상 하던 대로 하고 있으나 지겹고, 따로 흥미가 느껴지는 일도 별로 없다.
사이클 타는 것이 취미인 후배가 주말에 무엇을 하냐고 물었다. 녀석은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과 사이클로 남산 클라이밍을 하고, 야간 사이클링도 하며 주중에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전공도 잘 하고 있다. 요즘의 나는 주말에 보통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밀린 공부를 하곤 한다. 물론 이것들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외에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한심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얼마 전에 도쿄돔에서 X-Japan이 재결성 기념으로 공연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97년에 해체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도 꽤나 그들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 고교 때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음악을 들었고, 공연을 보고, 소설을 많이 읽었다. 그것들은 언제부턴가 내 삶에서 멀어져버렸다. 얼마 전, X-Japan의 음악을 다시 한번 들어보면서, 일본어를 전혀 모르던 중학생 시절에 외웠던 가사를 아직도 읊조릴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내 안의 열정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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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 삶의 의미를 찾아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하는 점 - 빅토르 프랑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우리사회가 발전하면서 그날그날의 생계를 위해 온 가족이 매일 일해야만 하는 경우가 점점 줄고 있다. 한국은 이미 개발된, 부유한 나라가 되었으니까.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여전히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과연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삶이 내게서 요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의 경험을 되새겨보면, 선후배가 같이 밥을 먹으러 가게 되면 보통 막내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곤 한다. 내가 후배 때는 얻어먹으면서도 항상 고심했던 기억이 있었고, 선배가 되어서는 그냥 거부권 행사만 하면 되어서 편했던 것 같다. 인간이란 그런 식으로 선택으로부터, 자유로부터 도피를 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자기성취(esteem)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 를 보면서, 과연 자아실현이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궁금했다. 그 역시 초월적인 무엇(Transcendent ideas)을 말했다만, 그것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욕구의 정점을 채우고 난 후에는 행복할까 싶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어떤 허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지구인 모두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이는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일해야 하고, 어떤 인도 아저씨는 딸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릭샤를 끌어야 하고, 어떤 아프리카인은 주변의 고통받는 이들에게 의료혜택을 주기 위해 의사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왜 하고자 하는가. 결국 무엇을 하건 나 자신의 만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느낀다.
석가모니가 소승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다 후에는 대승불교로 넘어간 이유도 비슷한 것일까? 그 다음은 선불교인데, 이거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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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티벳에서 심상치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라싸에서 벌어진 유혈사태, 관공서 공격 등 한족과 장족의 충돌. 중국의 무력진압. 외신기자들의 추방. 폭력 자제를 촉구하는 달라이 라마.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이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 티벳 여행금지.
예전엔 달라이 라마가 우리나라에 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는 했어도 티벳이란 곳이 나와는 별 상관 없는 곳이었다. 코소보의 분리 독립이 멀게 느껴지는 것처럼. 그러나 티벳의 땅을 밟고, 그곳의 음식을 먹고, 그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지금은, 티벳의 일이 마치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내가 걷던 거리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났고, 열심히 돌아다녔던 라싸 시내에 중국군이 전차를 끌고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 식민통치를 겪은 한국인으로서 중국의 강압적 티벳 지배를 반기는 사람은 없을테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기란 무척 어렵다는 것도 알 것이다. 지금도 강대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상대가 '중국'이기에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국제 정치의 현실이랄까.
어쨌든 티벳사람들 많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랍상포랑 야크호텔 리셉션에 있던 아가씨들, 아리랑에서 일하던 타즈랑 다른 아이들 다 잘 있으려나 모르겠다. 시위대에 참가했다고 중국인들에게 잡혀간 것은 아닌지. 시랍상포 친구 하나는 특히 중국에 적대감이 심해서 분명히 시위에 참가해서 잡혀갔을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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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처음으로 한 과목 드랍. 처음엔 드랍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꺼림직했는데, 뭐 막상 해보니 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도 생기고 좋다. 요새 상반기 취업 알아보는 친구도 있는데, 나는 뭐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토플 성적도 좀 어이없게 난감하게 나와서 말하기 파트 재채점을 신청해놨는데, 다시 봐야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요새 이상하게도 아는 사람들을 활동범위 안에서 자주 목격하게 된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꼭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저런 사람이랑 연애를 시작했군', '여기 혼자 다니네' 같은 생각을 하곤 하지만 그냥 지나치곤 한다.
양자역학이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가? 거참, 다들 왜 물리과에 와서 그 고생들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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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봄날씨와 함께 시작된 새학기도 어느덧 일주일이 흘러갔다. 지난 방학 때 내가 한 일이라곤 지루한 토플시험 준비와 양자역학 공부, 그리고 이론물리캠프 정도였다. 개강 직전까지도 토플을 보느라 분주하게 지내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개강이 되어버렸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도 분주하게 지내는 것일까. 나는 정말 공부가 하고 싶은 걸까? 공부를 상당히 많이 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공부만 하는 것에는 꽤나 익숙해지지 않는다. 뭔가 답답하달까. 지금까지의 나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부 외의 여러 가지를 하는 방법을 써왔는데, 최근에는 공부만 하고 있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수해야 할 학점도 별로 남지 않았고, 이번 학기까지 열심히 들으면 별 문제없이 졸업에 가까워진다. 이번 학기엔 물리와 영어 과목만 넣었는데, 쉽지 않을 느낌. 그냥 휴학해버릴까 싶은 마음도 있고, 그래도 이번에 이수해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
대학에 온 후, 해야 되기 때문에 공부를 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가끔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극복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모르겠다.
공부를 하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어떤 위치까지 다다르기 위해서 해야할 것들이 너무 분명해서, 그것만을 따라가다보면 지친다. 마치 내 앞에 1만 개의 계단이 있고, 나는 지금 3천 번째 계단에 서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느낌이다. 지금껏 해온 것도 꽤 많지만, 앞으로 해야할 것이 더 많다. 계단 오르는 것에 꽤 재미를 붙이고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앞으로 남은 계단들을 보니 어쩐지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다.
사람들은 누구나 철학이나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산다고 생각했다. 내가 읽어온 많은 책들에도 그렇게 쓰여있었고, 내가 만나본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항상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게 있어서 물리학 공부에 대한 동기는 물리학 그 자체보다는 그 배경에 있는 철학적 의미에 더 기반을 두고 있다. 자연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이치를 음미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동안 물리학 공부의 기술적인 면을 많이 배웠고, 많은 문제를 풀어왔고, 물리학의 세계관을 조금이나마 맛보았다.
나는 물리도 그다지 잘 하지 못하는 학생이었고, 특히 수학 문제 풀이에 있어서는 별로 재능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는 노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더 잘 살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아카데미아에서는 낮은 수준에서 기여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신감이 별로 생기지 않는 것 같다. 꽤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엄청나게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꽤 잘해왔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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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문스가 돌아왔다.
녀석에게 반년 동안 여행 잘 다녀온 것 같냐고 물었다. "이번 여행이 없었다면 20대가 너무 재미없었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자신이 번 돈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돌아본다는 것은 분명 굉장한 일이다.
2_
녀석은 또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에선 세속적인 가치에 의해 '좋아보여서' 자신이 공부하던 전공을 바꾸는 경우에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경우도 왕왕 있고,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도 지나치게 '목숨걸고' 한다는 거다. 그래, 뭐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좋은 쪽으로 바꿔나가는 것도 좋고, 멘토링 문화가 잘 되어있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그러기가 힘든 건지도 모르지.
취직을 하지 않고 공부를 계속 한다면, 결혼이나 아이 같은 인생의 일부를 그대로 포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 들여지는 것인가? 별로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대학원생에게 딸을 '줄 수 없는' 한국 부모님 마음도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니까. 물리과에서 결혼 후 박사과정에 진학한 분과 박사과정 중에 결혼한 분을 몇 명 정도는 알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물론 그 중 한 분은 부부 둘 다 박사과정에 진학한 것 같지만. 그래서 같이 공부할 사람 만나서 같이 나가라고들 하는 건지도 모르겠군. 왠지 슬프구만.
이런 결정을 하면서 목숨을 걸지 않기는 힘들군. '하고 싶은 거 그냥 하면 된다'는 서양애들 마인드는 그쪽 문화에서나 가능한 건가?
물리학이 뭔지 ... 다른 거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원. 취직해서 돈 벌어야 하나. 인생의 의미라는 게 참...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가. 허무의 극치.
3_
개강이 다가오니 가슴이 뛴다. 물리도 더 공부하고 싶고, 엄청난 숙제와 학업량이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하지만, 어쩐지 재미있을 것 같군.
세상 보는 관점이 꼬였는지도 모르겠는데, 공부 잘 하고 성적 잘 나와도 솔직히 인생 사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주 색 잡기 잘 해야 잘 먹고 잘 살지. 그렇게 살아야 하나?
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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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
계속 행복하고 싶다.
휴학하고 여행이나 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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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는 TOEFL 준비와 양자역학 정도만 계속 공부하고 있다. 특히 TOEFL에 꽤 시간이 많이 들어가서 사실 전공은 많이 보지 못하고 있는데, 지난 1월 중순에 2주일간 진행된 이론물리캠프 다닐 때 TOEFL도 완전히 중단하고 물리공부만 했었으니까 대충 위안을 삼고 있다. 팀프로젝트도 양자역학과 관련된 것이어서 공부 좀 했었고.
그런데 그 때 파동함수로 양자역학을 기술하던 것을, 수치해석적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 Matrix Representation으로 변환하기 위해 Orthonormal한 Function set을 가지고 Hamiltonian Matrix를 만들었다. 그리고 Eigenvalue와 Eigenvector를 (쉽게) 구하기 위해 Hamiltonian Matrix를 Diagonalize 시켰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해 크게 두 개의 의문점이 있다.
(1) Linear Algebra 지식이 모자라서인지, 일단 Diagonalize 시키기 전과 후의 Eigenvector가 같은 지가 헷갈린다. 책을 좀 찾아봐야지. Eigenvalue가 같을테니까 Eigenvector도 같겠지?
(2) 어쨌든 Eigenvector를 구했다면, Eigenvector의 성분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추측으로는 애초에 Hamiltonian Matrix를 Construct 할 때 사용한 Orthonormal function set에 Projection된 (normalized) Eigenvector의 성분 크기인 것 같은데.
뭐 토플을 준비하고는 있는데, Cosmology를 할 지 뭘 할 지 그것도 잘 모르겠고. 양자역학에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많다는 점이 재미있고. 이렇게 웬만한 사람들은 거의 못 알아들을 것 같은 포스팅도 한번쯤 올려보고 싶었다(..)
지난 겨울, 티벳에서 만난 인연으로 아직 연락이 닿고 있는 정사장님이 남미 여행 막바지에 '남극'에 다녀오셨다면서 전체메일로 사진을 보내오셨네. 왠지 가슴이 뛰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공부하는 것도 즐거운데. 뭐, 일단 하다보면 뭔가 되겠지. 현재를 희생하면서까지 해야한다고 생각되는 일도 없고. 그냥 재밌는 거 열심히 하다보면 되는거지.
2008/01/31 추가:
정사장님 남극 사진 몇 장. more..  Courtesy of 정사장님  Courtesy of 정사장님  Courtesy of 정사장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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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Alpha
I
중학생 때까지의 나는, 컴퓨터를 구석구석 이해하는 데 열성이었고, PC통신을 열심히 하며, 과학관련 서적을 탐독하던 학생이었다. 중3 때였던가, 과학잡지 Newton의 하이라이트 시리즈 중 '상대성 이론' 같은 책을 읽으며, 천동설의 모순점을 이론적으로 증명해보려고 노력하며, DNA 복제에 관한 엄밀한 이론을 추구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의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과학고에 진학한 후, 카이스트 같은 학교에 진학하여 우주의 진리를 이해하는 일로 일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따위의 의문에 몰두하며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우주는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가 같은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결국 과학고 진학은 하지 못했지만, 그때 읽었던 '수학없는 물리' 같은 책들 덕을 계속 본 것 같다. 하지만 고등학교 생활은 지독히도 지루했고, 인생을 규율과 억압 속에서 오직 문제풀이 기계 취급을 받으며 사는 것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당시의 나는 스타크래프트 등 컴퓨터 게임 따위나 게임센터의 드럼 매니아, 기타 프릭스 같은 리듬액션 게임에 매진하며 별 보러 다니는 것을 즐기고, 홍대 앞에서 열리곤 했던 좋아하는 밴드들의 라이브 클럽 공연을 놓치지 않았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다 고교 2학년 1학기를 마친 때였던가, 무언가 그렇게만 아무런 두각 없이 평범하게만 흘러가는 일상에 질렸던 것 같다.
그 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그 때의 결론에 따르면,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것은 크게 네 분야로 나뉘었고, 그것은 지금도 크게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첫 번째가 역시 물리학이었고, 나머지가 문학, 미술, 음악이었다. 이 중 음악만은 그 때까지의 경험으로 전혀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취미로만 하리라고 생각했었다.
이미 그만둘 기회를 놓쳐버린 고교생활은 고3까지 이어졌고, 상황이 어떻건 물리학을 공부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고통스런 문제풀이 기계로서의 생활을 버텨냈던 것 같다. 그래서 어쨌든, 나는 원하던 대로 물리학과에 진학했고, 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온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II
대학에 처음 들어올 때 나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그 당시엔 돈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기에 그냥 뜬구름 같은 망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유럽에 가보고 싶었다. 무슨 허영인지, 아니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몰라도 유럽대륙에 두 발을 딛고 싶었다.
끔찍하게 어려운 전공에 한창 고생하고 있던 2학년 첫 학기 5월, 한 학번 선배 커플과 밥을 먹다가 '여름 방학 때 뭐 할 거냐?'라는 질문에 특별히 할 것 없다는 답변밖에 없던 그 때, '그럼 여행이나 한번 다녀와'라는 한마디에 2개월만에 암스테르담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될 지 그 땐 알았을까. 그 때, 10개국 이상을 두 발로 누비게 되는 여정이 시작될 지 알았을까.
III
나는 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왔다. 하지만 물리학 외에도 정말로 많은 일을 해왔던 것 같다. 수많은 학교행사도, 2년이 넘는 군생활도, 벌써 누적 5개월이 된 직장생활도, 또 그에 필적할 기간 동안의 여행도, 긴 대학생활 동안 해왔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유학을 가든지 해서 물리학 박사가 되는 길로 가야 할까? 글쎄, 그런 것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먼 일로 생각된다. 철없던 고교시절에, 물리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을까. 대학 2년생일 때 처음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도 그랬을까. 지금 나의 꿈은 무엇인가?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Part Beta
A
오랜만에 이대 앞 티앙팡에서 Pierrot군을 만났다. 우리들은 IBM 인턴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다음 주에 시리아로 떠난다는 녀석을 부러워했다. 같은 블로거 패밀리인 Jamie 씨는 준비하는 일 때문에 참석하시지 못해서 아쉬웠다. Pierrot군의 여행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달까.
티앙팡은 훌륭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적어도 홍차에 관해서는 상당히 실망했다. 명성에 어울리지 않은 질이다. 보이차는 괜찮은 것 같던데. 애프터눈 티 세트 같은 메뉴는 보지 못했지만(런치는 있던데) 어떻게 나오든 종로의 티포투에 미치지 못하리라고 생각된다. 세트가 아니라 홍차만 마신다고 생각해도 대학로의 차야가 훨씬 훌륭하다.
뭐 어쨌든, 상당히 다양한 차를 구비하고 있다는 점만은 높이 살만 하다. 그러나 홍차를 꽤 즐기는 나로서는 별로.
B
현재가 지나칠 정도로 행복하면 오히려 슬픈 법이다. 미래에 이보다 행복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는 것, 어쩐지 소설 속 이야기 같지 않은가. 누군가 조사를 해보지만 아무런 동기를 찾을 수 없다든가 하는 것.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
C
내가 능력이 없는 인간이라고는 결코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나의 긍지를 훼손하는 취급은 어쩐지 싫다고 할까. 세상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탈락할 기준이라면 그 기준 자체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나의 오만함.
D
가끔 멈춰서서 둘러보기. 스무 살이 막 되었을 땐 변해가는 자신이 슬펐다. 지금은 변하지 않는 자신이 슬프달까.
Part Gamma
긍지를 가지고.
치열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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